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에 인종차별 확전까지… 미국의 '임신중지 분열'

입력
2022.06.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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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임신센터 화재, 방화로 보고 수사 중”
WP “현대 미국인의 자기결정권 침해”
WSJ “헌법상 권리 오인 바로잡은 판결”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임신중지(낙태)권 폐기 판결을 내린 지 이틀 후인 26일 임시중지권 옹호론자들이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임신중지(낙태)권 폐기 판결을 내린 지 이틀 후인 26일 임시중지권 옹호론자들이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임신중지(낙태)권을 폐기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 변경을 놓고 미국 사회가 극단의 분열로 치닫고 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을 돕는 사회복지기관에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는가 하면, 정치권에선 인종차별 논란으로 확산됐다. 언론도 두 쪽으로 갈렸다.


미 하원의원, "백인 삶을 위한 역사적 승리에 감사" 발언에... 인종차별 논란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콜로라도주 롱몬트시의 임신중지지원센터에 지난 24일 불이 나 경찰ㆍ소방당국과 연방수사국(FBI)이 수사 중이다. 화재는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 폐기 판결 직후 발생했다. 센터 건물 벽면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쓴 '임신중지가 안전하지 않으면 너도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성 낙서가 발견됐다.

공화당 소속 매리 밀러 하원의원(일리노이)은 25일 "미국의 모든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애국자를 대신해 대법원에서 있었던 백인의 삶을 위한 역사적 승리에 감사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해 빈축을 샀다. ‘마가’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구호였다. 밀러 의원의 발언이 논쟁적인 건 임신중지권 폐기가 백인보다 유색인종 여성에게 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법이 현대 미국과의 전쟁 선포" vs "헌법 어디에도 '임신중지' 표현 없어"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 이틀 후인 26일(현지시간) 프랑스 시민들이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불법 낙태 도구를 상징하는 철사 옷걸이를 흔들며 낙태권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 EPA=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 이틀 후인 26일(현지시간) 프랑스 시민들이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불법 낙태 도구를 상징하는 철사 옷걸이를 흔들며 낙태권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 EPA=연합뉴스

미국 언론들의 이번 판결에 대한 평가는 이념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 ‘대법원이 현대 미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칼럼을 통해 임신중지권 폐기는 현대 사회를 거치며 미국에서 폭넓게 확장된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WP는 “우익 대법원이 개인의 의사결정권을 통제하지 않는, 평등의 정의가 확장된 미국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헌법 어디에도 ‘임신중지’란 표현이 없다며,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49년 전 판결에서 헌법상 권리를 오인한 점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이번 판결을 호평했다. WSJ는 24일 사설에서 “법원이 49년 동안 스스로 정당성을 훼손하고 정치권을 격앙시켰던 실수를 바로잡은 것”이라며 “대다수 대법관이 온갖 압박에도 소신을 고수한 공로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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