노동시장 개혁의 시작은 이중구조·연공급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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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1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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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과 양호한 근로조건, 직장 내 훈련을 통한 승진 기회와 고용 보장(내부노동시장이라고 한다)을 본격적으로 누리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1950년대 이후 일이다. 그 이전에는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일이 드물었으며, 임금은 낮았고, 승진을 생각할 수 없었으며 빈번한 직장 간 이동과 지리적 이동을 경험했다.

1950년대 이후 경기호황 시기에 내부노동시장이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숙련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미숙련 노동자들을 채용하여 직업훈련을 시키고 승진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내부노동시장이 대기업과 공공부문 사업장에서 일반화된 것은 유럽에서는 주로 1960년대였고, 일본에서는 1970년대였으며, 한국에서는 1987년 이후였다.

유럽의 내부노동시장은 숙련의 위계서열을 기초로 형성된 경쟁적 내부노동시장이다. 다수의 작업장은 숙련요건, 책임 등에 따라서 위계적으로 구분된 작업조직이고, 이 구분에 따라서 이동과 승진의 패턴이 정해진다. 작업자는 직업경력을 밟는 과정에서 상위의 숙련을 보장받는다. 일본 내부노동시장 역시 직무수행능력의 위계서열을 따라서 형성된 경쟁적 내부노동시장이다. 작업자는 이 능력요건에 따라서 이동과 승진의 경로를 밟아 간다.

그러나 1987년 이후 형성된 한국 대기업의 블루칼라 노동시장은 비경쟁적·비효율적 내부노동시장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들은 숙련수준에 따른 차등 평가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숙련의 위계서열을 거부했다. 무기력한 경영자들은 기업특수적 숙련의 형성과 공급에 기여하는 임금체계와 인사제도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상당수 대기업 노동자들은 장기근속에 따라 임금이 크게 상승하는 단일호봉제 또는 직급별 호봉제의 적용을 받고 있고, 일정한 근속기간이 지난 후에는 자동 승진하는 제도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숙련개발의 유인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전략 변화로 인하여 각국의 내부노동시장이 축소되어 가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기업들은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한층 더 내부노동시장 구조의 변동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경영전략은 단순공정의 사내 하청화와 외주화, 자동화, 블루칼라의 채용 중지(내부노동시장의 폐쇄라고 부른다), 비정규직의 사용 등이었다. 실증연구 역시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해주는데, 연공급적 성격이 강한 임금체계를 가진 기업일수록 비정규직 사용 비율이 높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 임금 격차도 컸다.

그 결과 내부노동시장 규모는 갈수록 축소되고 외부노동시장은 비대하게 형성되어 간다. 내부노동시장에 속해 있는 내부자들과 비정규직 등 외부자들 사이의 격차는 갈수록 심화된다. 내부노동시장에 접근하기 힘든 외부자들은 격렬한 직장 간 이동을 경험하고 있고, 그들의 고용 불안정성은 깊어진다. 요컨대 한국 노동시장의 성격은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이중구조화와 불안정성(Dualization and Destabilization)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구되는 노동시장 개혁의 첫째 과제는 이중구조를 낳는 제도(Dualizing Institution)의 개혁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요인 중의 하나인 연공급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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