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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현대사와 함께한 책방…"주인은 제가 아닌 손님 여러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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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부산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부산BIFF(부산국제영화제) 거리를 가로질러 걸어가던 발걸음을 재촉하자 부평깡통시장 간판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독한 미식가의 입맛을 유혹하는 먹거리 골목을 지나치자, 건널목 너머로 ‘보수동책방골목 문화관’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갈치역에서 나온 지 10여 분 만이다. 문화관 왼쪽 길로 10m 걸어가면 맞은편에 계단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성인 두 명이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 서점들이 보인다.
빛이 바랜 나무판 위에 ‘월드서점’이라고 쓰인 간판이 걸린 곳으로 들어섰다. 책장은 물론 바닥 곳곳에 수북이 쌓인 책 사이로 주인장 배순한(77)씨가 앉아 있었다. 그는 “'사람이 책을 만들었지만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 현대 산업 발전은 무수한 기술 관련 서적들이 바탕이 됐다”고 말을 건넸다.
배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78년 베트남전쟁 파병을 마치고 외국서적 수입 업체를 다닌 게 계기가 됐다. 10평 남짓한 작은 규모지만, 개업 초기만 해도 월드서점은 부산에서 외국 기술 관련 원서를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1970년대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많은 회사들의 기술개발 관련 부서가 몸집을 한창 키웠던 시기다. 배씨는 “당시 대학들도 정부의 공대 육성 정책에 따라 관련 학과를 만들고 인재를 배출하던 시기라 외국 기술 원서는 필수적이었다”고 말했다. 외국 기술 관련 원서가 들어오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일본의 발전된 조선 설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부품 수입을 핑계로 100여 명의 시찰단을 보냈다. 메모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시찰단원들이 개별적으로 전문 분야의 기술을 눈으로 보고 기억해 귀국한 뒤, 자료화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기에 외국 기술 관련 원서를 구할 수 있는 월드서점은 부산은 물론 인근 울산과 경남에서 온 기업 기술자와 연구원, 대학교수, 학생들로 붐볐다. "하루에 외국 서적만 100권 넘게 들여온 적도 있었다"는 게 배씨 얘기다. 일손이 부족해 부인까지 서점에 나와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그는 “교수나 회사 기술자들이 서점을 찾아와 귀한 서적을 취급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할 때 제일 기분이 좋았다”면서 “내가 구해 온 책이 우리나라 산업 발전이나 연구, 기술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뿌듯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서점에서 책을 구입해 연구하던 부산의 한 조선 회사 기술자는 국내 유명 대학 총장이 됐다고 한다.
배씨는 단순히 서점이 아닌 한국의 기술산업에 기여한다는 소명감이 지금까지 월드서점을 운영해 온 동력이라고 말했다. 손님들이 원하면 각종 기술이나 부품 등과 관련한 국제 규격집도 구해다 줬다. 부산·경남 지역 관련 회사 부서 담당자 사무실 책상에 놓인 규격집 대부분은 배씨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책이 단순한 종이가 아님을 깨닫고 더 좋은 책을 구해서 전달하고 싶어 구해 달라는 책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구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직접 책을 만들기도 했다. 선박에서 쓰는 용품 목록을 정리한 선용품(船用品) 관련 서적을 번역해 달라는 주문이 싱가포르에 있는 국내 업체로부터 들어왔을 때다. 영어 번역본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 선박 업체들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제작했다.
호황기는 지났지만, 지금도 배씨는 일반인들이 구하기 힘든 외국 서적을 구입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인테리어와 패션, 건축, 디자인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를 위해 그는 서적 수입 업체에서 보내주는 카탈로그뿐만 아니라 외국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신간 서적 등도 꼼꼼히 살핀다. 서점 안에 있는 작은 책상 위에는 발간 예정일과 출판사, 책 제목이 영어와 일본어로 적힌 주문서와 영수증, 서적 안내서로 가득했다.
기술 관련 서적 외에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파이널 판타지’ ‘에반게리온’ ‘지브리 회화의 대가’ 등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서적과 최신 패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외국의 패션 잡지들도 서점 한곳을 채우고 있었다. 배씨는 “요즘 산업은 조선 등 중공업이나 기계 분야에서 애니메이션이나 영상, 게임 등으로 이동했다”면서 “거기에 맞는 외국 서적을 구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그러면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견본 한 권을 감각적으로 구입해 수요 여부를 파악한 뒤 추가로 책을 들여오고 있다”며 “책이 재고로 남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게 노하우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배씨는 월드서점은 물론 보수동 책방골목에 대한 애정이 깊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와 돈이 궁한 피란민들이 헌책을 팔면서 형성됐다. 1960, 70년대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이후에도 책을 거래하는 공간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 곳으로 부산 시민들에게 각인돼 있다.
12ㆍ12사태 이듬해인 1980년 2월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치던 학생들은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당시 월드서점으로 들어온 학생들에게 배씨는 책을 나눠 주며 “책을 사러 온 사람처럼 있으라"며 기지를 발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당시 대학 휴교령 때문에 수업 교재를 팔지 못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배씨의 기억이다.
그는 “사람들이 책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천장까지 쌓인 책들처럼 많은 역사와 사연이 쌓여 있는 곳”이라며 “보수동 책방골목은 시민들의 마음과 정신의 문화유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많은 서점이 한데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창때 80곳이 넘었던 보수동 책방골목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서점은 30곳 정도다. 배씨는 “책방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곳으로는 여기가 전국에서 제일 크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문화 구역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점 안을 둘러보던 배씨는 “나는 얼마나 서점을 운영할지 모르지만 역사의 산실을 보존하고, 산 역사가 다음 세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 일 아니냐”면서 “책방골목에 있는 서점의 주인은 사장 개인이 아니라 여기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2019년 부산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미래유산 지정의 근거가 되는 조례만 있을 뿐 보존·관리를 위한 실질적이고 제대로 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책방골목을 지키기 위한 서점 주인들과 민간 차원에서의 크고 작은 노력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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