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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커리어 피봇'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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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잼 원정대>는 '현대인의 일'을 탐구하는 콘텐츠 실험실 '커리업(caree-up)'의 인터뷰 브랜드입니다. '일에서의 재미'라는 희소자원을 찾아 정박하지 않고, 원정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일하는 방법'을 수집합니다.
여기, 스스로를 ‘사람 농부’라 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뿌리는 씨앗은 ‘사람’이고요. 이 씨앗들을 뿌리는 땅은 ‘스타트업’이라는 가능성의 토지입니다. 벼가 잘 자라는 땅과 감자가 잘 자라는 땅의 토질이 서로 다르듯, ‘사람 농사’ 역시 마찬가지라고 해요. 이 땅에선 맥없이 고개를 떨구다가도, 저 땅에 옮겨 심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줄기를 싱싱하게 세우기도 하죠. 가능성을 담뿍 머금은 ‘떡잎’ 인재를 미리 알아보고, 스타트업의 땅에 부지런히 옮겨 심는 이 농부의 이름은 장영화(50). 모양도 크기도 저마다 다른 ‘사람 씨앗’을 열심히 살펴, 각자에게 딱 들어맞는 땅을 찾아주는 게 이 농부의 소명입니다.
장영화 조인스타트업 대표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12년 전, 창업가들이 거칠게 뒹구는 이름 없는 험지에 뛰어들었던 초기 개척자 중 한 명이에요.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창업자들의 바이블 '스타트업 경영수업'의 저자인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등 지금은 업계의 ‘거목’이 된 이들과 함께 이 판의 잔뼈 굵은 ‘멘토’로도 활동해 온 80만 스타트업 업계의 ‘왕 선배’입니다.
그 자신도 창업가였지만 다른 이들과는 지향점이 좀 달랐다고 해요. 직접 유니콘 신화를 만드는 것보다 그걸 만들 수 있을 법한 인물의 싹수를 알아보고, 그 가능성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키워내는 쪽이 더 재미있었거든요. 2013년, 청소년들에게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앙트십 스쿨’로 시작해, 2016년부터는 스타트업과 스타트업형 인재를 연결하는 인재 기획사 ‘조인스타트업’을 꾸려오고 있어요. 10만 명의 청소년을 만나 ‘스타트업의 세계’를 보여줬고, 청년 730여 명의 커리어를 스타트업으로 ‘매칭’시켰죠.
영화씨의 머릿속엔 10년간 축적된 ‘스타트업 인재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요. 옷깃만 스친 가벼운 인연도 허투루 놓치지 않고 끈끈한 네트워크로 굳혀내 왔거든요.
식물 가꾸는 이들 사이에선 ‘그린 핑거스(green fingers)’라 불리는 사람이 있어요. ‘식물 키우기의 달인’을 뜻하는 말인데요. 사람을 키우는 일에도 그런 ‘마법의 손’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 있다면, 아마 영화씨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뭔가를 잘 키워내는 데 필요한 건 기술보단 ‘애정’. 그래서 영화씨는 누군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완성해 낸 이력서를 볼 때, 학력과 경력이 아닌 ‘행간’을 본다고 해요. 고심해서 고른 단어들 뒤에 숨은 의욕과 가능성을 보죠. 남들이 보기엔 ‘실패’로 끝난 일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건져 올려요. 지저분하게 꼬인 경력이라 할지라도, 그 뒤에 숨은 사연과 맥락을 보고요.
영화씨가 이토록 사려 깊은 ‘이력서 투시경’을 가지게 된 것은 자신 역시 뿌리 내릴 땅을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헤맸기 때문인데요. 창업가가 되기 전 영화씨는 ‘서울대 출신 변호사’였어요. 늦게 시작한 만큼 독하게 공부해 고시의 문턱을 넘었는데 막상 변호사 일을 시작하니 ‘이 일이 정말 내 일인가’ 싶었던 거죠. 법조계는 세상의 변화가 가장 느리게, 또 더디게 닿는 곳이었거든요. 모험을 사랑하고, 속도에서 짜릿함을 느끼는 영화씨에겐 보수적인 법의 세상이 못내 답답했던 겁니다. 그때 알았죠. ‘어떤 일이 내 일인지 아닌지는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거구나.’ 열정은 ‘용솟음’치듯 저절로 샘솟는 게 아니었어요. 장에 피는 효모처럼 알맞은 조건을 만나야만, 천천히 숙성되는 거였죠.
이때부터 ‘내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칼 정장 대신 티셔츠와 청바지를, 뾰족구두 대신 운동화를 장착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뇌관이 터지는 살벌한 ‘창업가들의 전쟁터’에 뛰어들게 됩니다. 정신없이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좋았던 건 사람들이 보여주는 ‘에너지’였어요. 남들이 기를 쓰고 말려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의 눈빛은 ‘번쩍번쩍’ 빛이 났거든요. 영화씨는 스타트업씬의 사람들에게 자주 반했다고 해요. 그래서 사업보다 ‘사람’에 투자하는 선택을 하게 된 거죠.
스타트업 업계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인 ‘피봇(pivot)’은 ‘원래 유지해오던 사업 방향을 전면적으로 바꿔 재시도하는 것’을 의미해요. 사전적 의미는 ‘회전축’인데, 농구에서 한 발을 유지하면서 다른 발을 사용해 반대로 도는 것을 뜻하죠. 세계적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 역시 원래는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였던 거 아시나요? 숱한 실패를 딛고 시도한 ‘피봇’ 끝에 지금의 모습이 된 거죠.
영화씨는 스타트업의 ‘피봇’을 지켜보며 어쩌면 현대인의 커리어에도 ‘피보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대요.
탄탄대로라 생각했던 길이 순식간에 막혀버리기도 하고, 막다른 길이라 여겼던 끝자락에서 뜬금없이 새로운 길이 나기도 하는 시대니까요. 길의 모양이 수시로 바뀌는 지도 위에선 목적지로 향하는 최적의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경로 재탐색’이 필요한 거죠.
“사람마다 커리어 피보팅의 방법은 다를 수 있어도 시작과 목적은 같아요. 나에게 맞는 일을 하겠다는 바람으로 시작해 나의 삶이 즐거워지는 일을 만나는 거죠.” ‘나에게 맞는 일은 반드시 있다’는 믿음을 ‘민들레 홀씨’처럼 날려 보내 온 장영화 대표에게서 ‘커리어 피보팅’의 전략에 대해 들어봤어요.
서울대에 들어갔더니 전국의 모범생만 모아 놓은 곳다웠어. 공부라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치열하게 해냈거든. 노트필기 완벽, 학점관리도 완벽. 시험지 위에서 정답을 찾는 데에 도가 튼 애들 사이에서 나는 도무지 마음을 못 잡는 애였지. 남의 과 수업에 자주 기웃거리며 자꾸 밖으로 돌았어.
그렇게 한눈팔다 앞길이 뒤바뀔 줄은 몰랐지. 졸업반에 처음 들었던 법대 수업, 그게 아마 ‘민법 총칙’이었나. ‘이거다’ 싶은 거야. 내겐 화학식을 외우며 물질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보다, 현실에 발붙이고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게 훨씬 재밌었거든. 그 길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며 법학과로 편입했지. 뒤늦게 사시에 뛰어든 식품영양학과 출신이 사법고시를 통과하는 데엔 장장 5년이 걸렸어.
힘들게 변호사가 됐는데, 법정 분위기에 겨우 익숙해질 무렵이었던가. 문득 발밑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야. 불안감이었지.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이렇게 안주하며 살아도 되는 걸까.’ 일단 내 주변의 사람들부터 바꿔봐야겠다 싶었어. 가장 ‘빠르게’ 사는 사람들 옆에 가야겠다. 잡지에 인터뷰를 기고하며 동시대 창업가들을 만났지. 그 사람들의 눈빛에선 강한 확신 같은 게 읽혔어. 그들에게 일이란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거든. 세상이 원하는 뭔가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당당함. 그 당당함에서 오는 자신감이었지.
‘제로 투 원(zero to one)’, 무에서 유를 만들어 본 적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어. 나도 한 번쯤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장영화 대표 인터뷰 내용을 ‘1인칭 독백’ 시점으로 기자가 각색했습니다.)
젊은 청년 변호사였던 영화씨는 그길로 사표를 던졌습니다.
‘모를수록 용감하다’고, 창업가가 되겠다는 젊은 날의 패기는 앞뒤를 재지 않았죠. 그렇게 만든 게 ‘법률사무소 겸 북카페’.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포부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는데요. 영화씨가 상상했던 그림은 고객들이 커피 한잔 마시러 와서, 옆자리 친구에게 말 걸듯 변호사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이은 적자 속에 사무치게 깨닫게 됐죠. ‘아, 선한 의지만으로 돈을 벌 순 없구나’. 월급 받으며 살던 직장인에게 '사업'의 무게란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월급을 막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지금이었다면 공유오피스에 노트북 하나 놓고 '나홀로 창업'을 했겠지만, 그땐 정말 사업의 'ㅅ'자도 몰랐던 때거든요. 법률 북카페는 결국 반년을 못 가 망하고 말았죠.
그때의 영화씨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정답이 있는 시험지 속 세계와 온갖 변수가 난무하는 ‘리얼 월드’는 한참 다르단 사실을요. 모범생, 엘리트로 살아왔던 온실의 세계에 금이 가자, 비로소 ‘법정 밖’의 거친 세상이 보였습니다. 로펌으로 돌아갔지만,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어요. 슬쩍 엿보고 온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이미 주체가 안 될 정도로 폭발하고 있었거든요.
‘그래, 핸들을 확 꺾었으니 사고가 난 것일 뿐이야.’ 호되게 매운맛을 본 영화씨는 ‘전직’으로 부드럽게 방향을 바꿔 보기로 합니다. 두 번째 ‘커리어 피봇’을 준비하며 자신을 정의하는 키워드를 떠올렸어요. “전 승소할 때 짜릿함을 느끼는 변호사가 아니었어요. 이기고 지는 싸움을 싫어했으니까. 대신 갈등을 조정하고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엔 자신이 있었죠. 누군가에게 뭘 가르치는 것 역시 좋아했고요.” 그렇게 나온 키워드는 세 가지. #협상, #교육, #경영이었어요. 세 가지 키워드가 ‘교집합’을 찾는 일터를 뒤지다 찾은 곳은 기업 임원을 교육하는 기관인 ‘세계경영연구원’이었죠. 임원들에게 ‘협상의 기술’을 가르치며 점점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세 개의 키워드를 믿고 가도 되겠다는 믿음이요.
“다만 전, 남 밑에서 일하는 게 무척 힘든 사람이었어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할 때 강한 열정을 발휘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표를 던진 그는 제주로 훌쩍 떠납니다. 반년간 무소득·무보수의 삶을 살며 세 번째 커리어 피봇, ‘재창업’를 준비하죠. 그리고 1년 뒤, 이재웅 다음 창업자의 투자를 받아 2010년 ‘혁신기업가 학교’를 만듭니다. 창업가 꿈나무들을 발굴하는 청년 교육 커뮤니티였죠. 투자자로부터 ‘될성부른 기업가 인재’를 양성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죠.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수익화’였습니다.
“기업의 본질은 스스로 이윤을 만드는 건데, 그 기본을 해내지 못했어요. 교육이라는 ‘공공성’ 짙은 아이템으로 수익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과제였죠. 직원들이 하나둘 떠나가던 어느 날, 투자자가 통보하더군요. ‘이젠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제야 ‘헉’ 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제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마지막이구나. 내 통장을 헐어 한 번만 더 해보자. 대신 데드라인을 ‘1년’으로 걸었죠.”
투자자에게 외면받은 끝에 네 번째 커리어 피봇을 거쳐 탄생한 것이 2022년 현재까지 살아남은 ‘앙트십 스쿨’이에요.’ 기업가 정신을 뜻하는 ‘앙트러프러너십’을 가르치는 학교란 뜻이죠. 일단 교육 대상을 청년이 아닌 청소년으로 바꿔 공교육 현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어요. 혁신기업가스쿨을 운영하며 '꿈의 씨앗은 빨리 심을수록 좋다'는 걸 깨달았었거든요. 창업 초기엔 카카오, 넥슨과 같은 기업들의 후원을 받았지만, '콘텐츠가 좋다'는 입소문이 돌며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사겠다'는 학교들이 많아졌어요. 현재는 애플, 네이버, 아산나눔재단 등의 기업과 직접 파트너를 맺고 교육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기도 해요. 수익성을 만들기 어려웠던 '교육'의 영역에서 자체적으로 굴러가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겁니다.
그렇게 앙트십 스쿨은 ‘내 인생의 CEO가 되어 창업가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미션을 내걸고, 9년 동안 10만 명의 청소년들을 만나왔습니다.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회사가 된 거죠.
총 4번의 커리어 피봇, 영화씨는 지난 25년 동안 전공도, 회사도, 직업도 열심히 바꿔 보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깨달았죠. ‘내 일’을 찾는 커리어의 여정은 사실 정착이 아닌 유목이라는 사실을. 남들 좋다는 ‘사짜’ 직업이 내게도 좋은 일이 아니란 건 경험해본 이후에나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부터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해보자.’ 일단 해보고 답이 아닌 선택지를 소거해나가는 방식으로 ‘내 일의 기준’을 뾰족하게 깎아 나가기 시작했죠. 창업가다운 방식으로요. 이후 그는 생전 모르던 사람을 찾아가 ‘기회를 달라’ 설득하는 일에도 거침이 없어졌습니다. 스스로 삽을 들고 길을 내지 않으면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창업에도 저마다 적성에 맞는 장르가 있어. 내가 찾은 나의 장르는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이었지. 앙트십 스쿨로 청소년들을 만나다 보니, 자꾸 갈증이 생기는 거야.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할 정도로 호흡도 길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거든. 아무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앙트러프러너십’을 배운다 하더라도, 그게 당장의 현실을 바꾸진 못해. 당장은 좋은 대학에 가는 데 급급할 뿐이니까. 청년들이 창업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게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걸 고민하다 나온 서비스 아이디어가 ‘인재 매칭’이었어.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꾸 학교에 가려고 해. 취직이 안 되면 대학원에 가고, 일하다가 힘들어도 도피하듯 대학원에 가. 그런데 막상 학위를 따고 나면 답이 없는 거야. 그 사이 세상은 또 어지러울 정도로 변해버렸으니까. 사실, 가장 좋은 학교는 회사야. 회사는 우리를 고용하는 동시에 가르치기도 하거든. 그중에서도 스타트업은 가장 ‘빡센 학교’지. 문득 궁금했어. 성장 욕구가 강한 인재들을 데려다 스타트업이라는 폭발적인 상승 엔진을 만나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인스타트업’은 바로 이 궁금증에서 시작했어.
영화씨는 스타트업을 ‘교육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요.
회사를 ‘학교’로 본다면, 스타트업은 굉장한 밀도를 자랑하는 배움터거든요. 나한테 있는 줄도 몰랐던 다양한 근육을 써볼 수 있는 곳이죠. “내 일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스타트업은 좋은 지렛대예요. 목적이 전직이든, 성장이든, 독립이든, 빠르게 경험하며 배울 수 있거든요. 조직 자체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곳이니, 그곳에 올라탄 개인 역시 한눈팔 새가 없죠.” 직원이 커다란 시스템의 부품 역할을 하는 대기업에 가면,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는 게 가능하잖아요. 스타트업에선 그게 불가능하다고 해요. 작은 조직이니, 누구나 ‘일당백’을 해야 하거든요. 이 일, 저 일, 그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다 하다 보면 저절로 비즈니스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일을 다 경험하게 되는 거죠. 일종의 종합 훈련장인 거예요.
영화씨가 만든 서비스 ‘조인스타트업’은 빠른 성장을 원하는 사람, ‘내 일’을 찾고 싶은 사람을 스타트업에 연결해주는 ‘인재 기획사’예요. 커리어 코칭은 전 과정이 무료. 이력서와 설문 답안을 등록한 지원자들 중 내부 기준을 통과해 선정된 이들이 커리어 코치들의 상담 서비스를 받게 되죠.
상담이 무료인데, 어떻게 돈을 버냐고요? 매칭이 성사되면 파트너인 스타트업으로부터 성공 수수료를 받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에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 스타트업에선 '인재 구하는 일'이 가장 고난도의 업무거든요. 스타트업 업계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필요한 역량을 정확하게 갖춘 인재를 골라내야 하는데, 공개채용을 하면 그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죠. 또 '작은 조직'의 특성상 한 사람이 발휘해야 하는 영향력이 커서 '어떤 사람을 채용하는지'가 회사의 앞날과 직결되기도 합니다. 사람 하나 잘못 뽑았다가 조직 전체가 골치 아파지는 경우도 숱하게 발생하고요. 스타트업 업계의 '태동 시절'부터 함께해 온 영화씨는 여기서 '사업 가능성'을 봤어요.
헤드헌터들이 일하는 방식과 유사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확실히 달라요. 조인스타트업의 목적은 매칭 건수를 늘리는 게 아니거든요. 매칭을 성공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지원자가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충분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길러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영화씨는 이곳을 '러닝메이트'이자 ‘기댈 언덕’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아이가 처음 자랄 때 보행기가 필요한 것처럼, 누군가의 성장 과정 옆에 머물며 살피고 조언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여러 토양과 환경을 경험하며 자신에게 맞는 땅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요.”
그래서일까요. 한번 만난 인연이 6~7년씩 길게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오랜 시간 만나다 보면, 혈육보다 의지하는 ’사회적 가족’이 되기도 하는데요. 조인스타트업의 ‘베타 테스터’로 참여해 스타트업의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지현(30)씨가 딱 그런 사례죠. 5년 전, 지현씨는 대학 동기 대부분이 대기업에 입사할 때, 직원 서른 명 규모의 스타트업인 ‘마이리얼트립’에 들어갔어요. 영화씨의 든든한 조언을 받아 감행한 선택이었죠.
“지현이는 주도적으로 일하며 성장하고 싶어 하는 친구였어요. 그래서 아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를 추천했죠. 마이리얼트립에 ‘사업 개발’ 직무로 들어간 지현이는 20대 중반부터 유럽 전역을 돌며 각 나라의 이름난 가이드들을 직접 섭외해 상품을 만들었어요.” 지현씨가 일하는 동안 마이리얼트립은 매년 3배씩 성장했다고 해요. 몇 년 후, 퇴사할 무렵엔 150명 수준으로 회사 규모가 불어나 있었고요. 회사의 성장 단계별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지현씨의 역량 역시 성큼성큼 자랐죠. “이제 지현이는 여러 조직에서 러브콜을 받아요. 20대에 본인의 성장판을 폭발적으로 자극해, 커리어의 선택지를 넓힌 경우죠.”
지현씨는 영화씨를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확신을 준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처음 스타트업에 취업한다고 했을 땐, 집안 반대가 정말 심했거든요. 내 선택이 틀린 건가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오직 그분만이 ‘그래도 된다. 그 길로 가도 위험하지 않다’고 말씀해주셨죠. 그냥 덕담이 아니라 믿음직스러운 응원이었어요. 스타트업 업계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아시는 분이었으니까요.” 이 바닥의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 화려한 ‘꿈동산’ 이미지의 이면까지 모두 샅샅이 아는 사람의 말이었기에, 그 조언은 ‘부모의 말’보다 강력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현씨는 지금도 커리어 고민이 생길 때마다 영화씨를 찾아간다고 해요. 그는 마이리얼트립을 나와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을 거쳐, 현재는 NFT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죠.
요즘엔 반대로 지현씨가 영화씨에게 업계 정보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한때는 지현이가 어딜 가서든 잘 뛸 수 있도록 신발 끈을 묶어 줬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이젠 그저 동료 대 동료로서 좋은 ‘디베이터’(Debater·토론 상대)가 되어 줄 뿐이에요.” 5년 전만 해도 ‘막 틔운 새싹’에 불과했던 지현씨는, 무럭무럭 자라 꽤 늠름한 나무가 됐습니다. 자신이 키운 나무들이 드리운 그늘 아래 뙤약볕을 피하며 덕을 보는 것. 아마 '사람 농부'에게 가장 뿌듯한 순간이 아닐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가끔은 너무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어. 흔히 돈 안 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00이 밥 먹여주냐?’라고 하잖아. 내가 좋아하는 뭔가가 취미가 아닌 일이 되려면, 그게 ‘밥줄’이 되어야 해. 밥줄이 되려면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대가를 받으려면 남을 만족시켜야 하고. 그래서 원래 ‘일’이라는 건 힘든 거야. 나 혼자 좋으면 그만인 게 아니라, 남들의 기준과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니까.
나는 ‘밥’ 이야기를 자주 해. 꿈만큼이나 밥도 중요한데, 그 이야긴 다들 안 하니까. 직업이라는 건 꿈과 밥을 ‘두발자전거’로 굴리는 거거든. 밥을 먹어야 꿈도 꿀 수 있으니까. 창업가로 사는 사람들은 이 ‘밥’과 ‘꿈’의 좌표를 정확히 찍을 줄 알아.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거지. 커리어를 만드는 데에도 같은 태도가 필요해. 현실에 발붙인 채 눈으로는 꿈을 좇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단 거지. 모두가 찾고 싶어 하는 ‘나에게 맞는 일’은, 밥과 꿈 그 사이에 있는 거야.
‘가슴 뛰는 일을 좇아라’. 스타트업 업계의 전설적 영웅인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죠. 이 말 앞에 서면 고구마를 삼킨 듯 답답해지는 사람이 아마 한둘이 아닐 거예요. ‘가슴 뛰는 일’을 좇기에 ‘밥벌이’의 무게는 엄중하니까. 학자금 대출과 월세, 나날이 치솟는 생활비의 압박은 막 커리어의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좀처럼 ‘그럴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죠. 업(業)은 자아의 일부이기 이전에, 삶의 기본조건을 지탱하는 생계의 수단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젊은이들은 대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가슴이 뛰는지’ 잘 몰라요. 얼굴도 못 본 상대를 사랑할 수 없듯,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일을 좋아하는 건 쉽지 않죠. 그래서 영화씨는 ‘가슴 뛰는 일을 좇아라’라고 말하지 않아요. 대신 이렇게 말하죠. “급하면 ‘밥’의 좌표부터 찍어도 돼요. 그러고 나서 뭐라도 해봅시다. 직접 경험해봐야 ‘꿈’의 좌표도 찍을 수 있어요. 안 맞는 일은 하나씩 지워가면서, 할 만한 일은 하나씩 더해가면서 그렇게 찾아 나가면 돼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단박에 ‘내 일’을 찾아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꿈’의 좌표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라고. 단 명심해야 할 것은 ‘밥의 좌표’를 잊어선 안 된다는 거죠.
밥과 꿈의 균형 지점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 없이 혈혈단신인 27세 청년이라면 좀 더 꿈의 좌표 쪽으로 다가가도 좋겠지만, 아이에 부모까지 책임져야 하는 42세 중년 가장이라면 당연히 밥의 좌표에 더 가까워야겠죠.
“5년 차 미만의 저연차일 경우에는 직무 자체를 바꿔 보라고 권유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지금은 마케터인데, ‘개발자’가 되면 더 잘할 것 같다 싶은 사람에겐 일단 현실적인 계획부터 세워보라고 하죠. 현재의 재무 조건, 공부에 쓸 수 있는 시간까지도요. 만약 공부를 하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 1년 동안 한 달 기준 얼마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하는 게 좋을지 함께 고민하죠.” 영화씨가 누군가의 ‘커리어 피보팅’을 돕는 방식은, 그냥 제안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아요. ‘아직 젊은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는 건 어떠니’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꿈과 밥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액션플랜’을 반드시 함께 고민하죠.
실패로 인해 ‘꿈의 좌표’를 잃은 누군가가 있다면, 본인의 눈엔 잘 보이지 않을 ‘실패의 가치’를 대신 찾아주기도 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일잘러’로 인정받으며 일하다 돌연 창업했던 친구가 있어요. 고생만 하다 결국엔 사업을 접었는데, 생계 때문에 조급하게 일자리를 구하다 보니 6개월~1년 단위로 자주 이직을 해온 거죠. 어쩔 수 없이 지저분한 이력서가 됐어요. 한 곳에서 진득하게 2년 이상 버틴 적이 없고, 이 일 저 일 그 일을 두서없이 해왔으니까요. 하지만 이 이력서를 잘 뜯어보면 꽤 매력적인 서사들이 숨어 있어요. 저희는 이렇게 행간에 숨은 서사들을 열심히 건져 올려요. 창업 실패 위에서 뭘 배웠는지, 이 사람이 얼마만큼 다양한 실무를 폭넓게 경험해봤는지를요.” 현재 이 지원자는 10명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CEO를 보좌하는 ‘경영지원 담당자’로 일하고 있어요. 그 자신이 한때는 CEO였기 때문에 CEO의 경영을 돕는 이 일이 ‘찰떡궁합’으로 잘 맞는다고 하네요.
영화씨가 주니어들의 전직을 돕고, 실패로 점철된 이력서의 행간을 꼼꼼하게 파헤칠 수 있는 건, 스타트업씬을 지배하는 ‘정정당당한 원칙’ 두 가지를 믿기 때문인데요. 첫 번째는 ‘학력보단 실력을 본다’는 겁니다. 스타트업엔 유독 비전공 개발자와 비전공 디자이너가 많거든요. 당장 원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만 갖추고 있다면 그걸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묻지 않아요. 계급장 떼고 맨몸으로 맞붙는 ‘실력 위주’의 세계라는 거죠. 두 번째는 ‘좋은 실패의 가치를 알아봐 준다’는 겁니다. 스타트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실패’란 필수불가결한 디딤돌이기 때문에 개인의 실패 역시도 ‘피봇의 성공률을 높이는 거름’으로 봐준다고 하네요. 그래서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람을 더 유능한 인재로 평가하죠.
그렇지만 영화씨는 스타트업을 ‘이상적인 직장’으로 보는 건 아니라고 해요. ‘모두가 이곳에 와야 한다’고 외치지도 않죠. “스타트업이 실패할 확률은 90%예요. 안정성 면에서만 본다면 결코 좋은 직장이 아니죠. 1, 2년도 안 돼 회사가 사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니까. 미디어에서 접하는 소식엔 성공 서사만이 가득하지만, 곁에서 보는 현실은 온갖 실패와 우여곡절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죠. 이 척박한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어요. 다만 이거 하난 확실해요. 여긴 무임승차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최고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극한 직업의 현장이라는 거.”
흔히 ‘창업의 세계’엔 정답이 없다고 합니다. 수조 원에 회사를 매각한 유니콘 스타트업의 대표 역시 ‘성공 비법’을 모른대요. 왜냐, 자신이 성공했던 이유가 지금은 하나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수시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시장은 도저히 ‘법칙’이란 게 작동하게 놔두질 않아요. 영화씨는 ‘커리어’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해요.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성공 방정식의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신의 커리어랑 내 커리어가 다르잖아요. 당신이 가진 강점과 내가 가진 강점 역시 다르고요. 상황도, 조건도 다 다르죠. 그러니 각자의 해법 역시 다른 거예요. 우리가 푸는 문제는 비정형화된 고차 방정식이에요. 내게 주어진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딱 한 명뿐이죠. 자기 자신. 게다가 이젠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형이에요. 남들 좋다는 직업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써 내려가야 하죠.”
그래서 영화씨는 커리어 조언을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안전거리 유지’라고 해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동원해 정성껏 조언하더라도, 결정적 순간엔 자율적인 판단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죠. 이직, 전직, 창업, 커리어 피보팅을 통해 맞이하게 되는 변화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니까요.
“나의 일을 정리하는 과정은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선명하게 알아가고 깨닫는 시간이에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사랑하기까지 저 역시 10년 이상 걸렸죠.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여정은 짧지 않아요. 적어도 10년이죠. 긴 눈으로 봐야 해요. 우리는 80대까지 일할 거니까.”
마지막으로 영화씨에게 ‘일의 재미’를 물었습니다.
“창업가로서 일은 항상 어려워요. 힘들지 않은 순간이 없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이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요. 달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도취감을 두고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하잖아요. 저는 일할 때 느끼는 ‘워크 하이(Work High)’도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뤄낸 것에 도취되는 거죠. 저는 그 도취감 덕에 사는 거 같아요. 일은 저에게 존재 이유예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일할 거예요.”
영화씨는 ‘된다’ 하는 순간의 짜릿함이 모여 ‘꿈’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꿈이란 저 먼 하늘에 유유히 뜬 북극성 같은 게 아니라, 테니스 코트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공 같은 거라고 해요. ‘저 센 볼을 받아낼 수 있을까, 없을까?’ 조마조마하는 찰나 그 공이 라켓의 한가운데 ‘뻥’ 하고 맞는 순간, 성취감이 폭발하는 거죠. 그 짜릿함, 성취감들이 똘똘 뭉쳐 꿈이 됩니다. ‘어쩌면, 이것보다 더 센 볼도 받을 수 있을지 몰라’ 하는 꿈. 그 꿈이 다음에 날아오는 ‘무진장 센 놈’을 받아낼 힘을 주고요. 영화씨가 멋지게 받아내고 싶은 공은, 세상의 많은 이들이 ‘나에게 맞는 일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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