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5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전쟁 당사국 양측의 인명 피해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는 이 전쟁으로 야기된 경제적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국제 유가 및 가스가격 급등, 곡물 위기, 글로벌 공급망의 훼손 등 그 피해가 상상초월 수준이다. 서구 국가들은 이를 두고 '푸틴의 인플레이션'이란 표현까지 쓰면서 러시아를 비난하지만, 러시아는 대러 경제제재가 이런 위기를 불러왔다고 주장하면서 대러 제재를 '미친'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러 경제제재가 기대했던 것만큼 효과적으로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전쟁 직후 달러당 146루블까지 폭락했던 루블화는 최근 달러당 52.3루블을 기록하면서 급반등하였다. 유로화, 위안화, 엔화, 원화 모두가 달러 대비 약세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루블화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 유일한 화폐라는 것은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니 경제제재의 한계론 혹은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 놀랍지 않다.
러시아의 '선방'에는 러시아 중앙정부 및 중앙은행의 효과적 대응, 국제유가 및 가스가격 상승, 제재로 인한 수입 축소 등 여러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서구의 러시아 고립화 정책 실패를 논하고 싶다. 전쟁 발발 이후 국내 언론, 혹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나오는 서구 언론을 보면, 마치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보였다. 지난 4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의 러시아 이사국 자격정지 투표도 그렇고, 유럽 및 미국의 고위 인사들이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번갈아 방문하는 것을 보면, 러시아는 외롭기 짝이 없는 국제사회 '왕따'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예상했듯이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다. 인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국가이며 쿼드에도 가입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러시아산 원유를 국제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대량 구매하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는 현재 인도 최대의 원유 수입 대상국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서구 지도자들에게 어찌 불편하지 않겠는가? 영국의 외무장관과 총리,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등이 급히 인도를 방문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화상 정상회담까지 진행했다. 물론 거의 같은 기간 중국의 왕이 외무장관, 러시아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인도를 방문했다. 인도의 대답은? 인도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러시아를 'OPEC 플러스'에서 퇴출하라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중동 산유국들은 러시아 퇴출은 불가하다고 표명했다. 또 대러 경제재제에도 동참하지 않는다.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러시아를 초대하지 말라는 압력에도 불구, 인도네시아는 러시아를 초대했다. 아프리카연합 의장은 푸틴과의 회담을 갖고 러시아산 곡물 및 비료는 제재의 예외로 둬야 한다고 촉구했다.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국가들도 대러 경제제재에 참여하지 않는다. 나토의 일원이기도 한 터키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경제제재 미참여 국가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푸틴이 어찌 자신감이 떨어져 주눅이 들겠는가?
전쟁을 일으킨 푸틴의 판단도 '오판'이라 할 수 있지만, 러시아를 국제경제로부터 완전 차단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다고 믿은 서구의 판단도 심각한 '오판'이었다. 이제 이 분쟁에 관련된 모든 당사국들이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된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평화는 요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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