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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각본 없는 도어스테핑… 국민 소통·정부 혼선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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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최고 책임자가 매일 아침 생방송으로 각본 없는 기자회견에 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어떻게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있겠나."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새롭게 도입한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를 묻자, 대통령실 관계자가 고백한 '속마음'이다.
새로운 실험인 만큼 '대통령 도어스테핑'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양하다. "신선하다"는 호평이 많지만 "사고가 날 거다"는 걱정도 있다. 대통령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을 떠나 '용산 대통령 시대'에 맞게 국민과 직접 소통을 실천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 한마디가 불필요한 오해를 낳거나 국정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이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도어스테핑 실험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대통령실은 대국민 소통의 절대적 양이 늘어난 것에 비례해 소통의 질을 확보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전문가들은 파격적인 형식과 윤 대통령 특유의 직설화법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신중하고 절제된 메시지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후 이달 26일 현재까지 48일 동안 21차례 취재진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만났다. 청사에 출근하지 않는 날이나 오전에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이 아니면 거의 매일 아침 기자들과 만나 질문과 답을 주고받은 것이다.
도어스테핑은 정해진 '룰'이 없다. 본래 대통령 기자간담회는 기자단과 대통령실이 사전 협의한 순서에 따라 질문자, 질문 개수, 주제 등을 미리 정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도어스테핑은 윤 대통령이 출근을 하면 기다리던 기자들이 순서나 주제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각자 묻고 싶은 질문을 한다.
참모들이 미리 '답안지'도 만들지 않는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어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출근 전에 언론 보도를 챙겨 보고 직접 예상 질문과 답을 정리한다"고 전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취임 초엔 기자들의 질문을 1, 2개만 받았는데, 최근엔 7, 8개의 질문에 답하는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런 도어스테핑 내용은 각 신문·방송사가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유튜브에 '무편집 동영상'도 즉각 올라온다. 대통령의 아침 출근길 기자회견을 사실상 전 국민이 매일 지켜보게 된 셈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말'이 종종 불필요한 오해나 논란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24일 고용노동부의 주 52시간제 개편 추진 발표에 대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게 아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고용부 장관의 발표를 대통령이 하루 만에 뒤집는 격이라 파장이 컸다. 그러나 사정을 들어보면, 윤 대통령이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하면 최대 9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기사를 고용부 최종 발표 내용으로 오해해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에 대해 "아주 중대한 국기 문란"이라고 질타한 것도, 군기잡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인사 번복 과정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던진 말이라 경찰이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정제되지 않은 언어는 정치적 공방의 빌미가 되기 십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라 말한 건 시위를 묵인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검찰 출신 편중 인사 비판을 놓고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냐"는 발언도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왔다.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발언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도어스테핑이 파격적 형식 덕분에 새 정부의 상징이 됐지만, 형식 때문에 위험 요소도 많다고 지적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한된 시간에 짧은 질문과 답을 주고받다 보니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의 말에 대한 추가 설명이 없으면 오해가 커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 특유의 '직설 화법'은 대통령의 언어로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강한 표현은 언론과 공직사회를 향해 프레임을 설정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대체적으로 이 같은 지적에 공감한다.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이 단호하고 확실한 어조로 성격을 정리해주면 불필요한 혼란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지만, 표현이 너무 단정적이거나 수위가 높을 때 참모들이나 각 부처가 대통령의 워딩에 갇힐 수 있다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고위관계자도 "윤 대통령 특유의 저돌적인 리더십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도어스테핑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참모들도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도어스테핑이 양날의 칼로 작용하는 것은 해외도 비슷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도 도어스테핑 과정에서 나왔다. 북한이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소형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대한 답이었다. 당시 트럼프의 발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전쟁을 직접적으로 시사한, 전례 없는 수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기자들과의 브리핑 후 인플레이션 관련 질문을 한 기자를 겨냥해 "멍청한 개자식(What a stupid son of a bitch)"이라고 나지막하게 욕설을 해 논란이 됐다.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도래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뼈아픈 질문을 받자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한 혼잣말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해당 기자에게 사과해야 했다.
도어스테핑이 일상화된 일본에서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이동을 제한한 긴급사태 선언에 대해 "인구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답해 뭇매를 맞았다. 스가 전 총리는 야외활동 '인파'를 '인구'로 잘못 지칭했다고 해명했으나,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하는데 국정 최고 책임자가 인구 감소를 '효과'라고 칭한 것은 명백한 실언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도어스테핑은 어떤 방식으로 진화돼야 할까. 대통령실 일각에선 도어스테핑 횟수나 질문 개수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윤 대통령 스스로 "다소 논란이 있더라도 국민과의 소통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고민이라고 한다.
이재묵 교수는 "대국민 소통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실 내부, 행정부 간 소통도 중요하다"며 "내부 소통을 통해 일관된 입장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준한 교수는 "대통령 말의 무게를 기억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보다, 자신의 발언 이후 국민들의 반응까지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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