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우크라는 피맺힌 전쟁의 흔적을 전시한다... 기억하기 위하여"[르포]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아, 부차에 들어섰구나."
우크라이나 수도 북서쪽의 평화로웠던 도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치열한 시가전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도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집단 학살해 매장한 것으로 알려진 비극의 도시, 부차. 폴란드 국경을 넘어 차로 약 550㎞를 달린 끝에 24일(현지시간) 부차에 도착했다.
부차가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아주 멀리서부터 알 수 있었다. 도로 옆에 널려 있는 탱크와 군용차, 이동식 무기 등이 표식이었다. 러시아군이 버려 두고 간 것들이다. 몸서리칠 법도 하건만, 우크라이나인들은 차를 세우고 탱크와 무기를 오랫동안 구경했다. 들여다보고, 쓸어 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러시아군의 무기는 어쩔 수 없이 방치돼 있는 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일부러 그렇게 둔 것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군의 침공과 만행을 한시도 잊지 말자는 뜻"이라고 했다. 녹슬어 가는 탱크 앞에서 가던 길을 멈춘 한 여성은 "전쟁 중이라는 생각이 새삼 닥쳐와 너무 슬프다. 동시에 러시아군이 도망치게 할 정도로 우리가 강하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키이우 한복판 곳곳에서도 러시아군의 무기를 볼 수 있었다. 26일 아침, 전쟁 전 유명 관광지였던 '올가 공주' 기념비 앞. 시민들은 형체만 남은 탱크와 차량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꽃을 정성스레 묶어 올려 두었다. "러시아의 야욕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추모의 뜻을 담은 꽃다발이었다.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부차 중심부의 안드레이 페르보즈바니 성당. 뒷마당에는 러시아군이 살해한 우크라이나인 116명이 묻힌 '집단학살 무덤'이 있다. 무덤에 뿌려진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부터 추모관 건립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무덤 주위에 있는 큰 돌들의 용도를 물으니 "추모관 조성에 쓰려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성당 내부 역시 기억의 공간이었다. 민간인 희생자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수십 장이 전시돼 있었다.
26일 이르핀과 키이우를 잇는 '이르핀 다리'가 있던 곳을 찾았다. 러시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은 다리를 끊어버렸다. 끊어진 다리 아래에서 황망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르핀 주민들을 담은 사진은 전쟁의 고통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다리는 여전히 부서져 있었다. 나무 널빤지를 이용해 만든 임시 다리와 전복된 차량까지, 모든 게 파괴된 채 남아 있었다. 신발, 모자, 유모차, 인형 등이 주변에 나뒹굴었다. 우크라이나는 이르핀 다리 역시 파괴된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는 바로 옆에 새로운 다리를 짓는 중이다. 주말인 이날도 건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매캐한 먼지 사이로 리본이 나부꼈다.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옛 이르핀 다리 옆 난간에 누군가 묶어 둔 60개의 리본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이토록 가슴 쓰린 방식으로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