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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하려니 나가라" "못 믿겠다" 임대차 3법 '소송 대란'

입력
2022.06.29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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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뇌관 '임대차 3법' 진단]
<상> 계약갱신청구권 2년 혼란
애매한 법 조항으로 분쟁 양산
"구조적으로 소송 촉발하는 법"

20일 서울 강남구 공인중개사무소에 전·월세 관련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 강남구 공인중개사무소에 전·월세 관련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김모씨는 지난해 중순 자신의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이모씨에게 전세 계약이 끝나면 자신이 들어가 살 예정이라 계약 갱신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씨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다'는 문자메시지 한 통만 보낸 뒤 계약 만료를 코앞에 두고도 다른 집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조급해진 김씨는 이씨를 상대로 집을 비워 달라는 소송을 걸었다. 가뿐히 이길 걸로 봤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김씨는 통화 중 이씨에게 한 차례 "들어가 살 생각이 없다"고 짧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법원은 이를 근거로 이씨 손을 들어줬다. 이씨의 계약갱신청구권을 저지할 목적으로 실거주 사유를 들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씨는 결국 본인 집에 들어가려던 계획을 2년 미뤄야 했다. 법조계에선 "집주인도 얼마든 자유롭게 의사를 바꿀 수 있는데 법원이 이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세입자가 원하면 전·월세 계약을 연장해 최대 4년 거주를 보장하고 임대료 상승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이 내달 시행 2년을 맞는다. 당시 국회는 세입자 주거 안정이란 명분을 내세워 법 통과 바로 다음 날부터 긴급 시행을 밀어붙였다.

여당의 독주, 야당의 무기력, 정부의 무책임이 합작한 애매한 법 조항 탓에 부동산시장은 집주인과 세입자 간 소송이 봇물이 이루는 '갑을 전쟁'의 전장으로 변질됐다.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벌어지는지 따져 봤다.

검토 없이 바로 시행된 임대차 2법

임대차3법. 그래픽=김대훈 기자

임대차3법. 그래픽=김대훈 기자

2020년 7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①계약갱신청구권 ②전월세상한제 ③전월세신고제 3가지가 골자로 '임대차 3법'으로 불린다. ①번과 ②번은 유예 기간 없이 법 통과 바로 다음 날(7월 31일)부터 시행됐고 ③번은 1년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해 6월 1일부터 시행했다.

임차인은 ①번과 ②번 덕분에 1회에 한해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임대료 역시 집주인과 협의하에 5% 내에서만 조정할 수 있다. 임대료 걱정 없이 4년 거주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밀한 법안 검토 없이 바로 시행되다 보니 이에 따른 부작용이 상당하다. 특히 법 조항의 허점 때문에 ①번을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극심해졌고, 관련 소송과 분쟁으로 번졌다. 2019년 182건이던 관련 조정 건수는 2020년 270건, 2021년 585건으로 급증했다.

우선 법안을 보면, 집주인은 정당한 사유(9가지)가 있으면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임차인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집주인은 무조건 계약을 갱신해 줘야 하는 구조인데, 유일하게 집주인이 직접 들어가 살겠다고 하면 계약을 2년 만에 마칠 수 있게 했다.

집주인의 계약갱신 거절할 수 있는 경우. 그래픽=김대훈 기자

집주인의 계약갱신 거절할 수 있는 경우. 그래픽=김대훈 기자


실거주 사유 따지는 법원…시장은 대혼란

문제는 김씨처럼 집주인이 세를 준 집에 직접 들어가 산다고 세입자에게 통보한다고 해서 무조건 갱신 거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법원의 판결 경향도 그렇다. 법엔 '임대인이 직접 실거주할 때 갱신청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만 돼 있는데, 법원이 유권 해석으로 이를 확장해 판단하면서다.

A씨 사례가 그렇다. A씨는 집을 팔 목적으로 임차인 B씨에게 2년 계약 만료 후 나가 달라고 했다가 B씨가 계약갱신을 요구하자, 실거주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A씨가 주로 외국에서 활동해 당장 실거주할 걸로 예상되지 않고 나아가 실거주 요건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면 집주인의 요건 남용으로 임차인의 권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법무법인들은 임대인들에게 계약갱신 기간을 앞두고 임차인에게 섣불리 "실거주 할 계획이 없다"거나 "집을 팔 계획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최근 법원 판례에 비춰 볼 때 이런 발언들이 재판에서 임대인이 실거주할 의사가 없다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법도의 엄정숙 변호사는 "임대인은 계약갱신을 받아들일 것인지 실제 거주할 것인지 선택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법원의 해석은 임대인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법 시행 이후 실제 거주하려는 목적의 해지 통보가 유효한지, 정당한지를 놓고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주인의 실거주 목적의 갱신거절에 대한 최근 법원 판례. 그래픽=김대훈 기자

집주인의 실거주 목적의 갱신거절에 대한 최근 법원 판례. 그래픽=김대훈 기자


실거주 목적 매수라도…임차인 계약갱신 거절 못해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갱신요구권이지만, 오히려 그 권리 탓에 또 다른 서민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많다. B씨는 지난해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샀는데, 당시 해당 집엔 C씨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B씨는 C씨에게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산 거니 집을 비워 달라고 했지만, C씨는 종전 임대인에게 이미 계약갱신을 요구했다며 거절했다.

B씨는 주택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했지만, 조정위는 오히려 C씨 손을 들어줬다. 앞선 법원 판례를 근거로 B씨가 집을 사면서 전세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의무도 같이 승계했다는 논리였다. 당장 살 집이 없어진 B씨는 C씨에게 500만 원을 보상비로 주고 2개월 추가로 살게 해 주는 조건을 내건 뒤에야 갱신을 하지 않기로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정위가 근거로 삼은 법원 판결은 최근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원심처럼 해석하면 임차인이 있는 주택을 산 실거주 목적의 매수인이 감당해야 할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법원 판단마저 엇갈리면서 정확한 잣대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부동산시장에선 '계약갱신청구권을 아직 쓰지 않은 세입자가 있는 집'이 가장 큰 리스크로 떠올랐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혹시라도 임차인이 마음을 바꿔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복잡한 분쟁 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어느 매수인이 그런 집을 사려 하겠느냐"며 "급매로 내놓은 집 중엔 그런 집이 꽤 많다"고 귀띔했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전월세 안내문.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전월세 안내문. 연합뉴스


세입자 "실거주 입증해라…거짓이면 손해배상" 요구

조정절차. 그래픽=김대훈 기자

조정절차. 그래픽=김대훈 기자

세입자들은 실거주를 이유로 집주인이 갱신 거절을 하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적극 조정 신청을 한다. 조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계약갱신·종료와 관련돼 들어온 분쟁 건수는 307건으로 조정위 설립 이후 가장 많았는데 상당수가 임차인 신청 건으로 추정된다. 정부 산하의 조정위에서 조정이 성립되면 민사상 서로 합의한 것과 같은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소송 단계로 넘어간다.

세입자들이 비용을 내고 분쟁 조정을 신청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만에 하나 집주인이 실제로 들어가 살지 않는 게 드러났을 때 받을 손해배상금을 확정 짓기 위해서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조정위에서 집주인의 실거주 계획이 입증되면 그 다음으로 대부분 실거주가 허위일 때 임차인에게 얼마를 보상하겠다는 내용의 문구를 합의서에 넣는다. 실제 실거주하겠다고 갱신 청구를 거절한 이후 해당 집을 팔거나 제3자에게 임대를 내줬다가 발각돼 많게는 1,000만 원 안팎의 손해배상을 한 집주인도 많다.

집주인들은 당연히 불만이다. 임대인의 재산권을 비롯해 임대인의 권리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법이란 것이다. 가령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 거절을 했더라도 갑자기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지거나 세금 납부 등의 이유로 집을 팔아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정당한 매각 사유로 인정되지 않아 민법 750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는 경우는 직계존속이 사망하거나, 실거주 중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되는 경우 등 일부에 그친다. 집주인 황모씨는 애초 자녀를 실거주시키려고 갱신 거절을 했지만, 이후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 세를 놓았는데 세입자에게 발각돼 170만 원을 손해배상금으로 물어 줬다.

최근 임차인에게 수천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집주인 이모씨는 "전셋값도 깎아주며 여러 편의를 봐줬는데 실거주 목적으로 갱신 거절 뒤 갑자기 사정이 생겨 6개월 뒤 세를 놨는데 그걸 보고 수천만 원 소송을 걸었다"며 "도대체 임대인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라고 분개했다.


전문가 "임대차 3법은 구조적으로 소송 촉발하는 법"

임대2법 관련 조정건수. 그래픽=김대훈 기자

임대2법 관련 조정건수. 그래픽=김대훈 기자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이 구조적으로 "소송을 촉발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법 조항은 애매한데, 법원이 입법 취지를 고려한다며 다양한 유권 해석을 내놓은 탓에 예측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고, 결국 소송을 통해 권리 관계를 확인받아야 하는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거절당해도 집주인에게 소송하라며 버티는 경우도 늘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주변 전셋값이 워낙 뛰어 당장 이사 가기가 마땅찮은데, 소송 기간(대략 6개월) 동안엔 기존 집에서 살 수 있고 합의 과정에서 위로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증금을 떼이거나 딱히 손해 볼 건 없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임대제도 특성상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세 들어 사는 가구가 많은데 일방적으로 임차인의 권리만 극대화하면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다"며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여러 조치들이 오히려 임차인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제도 도입 초만 해도 전월세시장이 안정될 거라며 시장의 문제 제기를 일축하다시피 했지만, 최근 제도 개선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부 실익도 있지만 각종 부작용과 시장 혼선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며 "국회 원 구성이 이뤄지는 대로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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