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윤시내는 사라지지 않았다...40여년 무대 휘어 잡은 '불꽃 디바'

입력
2022.06.30 04:30
20면
구독

독립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깜짝 출연
매주 라이브카페서 공연...내년 초엔 단독 콘서트 계획도

가수 윤시내. 아림미디어 제공

가수 윤시내. 아림미디어 제공

윤시내가 사라졌다? 지난 8일 개봉한 독립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에 나오는 가상의 상황이지만 윤시내는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십수년 전 맹장염 수술 직후 병상에 있어야 할 때도 그는 진통제를 맞아가며 무대에 오를 정도였다. 대중이 보기엔 TV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어떤 가수보다 부지런히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영화에도 깜짝 출연했다. 가수 윤시내가 고별 콘서트 직전 갑자기 잠적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와 유튜버 딸이 윤시내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지난 18일 밤 경기 하남시 라이브카페 ‘윤시내열애’는 전설의 디바가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군살 한 점 없는 몸매에 검은색으로 통일한 진한 눈화장과 롱부츠, 핫팬츠는 그가 데뷔 45년차 가수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가창은 전성기 시절 못지않았다. 객석에 노래 폭탄을 투하하기라도 하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객석을 휘어잡았다. 뮤지컬 ‘체스’ 수록곡인 ‘One Night in Bangkok’으로 시작한 약 50분간의 공연은 데뷔곡 ‘나는 19살이예요’와 히트곡 ‘공연히’ ‘공부합시다’ ‘DJ에게’ 등을 거쳐 1980년대 댄스 히트곡 ‘Do You Wanna Funk’로 끝을 맺었다. 이곳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20년 이상 열려온 그의 공연은 마치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순간인듯 했다.

나흘 뒤 같은 곳에서 윤시내를 다시 만났다. 날렵하고 매서운 흑표범 같던 무대 위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체구만큼이나 작고 가녀린 목소리로 “미리 전달 받은 질문에 답안지를 써왔다”며 웃는 그는, 방금 막 데뷔 곡을 녹음하고 난 신인 가수 같았다.

“처음엔 제 이름을 걸고 영화를 찍는다기에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거절했지만 김진화 감독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바꿔 출연하기로 했죠. 안 해본 영역이어서 호기심도 생기고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이제 와서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연기를 해봤다고 생각했지만 영화 연기는 달랐다. 그는 “노래 가사와 달리 대사는 다 외웠다 싶어도 연기와 함께 하려니 생각이 잘 나지 않더라”며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려면 좀 더 많은 연습과 경험을 쌓아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1979년 ‘열애’가 크게 히트한 뒤 동명의 영화 출연 제의를 받고도 “노래밖에 몰랐던 때여서 거절했다”는 윤시내는 “이제서야 연기에 매력을 느껴 연기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며 웃었다.

"꾸준히 노래하는 게 가창력 유지의 비결"

윤시내는 1980년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로 꼽힌다.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라며 불꽃 창법을 터트린 '열애’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DJ에게’ ‘공부합시다’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 초까지 꾸준히 앨범을 발표했지만 가요계 트렌드가 바뀌면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디바는 좌절하지 않았다. “계속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에 1998년 하남 미사리에 라이브카페를 열었고 이후 2014년 ‘사랑한국’, 2015년 ‘인생이란’ 등을 발표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녹슬지 않는 가창력도 이처럼 쉬지 않고 음악 활동을 이어온 덕이다. 그는 “노래를 오래 쉬면 감이 떨어지고 좋은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면서 “어떤 후배들은 공연이 없으면 노래방에서 연습한다던데 나는 매주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도 직접 챙긴다. 1978년 서울국제가요제 당시 화제를 모았던 ‘피라미드’ 헤어스타일 등 데뷔 때부터 별도의 스타일리스트 없이 모든 걸 직접 해결했다. "요즘도 패션 잡지와 책, 해외 패션 쇼 같은 걸 챙겨보면서 유행이나 흐름을 파악하고 독특한 디자인은 활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가수 윤시내. 아림미디어 제공

가수 윤시내. 아림미디어 제공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는 음악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드러난다. “평소 감기 조심하고 목을 늘 따뜻하게 하려 하죠. 잠도 충분히 자려고 하고요. 목에 안 좋은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아요. 체중도 40㎏을 넘기지 않으려 하죠. 평소 38~40㎏에서 왔다 갔다 해요. 먹을 땐 잘 챙겨 먹고 체중이 좀 늘었다 싶으면 바로 조절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어요. 무대에 서는 게 체력 소모가 크다 보니 그 자체로 다이어트가 되기도 하고요.” '스캔들 나면 가수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철저한 사생활 관리를 하다 보니 여전히 독신으로 지낸다고도 했다.

"요즘 즐겨 듣는 건 빌리 아일리시... 좋은 음악은 세대를 뛰어넘는 것"

윤시내는 다양한 장르에 능숙한 가수다. 발라드와 댄스 곡은 물론 펑크(funk), 솔, 블루스에도 능했다. 트로트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불러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공식 데뷔곡 ‘공연히’는 그의 뿌리가 솔, 블루스라는 걸 보여준다. ‘열애’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DJ에게’ 등을 쓴 최종혁 작곡가가 윤시내를 발탁하며 쓴 곡으로 불꽃처럼 터지는 창법이 일품인 노래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니까 나온 창법”이라고 회고했다.

그룹 부활의 객원 멤버로 노래했을 만큼 그는 하드록 밴드와도 별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데뷔 전 그룹 ‘신병하와 사계절’의 리드 보컬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곡을 불렀던 덕이다. 1970년대 서울 명동의 유명 라이브 카페 오비스캐빈에서 그룹의 일원으로 노래하던 그는 개성 넘치는 창법과 빼어난 가창력으로 음악 관계자들을 사로잡았고, 이는 가요계 데뷔로 이어졌다.

“처음엔 주로 팝송을 불렀죠. 재니스 조플린의 ‘Maybe’, 스미스의 ‘Baby, It’s You’처럼 샤우팅 창법의 곡을 많이 했어요. 마이클 잭슨의 곡도 많이 불렀고, 태미 와이넷 같은 컨트리 가수의 곡들도 불렀어요. 그땐 딱히 장르를 나누지 않고 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힌 것 같아요.”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노래했던 데뷔 시절처럼 윤시내는 지금도 좋은 음악이라면 가리지 않고 듣는다. 최근 공연에서 즐겨 부르는 곡은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다. 그는 “’Bad Guy’ 같은 곡은 내 취향에도 맞고 내가 평소 하고 싶었던 음악 스타일”이라며 “공연에 온 젊은 관객이 이 곡을 듣고 환호해주면 음악에는 세대 차이도 어떤 선이나 경계도 없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윤시내는 ‘음악에 대한 예의’를 강조했다.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이 힘들었을 때도 '음악이 싫어졌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란’이란 곡 때문에 제게 인생이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제 노래에 모든 답이 있어요. 노래는 제게 살아가는 이유를 주고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런 노래에게 ‘싫어졌다’는 표현을 쓰는 건 음악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데뷔 후 첫 단독 콘서트를 준비 중이라는 그는 기회가 된다면 해외 진출도 시도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디너쇼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콘서트는 그와 성격이 다르잖아요. 좀 더 멋있는 쇼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늦어진 것 같아요. 내년 초에 제대로 준비를 해서 꼭 해보려고요.”

고경석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