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 대법원이 24일(현지시간)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내려 충격이 크다. 1973년 임신 6개월까지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함으로써 미국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50년 전으로 후퇴한 셈이 됐다.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퇴행적 판결과 세계적 백래시 흐름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미 대법원 판결의 결과가 심각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낙태 합법·불법 결정은 각 주 의회의 권한이 됐는데 50개 주 중 26개 주에서 낙태가 금지될 전망이다. 이로 인한 부담은 취약계층 여성에게 집중될 것이 자명하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의 지적대로 법적 논리가 아니라 대법관 인적 구성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판결을 번복한 것도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서방 국가 정상들이 이례적으로 비판을 표명한 것만 봐도 파장은 세계적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큰 후퇴”라고 언론에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끔찍한 뉴스”라며 “정부나 정치인 혹은 남성이 여성에게 그들의 몸과 관련해 무엇을 할지 말지를 말해선 안 된다”고 트위터에 썼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유에 도전을 받은 모든 여성에게 연대를” 표했고,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비판 성명을 냈다.
우리나라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임신중지권 확보에 한걸음 나아갔지만 후속조치는 완수하지 못했다. 국회가 발의된 개정 법을 심사하지 않고 있고, 입법 공백 상태에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들이 불법 거래되는 등 안전한 임신중단 환경은 아직 요원하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 노골적으로 성평등에서 퇴행하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입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약자의 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와 입법부의 역할을 다시 확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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