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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살아내겠다"... 꽃 심고 집 짓는 우크라 사람들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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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꽃을 심고 있어요. 이웃 주민들도 꽃을 심느라 바빠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도시인 모슌에서 만난 발렌티나씨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러시아군 폭격으로 망가진 집 앞마당을 다시 가꾸느라 바쁘다고 했다. 전쟁 중에 꽃이라니...
모슌은 러시아군이 전쟁 초기인 지난 2, 3월 키이우로 진격하기 위해 거쳐 간 길목에 있다. 러시아군은 모슌을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발렌티나씨는 무차별 폭격을 피해 잠시 고향을 떠나있어야 했다. "집 바로 옆에 발사체가 떨어졌을 때도 떠나지 않았어요. 키우던 염소들이 임신 중이었거든요. 도저히 떠나고 싶지 않아 버텨보려 했지만, 염소들이 폭격으로 죽었어요. 결국 다 버리고 떠났어요." 마을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주민 3분의 2가 그저 살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 뒤였다.
화염이 마을을 벌겋게 물들였던 날들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발렌티나씨는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꽃을 심었다. 꽃을 심고 가꾼다는 건 그에게 "그럼에도 삶을 살겠다"는 의지다. 발렌티나씨처럼, 모슌 시민들은 2, 3주 전부터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26일(현지시간) 모슌 광장. 옷과 음식을 서로 나누고, 무엇보다 '살아있는지'를 확인하는 곳이다. 몇 달 만에 만난 이웃들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살아있다는 안도감에 웃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울었다. "잘 지냈나..." "어떻게 지냈나..." 애절한 안부가 광장을 채웠다.
키이우의 또 다른 배후 도시들에도 피란민들의 귀환 행렬이 이어졌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부차. 폭격으로 무너진 아파트 앞에서 만난 노인은 "마을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이 2만5,000명쯤 된다고 들었다"고 했다. 생필품이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든 여성은 "23일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또 다른 도시 호스토멜의 안토노프 공항엔 컨테이너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마을에 돌아와도 지낼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짓는 것"이라고 한 주민은 말했다.
고통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르핀에선 피트니스센터 복구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부들은 시멘트를 붓고 건축 자재를 나르기 바빴다. 인근 주택 단지에서도 망치와 드릴 소음이 들렸다. 망가진 집들을 수리하는 소리였다. 러시아군 폭격으로 두 동강 난 보로댠카 아파트엔 "40년 동안 이곳에 살았어요. 계속 살고 싶습니다. 새집을 지어주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지만,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800만 명 이상이 우크라이나를 떠났다가 그중 280만 명 정도가 다시 국경을 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여전히 흥건한 곳으로, 언제 미사일이 날아와 모든 것을 앗아갈지 모르는 곳으로 목숨을 걸고 돌아오는 이유는 뭘까. 평생 모은 재산으로 지은 집 2채를 모두 잃은 뒤 두 아들과 또다시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살던 곳이니 돌아와 사는 거죠. 살아남았다는 것이 살아갈 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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