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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을 길들인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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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5를 구매하려 할 때마다, 나는 내가 하나로 묶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전 세계적 반도체 공급 문제로 이 저주받은 게임기를 1년 4개월째 구하지 못한 것이다. 이걸 구매하려면 예약구매 추첨에 응모해야 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예약구매 일정을 네이버에서 검색했다.
곧바로 다음 플레이스테이션 구매 일정을 알려준다는 블로그 글이 화면 위에 떠올랐다. 나는 내가 정보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링크를 클릭했다. 그런데 글의 내용이 조금 달랐다. 제목은 분명히 다음 플레이스테이션5 예약구매 일정이었는데, 글에서는 약 2,000자가량의 분량을 소모하여 플레이스테이션4와 5의 성능을 비교하고 있었다.
각 게임기의 데이터 입출력 성능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예약구매 일정을 찾아왔다는 걸 까먹어버렸다. 그때 게시글 마지막에 달린 문장 하나를 읽었다. '플레이스테이션5 예약구매 일정은 유동적이므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 카톡 ID를 구독하시면 알림을 보내드릴게요!' 놀라운 정보였다. 구독하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광고를 매일매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짜릿했다.
이 블로그는 수익형 블로그였다. 맛집에서부터 전자기기까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이것저것 모아서 인터넷의 방랑자들을 끌어모은 다음 광고수익을 버는 블로그. 하지만 이 정보는… 나는 이 수익형 블로그를 좀 더 뒤져보았다. 블로그엔 정말 감탄스러운 게시글이 많았는데, 그중 특히 재능이 빛나는 건 차세대 애플워치의 스펙을 예측하는 글이었다. 이 글에서는 '애플워치의 배터리 수명이 길면 길수록 좋다'는 내용을 수백 자가 넘는 분량을 할애하여 서술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전자기기의 배터리가 오래 가면 좋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명제다. 이토록 당연한 내용을 그렇게 길게 쓰려면, 아무리 당연한 내용도 계속 곱씹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당연한가? 애플워치를 충전시키는 경험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오랫동안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거쳐 가장 날카롭게 벼려진 정신만이 이런 고도의 소크라테스식 산파법을 사용할 수 있다.
오전 10시에 이 블로그에 접속했는데, 일일 방문자만 벌써 5,000명이 넘었다. 나는 이런 수익형 블로거들이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 다음의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PD: 플레이스테이션5 예약구매 일정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요? 그럼 정보가 없는데 정보글을 어떻게 쓰나요?
달인: 아니죠! 언제나 창의적으로 사고해야 합니다. 플레이스테이션4와 스펙을 비교하는 글을 올리는 건 어떨까요?
PD: 그건… 그건 사기 아닙니까?
달인: 마지막에 카톡으로 구독하면 알려준다는 꼭지를 달면 사기가 아니지요.
PD: 그럼 그냥 그 내용만 쓰면 되지 않나요? 왜 스펙 비교를…
달인: 뭐라도 분량이 많아야 알고리즘이 검색시에 더 많이 노출시켜 준단 말입니다!
PD: !!!
그랬다. 그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네이버의 검색 알고리즘을 간파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의 글이 제일 앞에 뜨도록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알고리즘이라는 거친 말을 굴복시킨, 알고리즘의 기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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