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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를 위한 시간강사법은 안되나?

입력
2022.06.24 22:00
수정
2022.06.25 09:13
23면
박백범(가운데) 전 교육부 차관이 2019년 6월 4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강사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박백범(가운데) 전 교육부 차관이 2019년 6월 4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강사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꽃다운 20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얼떨결에 KBS 라디오의 리포터가 됐다. 그런데 문예창작을 전공해선지 방송 작가가 무척 되고 싶었다. 결국 만 5년이 지나서야 리포터에서 방송 작가로 전업할 수 있었는데 방송 작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금융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거의 1년을 쉬어야 했다. 하지만 방송 작가로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방송 작가가 아닌 삶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너무도 열심히 살았던 것인지, 마흔을 앞두고 삶의 방향을 잃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공부였다. 연구자이자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나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부터 시간강사법은 참 시끄러웠다. 시간강사법은 대학 시간강사의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해 시행된 법으로 대학에서 강사를 1년 이상 임용해야 하고, 3년 동안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정식명칭은 '고등교육개정안'이다. 나는 시간강사법이 시행되는 2019년 9월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올해로 만 3년이 되어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대학과의 계약이 오는 8월이면 종료된다.

시간강사법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시끄러웠던 이유는 대학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강사를 대량 해고할 것이라는 우려와 시간강사의 처우가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 때문이었다. 정말 시간강사법은 대학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주지 못했다. 없는 것보다 낫지만, 시간강사에게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시간강사의 처우가 개선되었다거나 고용안정이 제공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일간지에서 시간강사법 때문에 강의를 못 맡는 신규 박사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그런데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맡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강사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계약이 종료된 한 대학에서 나는 이번 학기에 3학점만을 강의하게 됐는데, 이는 전임교원이 자신의 강의가 지난 학기에 폐강되었다며 내가 맡았던 강의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6학점 강의가 기재돼 있더라도 학과에서는 시간강사의 강의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나는 위에 서술한 라디오 리포터와 방송작가 외에도 국회의원 비서와 스피치라이터 등의 직업을 경험해 보았는데, 가장 가성비가 떨어지는 직업이 대학교 시간강사다. 벌이가 가장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 안 좋은 벌이를 메꾸기 위해서 시간강사들은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사업에 지원하거나 학회의 각종 연구지원사업 등에 매달린다. 그러면서 연구실적을 되도록 많이 쌓아야 한다. 1년에 1편 논문을 등재해서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전임교원의 지원 자격요건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아직 계약이 끝나지 않은 다른 대학의 2학기 강의를 맡지 않겠다고 했다. 그 대학은 공교롭게도 모두 왕복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학과에서 강의를 6시수가 아닌 3시수만 요청했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강의하는 시간보다 길에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면 너무도 서러울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를 서럽게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윤복실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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