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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에 묻는다 "어떻게 해야 은둔하지 않고 음악을 계속 들려줄 수 있겠니"

입력
2022.06.28 20:00
수정
2022.06.28 21:44
17면

임윤찬의 콩쿠르 우승을 다시 생각한다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지난 17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종라운드에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하고 있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지난 17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종라운드에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하고 있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임윤찬은 맨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51개국 388명이 지원한 예선에서 비디오와 서류심사로 30명만 추려낸 1차 라운드였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3일 내내 참가자들의 땀방울과 음표들의 피 튀기는 혈투가 이어졌다. 심사위원이나 청중이나 기진맥진할 법했다.

마지막 순서라는 절대적 불리함

삐까뻔쩍 수상이력을 지닌 경연자들 틈에서 임윤찬은 그저 가장 나이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감상하던 네티즌들은 임윤찬의 프로그램에서 모차르트의 소나타 K.311을 발견하곤 '콩쿠르에서 이렇게 쉬운 곡을 골라도 되냐'며 너무 학생스럽다고 이죽거렸다. 어서 라운드를 마무리해 다음 경연 진출자를 발표하라는 투정이 채팅창에 가득했다. 콩쿠르의 맨 마지막 순서는 이처럼 불리하기 마련이다. 심사위원들의 청력과 집중력이 피로에 허덕이니 웬만한 연주로는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어렵고 채점도 보수적이다.

스티븐 허프의 ‘팡파레 토카타’로 임윤찬이 연주를 시작하자 느슨했던 분위기가 일거에 바뀌었다. 피아노의 내장에서 눈부신 광채가 분출했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이 곡의 작곡가 허프부터 자세를 고쳐 앉았을 테고, 가방을 싸며 귀가를 준비했던 청중들도 해이해진 긴장을 곧추세웠을 것이었다. 팡파레 토카타는 이번 콩쿠르를 위해 새롭게 위촉된 창작곡이어서 모든 참가자들이 반드시 연주해야 했다. 임윤찬의 찬란한 음색은 첫 일성부터 나머지 29명과 달랐고, 독창적 해석은 2,900명이 달려든다 해도 거뜬히 가려낼 만큼 유일했다. 가장 부담을 느껴 공들여 준비한 곡 중 하나였다는데, 임윤찬은 이 연주로 창작곡 최고 연주상까지 거머쥔다. 2022년 반 클라이번, 18세 청년의 역사적 무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모두를 당황케 한 90초의 여백

30명 중 18명이 진출한 2번째 라운드에서도 임윤찬은 여전히 마지막 순서에 배정되어 바흐와 스크랴빈, 쇼팽으로 리사이틀을 구성했다. 개인적으론 숨이 턱 막힐 만큼 마음 졸였던 순간을 마주했는데 연주가 아니라 그의 침묵 때문이었다. 첫 곡 바흐에서 두 번째 곡 스크랴빈 사이, 임윤찬은 무려 90초 동안 아무 소리도 없이 여백과 진공으로만 콘서트홀을 채워 나간다. 시간 준수가 엄격하고 어떻게든 소리로 몸부림쳐 존재를 증명하는 콩쿠르에선 의외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2차 라운드에서 첫 곡을 마친 후 90초간 이어진 침묵의 순간. ⓒ반클라이번 콩쿠르

2차 라운드에서 첫 곡을 마친 후 90초간 이어진 침묵의 순간. ⓒ반클라이번 콩쿠르

별의별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악보가 기억나지 않은 것일까, 과도한 스트레스로 컨디션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현장에 있던 심사위원과 청중들도 똑같이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금쪽 같은 시간을 정적으로 타고 넘는 임윤찬의 표정은 야속할 만큼 평온하고 의연했다. 바흐에서 스크랴빈, 151년 동떨어진 시간여행에 침묵의 연결구로 환승을 유도한 것일지 몰랐다. 낮은 음역에서 뛰어오르는 스크랴빈 첫 화음이 그렇게나 신선하고 반가웠다. 90초의 여백, 시간여행의 환승구간 덕택이었다.

절제 그리고 광기

람들은 임윤찬이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이나 준결선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에 열광하고 있지만, 이처럼 맨 마지막 순서란 불리한 조건을 불식시킨 1차와 2차 라운드의 연주도 곱씹어 회자될 만하다. 누가 더 잘 치는지 분별하는 콩쿠르의 평가 기준을 훌쩍 넘어선 무대였기 때문이다. 다른 참가자들이 독일이나 러시아, 미국과 프랑스 등 스타일의 범주화를 드러낼 때, 임윤찬은 그 분류가 무색하게끔 고유의 악풍과 사운드를 찬란히 구현했다. 귀가 닳도록 들었던 작품인데도 이 청년의 몸을 거치면 처음 듣는 곡처럼 새로이 태어나 신기했다. 이

임윤찬은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연주로 청중을 몰입시켰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임윤찬은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연주로 청중을 몰입시켰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대개의 참가자들처럼 흠잡을 데 없는 테크닉이나 철저히 훈련된 완성형 연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의 영혼과 접속한 듯 신들린 마법으로 청중을 강하게 흡입했다. 절제된 그의 몸짓은 여느 피아니스트들의 과장된 제스처와도 거리가 멀었다. 자아도취에 매몰되어 청중과의 교감을 애써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순간 미쳐 있었다. 음악 안으로 몸소 빨려 들어가 자신의 한계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폭파시켰다. 청중 입장에선 저러다 장렬히 산화하는 것은 아닐까 애타는 순간이 만발했는데, 임윤찬의 광기는 발산으로 휘발되지 않는 응결의 힘을 갖고 있었다.

가혹한 이벤트, 콩쿠르

사람들은 이번 콩쿠르를 통해 K클래식이 또 한 번 세계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며 으쓱해한다. 임윤찬 외에도 김홍기, 박진형, 신창용 등 준결선에 오른 12명의 진출자 중 4명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암암리 존재하는 지역 쿼터가 아니었다면 이들의 무대를 좀 더 오래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일회성으로 휘발되기엔 너무나 귀하고 반짝이는 연주여서 안타깝다. 콩쿠르는 기본적으로 가혹하며 부조리한 이벤트이다. 임윤찬마저도 ‘감정과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콩쿠르에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며 투덜거리지 않았던가.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는 12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한국 피아니스트가 네 명이나 진출해 K클래식 돌풍을 일으켰다.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김홍기, 신창용, 박진형, 임윤찬. ⓒ국제음악콩쿠르연맹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는 12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한국 피아니스트가 네 명이나 진출해 K클래식 돌풍을 일으켰다.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김홍기, 신창용, 박진형, 임윤찬. ⓒ국제음악콩쿠르연맹

그런데도 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대에 설 수 있는 생존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한국의 많은 연주자들이 경연 시스템에 끊임없이 목매는 현상을 승부욕이나 야심만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콩쿠르에 최적화된 맞춤식 교육 혹은 보상체계가 경쟁 지상주의를 가져왔다며 덮어놓고 폄훼할 일도 아니다. 콩쿠르에 입상해야 겨우 공연의 기회를 갖는데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클래식 음악계의 저변이 너무나 좁고도 얕다. 그래서 다들 레슨으로 수입을 얻고 학교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

콩쿠르 강국이 꼭 클래식 강국일까

한국은 콩쿠르 강국일지 몰라도 클래식 음악 강국은 어림없는 변방에 불과하다. 음악 생태계가 건강히 유지되려면 피라미드 꼭대기 엘리트 양성뿐만 아니라 중간층도 튼튼히 다져야 하건만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 인공지능의 시대, 누가 이 생고생을 하며 피아노를 치고 옛 서양음악을 파고들겠는가. 시흥의 아파트 상가에 음악학원이 없었다면, 피아노가 아니라 컴퓨터 코딩을 배웠더라면 임윤찬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임윤찬은 청중이 가득 찬 무대보다는 혼자 있는 연습실을 더 좋아하고, 할 수만 있다면 녹음만 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속내를 밝혀 왔다. 연주가 내내 엉망이었어도 막판 10초 과시적 질주에 화르르 열광하는 공연의 생리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청중으로선 꽤 서운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내면에 침잠하는 완벽주의를 방해했다간 무대에서 물러나 스튜디오로 숨어든 글렌 굴드처럼 전격 은둔을 선언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임윤찬에게 허심탄회 묻고 싶다. 어떻게 해야 속세와 단절하지 않고 음악을 들려줄 수 있겠냐고. 해일처럼 밀어닥칠 세상의 요란한 관심이 그의 재능을 소진시키거나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온 국민이 합심했으면 좋겠다.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예술의 절체절명. 지구가 인류에게 공들여 점지한 피아니스트가 한국에서 등장했으니 말이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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