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을 스펙으로 만든 청년들, 방문 열고 타인도 도와 [마음청소]

입력
2022.06.30 14:00
수정
2022.07.2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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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무서운회사 활동가 인터뷰

편집자주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안무서운회사를 만든 유승규 대표가 촬영한 은둔 당시의 방 모습. 안무서운회사 제공

㈜안무서운회사를 만든 유승규 대표가 촬영한 은둔 당시의 방 모습. 안무서운회사 제공

'은둔도 스펙이다?'

‘히키코모리(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재, 지난해 기준 국내 청년 인구 1,100만 명 중 3.4%인 약 37만 명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오고 있다.

한창 자격증, 외국어, 인턴 경력 등의 스펙 쌓기도 바쁜 청년의 은둔 생활도 스펙이 될 수 있을까. 여기 실제로 자신의 은둔 경험을 스펙으로 승화시킨 이들이 있다. 은둔 청년들을 찾아내 돕는 민간단체 ㈜안무서운회사의 활동가들이다.

㈜안무서운회사는 2012년 한국에 지사를 낸 국내 최초 은둔청년 지원 기관 'K2인터내셔널'(K2)의 직원 출신 청년과 K2의 당사자 멘토 육성 프로그램인 '은둔고수' 2기 참여자 두 명이 만든 회사다. 이들은 직접 은둔고수 프로그램, 셰어하우스 관리, 지원사업 신청 등을 맡아서 일하고 있다. K2 한국 지부는 코로나19의 직격탄으로 지난해 말 활동을 중단했다.

28일 오후 이들이 함께 모여 사는 서울 강북구의 셰어하우스를 찾았다. 다세대 주택가에 남녀가 분리된 숙소와 사무실 등이 마련돼 있었다. '은둔고수' 1, 2기 출신 정인희(29) 활동가와 2기 출신 임영서(26) 활동가를 만났다. 두 활동가 모두 은둔 경험 당사자이자 현재는 ㈜안무서운회사에 소속돼 있다.

공동체 통해 소속감 쌓고, 책임감으로 타인도 도와

28일 서울 강북구의 셰어하우스에서 은둔고수 프로그램 출신 임영서 활동가(왼쪽)와 정인희 활동가를 만났다. 손성원 기자

28일 서울 강북구의 셰어하우스에서 은둔고수 프로그램 출신 임영서 활동가(왼쪽)와 정인희 활동가를 만났다. 손성원 기자

두 활동가는 자신의 은둔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얘기를 듣다 보니 이들은 '살기 위해 스스로를 가둔' 경우였다. 정 활동가는 가정폭력에 의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약 11년 동안 은둔 생활을 했고, 임 활동가는 대인기피증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약 5년 동안 은둔에 들어갔다.

현재도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많이 호전된 상태다. 임 활동가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다"며 "과거 정말 심각했을 때는 기면증, 피해망상, 자살사고를 겪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정 활동가는 "3개월 동안 양치, 샤워 등 위생관리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은둔도 관성이거든요. 극복을 했다고 해도 언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지 몰라요. 그걸 막아준 게 은둔고수 프로그램이에요."

정인희 활동가

㈜안무서운회사의 '은둔고수 양성 프로그램'은 은둔을 경험한 사람 중 현재 은둔 중인 당사자와 가족을 돕고 싶은 이들이 직접 은둔 극복을 위한 그룹 워크숍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당사자를 돕는 활동을 진행한다. 정기적인 만남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출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한 건 소속감이다. 정 활동가는 "나갈 명분이 없으니 집에서 은둔하게 되는 건데, 나와 비슷한 10명 정도가 서로를 응원해주다 보니 조금씩 유대감이 생기고 재사회화되는 느낌이었다"면서 "나아가 내가 타인도 도와야 하는 상황이니 의무감과 책임감이 들어 계속 (은둔 생활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밖에 나와 보니 햇살이" 직접 만든 음원 발매

이들은 예술 활동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기도 한다. 정 활동가는 2020년 하반기에 진행된 은둔고수 1기를 경험하며 같은 기수 사람들과 음원을 정식 발매하기도 했다.

"눈을 뜨면 텅 빈 천장/고요한 적막 흐르고/도망갈 길을 찾았지만/(…)/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냐/(…)/밖에 나와 보니 햇살이/너무 따뜻하더라고/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혹시 괜찮다면 물어봐도 될까요/그대는 어떤 것을 제일 좋아했나요/그때 그날에 어떤 일이 또 있었나요"

오는 7월 1, 2일에는 치유재단인 ㈔행복공장에서 주최한 고립청년 집단창작연극 '출구 없는 방'이 열린다.

"천천히 환경 바꾸며 '자기 효능감' 쌓아야"

28일 서울 강북구의 셰어하우스에서 은둔고수 프로그램 출신 임영서 활동가(왼쪽)와 정인희 활동가를 만났다. 손성원 기자

28일 서울 강북구의 셰어하우스에서 은둔고수 프로그램 출신 임영서 활동가(왼쪽)와 정인희 활동가를 만났다. 손성원 기자

보통 은둔 청년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 활동가는 "11년 은둔을 하다 보니 '내가 이대로 10년, 20년 더 은둔하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이러다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며 "그래서 스스로 더 한심하고 미웠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작은 환경을 바꾸고 자극을 줘야 변화가 시작된다'고 입을 모았다. 은둔 자조 모임처럼 서로 공감해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난 뒤, 나아가 작은 돈일지라도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겪는 순서다. 그 후에는 타인을 지원함으로써 자기가 받은 경험을 사회에 환원한다.

물론 재은둔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고 도와주면 막을 수 있는 문제다. 정 활동가는 "밤낮이 바뀌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 활동가는 "은둔형 외톨이들의 사정과 그 모습은 다 다르다"며 "저체중부터 초고도비만까지 있고, 나이도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또 은둔 청년의 가족에 대해선 "(은둔 당사자를)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왜 그러냐'며 마음을 먼저 물어보면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은둔청년 자조모임 '은신처' 오픈 채팅방

https://open.kakao.com/o/gkQJT6ud
출처: '히키코모리 매뉴얼' 오오쿠사 미노루 전 K2인터내셔널코리아 팀장 제작

은둔경향 체크 테스트

25개의 질문으로 자신의 상태를 숫자와 그래프로 알고, 해설과 조언을 받을 수 있다.
https://cutt.ly/LQ326Rt
출처: '히키코모리 매뉴얼' 오오쿠사 미노루 전 K2인터내셔널코리아 팀장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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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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