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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시대의 직장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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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들 중 교수직이 아니라 대학 밖 연구직에 취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 교원 비중이 늘면서 정년트랙 교수직이 줄고, 대형 연구대학과 명문 사립대를 제외한 많은 대학들의 교원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해지는 바람에 박사 학위자들이 선호할 자리가 더 줄어든 미국 대학의 현실을 반영한다. 또 정년트랙 교수 자리가 나면 선택의 여지 없이 어느 곳이든 가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적지 않은 나이에 가본 적도,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이주해 새로 삶을 시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졸업한 제자 두 명도 연구직에 취업했는데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이다. 한 곳은 소수인종 관련 연구를 하는 싱크탱크인데 아예 사무실이 없고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를 한다. 다른 제자의 직장은 정부 연구기관인데, 평소 재택근무를 하고 필요한 경우만 지역 사무실에 나가면 된다. 두 사람에게 재택근무는 그 직장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한 명은 배우자도 박사 학위를 마치고 재택근무를 하는 연구직에 취업해, 미국 지도를 펼쳐 놓고 생활과 교육 환경, 가족과의 거리 등을 고려해 살 도시를 정했다. 다른 제자는 대학원에 있는 동안 배우자가 매디슨(위스콘신 주의 주도)에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되고 아이들도 생겨,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 않고 관심분야 연구를 할 수 있는 그 직장이 이상적이다.
최근 미국에서 300만 개 이상의 전문직이 재택근무로 전환되었다니 이들의 선택이 예외적인 것도 아니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미국 직업의 37%는 영구적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적어도 20%가 완전 재택근무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부분 직장인이 주 5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무실 문화에 큰 변화가 오고 있는 셈이다.
재택근무의 확산은 직장에서의 사회적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직장은 노동과 임금을 교환하는 곳이지만 중요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곳이기도 하다. 그 관계를 통해 직장 문화를 익히고, 소속감을 느끼고,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새로운 커리어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직장은 친구를 만나는 곳이기도 한데,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가까운 친구 중 직장동료는 학교 동창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재택근무 전에 오랜 직장생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쌓아 온 관계를 어떻게든 유지할 수도 있지만, 직장생활을 재택근무로 시작하는 경우 직장에서 사회자본을 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직장의 사회적 관계에 긍정적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한 조사에서 팬데믹 동안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많은 직장인이 동료와의 관계라고 답했지만, 또 다른 조사에서는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무실 문화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라는 역설적 응답이 나왔다. 특히 소수인종과 여성들 사이에서 재택근무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것은 미국 직장에서 사회자본의 혜택이 어떻게 배분되어 왔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하긴 그게 미국 직장뿐이겠는가?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도 뭐에서 해방되고 싶냐고 묻는 최 팀장에게, "인간한테서요, 지겨운 인간들한테서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재택근무 확산이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시해 왔던 사무실 문화의 빛과 그림자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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