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신냉전기 '미담'의 연출자

입력
2022.06.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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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서맨사의 편지

안드로포프의 답장을 든 서맨사 스미스. samanthasmith.ucoz.com

안드로포프의 답장을 든 서맨사 스미스. samanthasmith.ucoz.com


1970년대는 데탕트 시기였다. 베트남에서 패퇴한 미국의 군비 예산은 바닥 상태였고, 소련 역시 농업정책 실패와 식량난 등으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1969년 전략무기제한협상으로 시작된 데탕트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붕괴했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약 6년간 신냉전기가 도래했다.

1982년 유리 안드로포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했다. 1950년대 헝가리 대사 시절 헝가리혁명을 좌초시켰고, 1967~1982년 KGB 의장으로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장본인이었다. 서구 시민들에게 그는 특히 사하로프와 솔제니친을 핍박한 자였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규정하며 핵무기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고, 안드로포프는 레이건을 히틀러 같은 존재라고 비난했다. 1960년대 쿠바위기에 버금가는 핵전쟁 공포가 확산되던 무렵이었다.

1982년 11월, 미국 메인주의 만 10세 소녀 서맨사 스미스(Samantha Smith, 1972.6.29~ 1985.8.25)가 갓 취임한 안드로포프 서기장에게 편지를 썼다. 정말 핵전쟁을 원하는지, 왜 미국과 세계를 정복하려 하는지 묻는 편지였다.

그 편지가 이듬해 소련공산당 기간지 ‘프라우다’에 실렸고, 안드로포프가 자상한 어조의 답장을 썼다. 그 미담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당시 주미 소련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Anatoly Dobrynin, 1919~2010) 덕이었다. 미국 대사로서 케네디부터 무려 6명의 대통령을 겪은 그는 아이의 편지가 신임 서기장의 이미지 개선과 버거운 군비경쟁 기조의 반전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서맨사 가족을 이듬해 6월 소련으로 초대해 약 한 달 반 동안 주요 도시에서 유명인사를 만나고, 각종 문화행사를 벌이며 그 동정을 국제사회에 소개한 것도 어쩌면 그의 기획이었을 것이다.

서맨사를 장기판의 졸이라고 폄하한 이도 있고, 곧장 데탕트로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1985년 소련 개혁·개방의 거름이 된 것도 사실이다. 도브리닌은 승승장구했고, 서맨사는 소련 마지막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취임(1985년 3월 11일)한 직후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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