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의 은밀한 거래 "SAT 고득점 2000만원" "美 의대 족보도 구해줘"

입력
2022.06.27 04:30
<3> 지금 압구정에선 무슨 일이
<해외 대학 입시 컨설팅 세 곳 상담 받아보니>
SAT 만점도 가능... 티 나니 한두 개 틀리라고 권고
1000만 원에 대회 참여 없이 장관상 수상도 가능
800만~1000만 원 주면 브로커 통해 논문 대필도
"원하는 학부모 있어 불법·편법 컨설팅 안 사라져"
흙수저 유학생 "결국 돈...노력할 기회 빼앗겨 허탈”

편집자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에게 제기된 ‘편법 스펙 쌓기’ 의혹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일보 조소진·이정원 기자는 ‘아이비 캐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논란의 진원지인 미국 쿠퍼티노와 어바인을 찾아갔다.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송도, 미국 대입 컨설팅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도 집중 취재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는 유학원과 해외 대학 입시 관련 학원들이 밀집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홍인기 기자

서울 압구정의 여름방학은 유학생들에게 '스펙 쌓기' 성수기다. 유학생 사이에선 방학 때 압구정 학원에서 컨설팅을 받거나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SAT)과 대학 학점 선이수(AP) 수업을 듣고, 리서치와 인턴십 등 스펙을 쌓는 것을 ‘변신’ 또는 ‘무장’으로 통한다. 실제로 유명학원 SAT 대비반은 미국 고교의 봄 학기가 끝날 무렵인 5월 말이면 대부분 마감된다.

한국일보는 이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여러 유학생을 만났다. 12학년(고3)을 앞둔 유학생 박민아(19·가명)씨는 “저도 돈만 있으면 방학 때 한국 들어가서 ‘무장’하고 싶다”며 “이번 방학 때 에세이(자기소개서)를 써놔야 하는데 리서치 경험은 없고 SAT 점수도 낮아서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고교 1학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오른 민아씨는 가정 형편 탓에 사교육은 언감생심이었다. 민아씨는 그러면서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고액 입시 컨설팅의 세계에 대해 궁금해했다.

본보는 민아씨의 실제 상황을 토대로 압구정의 유명 컨설팅 및 해외 대학입시 전문학원 세 곳에 상담을 의뢰했다. 컨설팅이 학생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 상담을 통해 ‘아이비 캐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상담은 민아씨의 동의를 구한 뒤 기자가 직접 압구정동 학원을 방문해 진행했으며, 민아씨의 실명과 재학 중인 고교, 구체적인 활동은 기사에 비공개 처리했다. 학원은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인천 송도, 미국 쿠퍼티노와 어바인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추천을 받았다. 학원마다 1시간 남짓 상담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압구정식 사교육의 세계'는 놀랍고 씁쓸했다.

유학생 박민아(19·가명)씨 상담 정보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립 고등학교 11학년 재학 중
▲내신(GPA): 3.92/4.0만점
▲미국 대학 입학 자격시험(SAT): 1310/1600점 만점
▲AP(대학 학점 선 이수제, 5점 만점): △AP Biology: 5 △AP Chemistry: 4 △AP Calculus AB: 5 △AP Calculus BC: 4
▲목표 대학, 학과: △Cornell University, Biology △UC Berkely, Biochemistry △Duke, Biology
▲활동: 오케스트라 등 예체능 활동
▲특이사항: 향후 의대 진학 목표. 코로나19 때문에 리서치나 인턴십, 어워드 경험 없음.

유학생 박민아(가명·19)씨 성적표. 박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립고교 11학년(고2)에 재학 중이다. 박씨 제공


“8월 SAT 시험 한국에서 봐. 만점은 티나니까 1, 2개 틀려야”

그래픽=송정근 기자

“민아는 SAT 점수가 급한데요. 8월 SAT는 무조건 한국에서 보세요.”

유명 해외 대학입시 전문(Prep) 학원의 수장인 A원장은 전 세계에서 같은 날 진행되는 SAT 시험을 무조건 한국에서 보라고 했다. 유학생 대부분이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시험을 보기 때문에 시험 장소 대부분이 마감됐다고 하자, 원장은 직접 시험 장소를 찾아주기까지 했다.

이 학원의 SAT 수업은 후불제다. 기본 컨설팅 비용만 받고, 나머지 비용은 시험이 끝난 뒤 송금하는 식이다. 원장은 “만점도 만들어줄 수 있다. 근데 갑자기 점수가 많이 오르면 티가 나니까 한두 개는 틀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차가 있는 다른 나라에서 먼저 치러진 문제를 빼오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영업비밀이라 이야기해줄 순 없다. 그동안 우리 적중률은 95%에 달했다. 후불제로 받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적중하면 성공 보수로 2,000만 원을 송금하면 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제주 국제학교 인근에 있는 학원가 홍보물. 해당 지역에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많은 유학원들의 '분원 캠퍼스'로 운영되는 곳도 많았다. 제주=조소진 기자

업계에선 ‘SAT 문제 유출’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만연한 문제라고 본다. 실제로 2020년 경기 용인시의 특목고 교직원이 SAT 문제를 유출해 브로커와 강남 소재 학원에 유출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업계에선 ‘운이 나빠 걸린 일’로 치부했다.

서울 소재 외국인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김모(23)씨는 “SAT 시험 보고 나오면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몇 개 겹쳤냐’는 말을 대놓고 한다”며 “학원에서 알려준 문제와 몇 개 일치했는지 따질 정도로 유출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장관상, 논문 제작’ 모두 가능... 미국 의대 '족보'까지 구해주기도

서울 압구정동에서 리서치 프로그램, 논문 작성 등으로 유명한 한 입시 컨설팅 학원의 문자 내용. 독자 제공

학원에선 '장관상' 제작도 가능하다고 했다. 대외활동(EC)이 없어 리서치나 수상 경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불안해하자, B원장은 “솔직히 급조한 수상 경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면서도 “내가 부탁하면 대회에 참여하지 않고도 수상권에 들 수 있다. 1,000만 원 안쪽으로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대회는 청소년 리더십 단체의 한국본부가 주최했다. 이 단체는 해외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곳으로, 다수의 국제학교와 특목고 학생들이 이곳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과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특정 학원에서 컨설팅을 받는 학생을 우대해준다고도 했다. 학생이 지원할 때 학원 추천서를 넣어주면 수상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학부모 고모(45)씨는 “한국 학원들끼리 만든 '셀프 대회'가 많고, 정부에서 지급하는 상장이 인정받다 보니, 학부모들이 로비를 해서라도 국회의원상, 장관상, 시장상을 추가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순진하게 참가하는 학생들은 바보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유명한 한 입시 컨설팅 학원 상담실장과의 통화 내용.

학원에서 리서치 페이퍼(논문 작성)를 설명하는 과정에선 표절이나 대필 브로커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C학원 상담실장은 “전문 브로커에게 연결해주는 비용이 800만 원에서 1,000만 원 사이”라며 “우린 마진 안 남기고 바로 연결해준다. 생명과학분야 유명학술지인 캠벨(Campbell)에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표절이나 대필 사고가 나면 어떡하느냐’고 묻자, “처음부터 다 그렇게 돼 있는 거고, 그냥 다 연결해서 만들어주는 게 현실이고 이쪽 시스템”이라며 안심시켰다.

C학원에선 대학 학점 선이수(AP) 준비뿐 아니라 대학 진학 후 미국 의대 입학시험(MCAT)과 의대 본과 진학 후 학점까지도 관리해주고 있었다. 이 학원은 미국 현지 의대의 '시험 족보'까지 구해 학점 관리를 해주고 있었다. C실장은 “다른 유학원에선 학원을 매개로 연결해주는 역할만 하지만, 우리 학원은 일대일 과외 형태로 수업을 진행해 점수 만드는 데 아주 특화돼 있다”며 “입학 후에도 해당학교 성향과 교수 수업 스타일에 맞춰 예상문제를 제공해준다”고 홍보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학부모·학생 “그렇게 다 돈으로 해결... 들러리 선 내가 허탈”

자녀 유학을 준비하는 학부모들은 알음알음 학원 리스트를 공유하고 있었다. 부모들끼리 '특별반'을 만들어 ‘대외활동(EC) 공동체’로 스펙 품앗이를 해주기도 했다. 돈만 주면 논문 저자에 서로 이름을 올려주고, 학원에서 만든 대회를 공신력 있게 보이려고 함께 참여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자녀가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부모(47)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일가의 '스펙 공동체' 의혹을 보자마자 압구정 학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며 “수상은 이 학원, 논문은 저 학원에서 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뻥튀기 스펙'을 돈 주고 사서 아이비리그에 가는 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미국 현지에서도 대입을 앞둔 학생들에겐 논문 작성, 봉사활동 등 다양한 종류의 고액 스펙 쌓기를 제안하는 유학원 홍보 우편이 쇄도한다. 사진은 박씨가 받은 홍보 우편. 어바인=이정원 기자

대리 상담에 동의해준 민아씨에게 컨설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전했다. 민아씨는 “정말요? 그게 가능하대요?”라고 연신 되물었다. 하지만 학원 비용을 듣고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모두 돈이네요. 그동안 이들을 위해 들러리만 선 것 같아 너무 허탈해요.”

"학부모 있는 한 불법·편법 입시 컨설팅 사라지지 않을 것"

1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 유학, 해외 대학 입시 관련 학원들이 밀집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홍인기 기자

대필과 표절로 점철된 입시 컨설팅은 학생 맞춤형 설계라는 이유로 깜깜이로 진행돼 탈세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학부모들은 학원 측에서 ‘현금’ ‘성공 보수 지급’ ‘시작하면 환불 불가’를 계약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전했다.

압구정 학원에서 상담을 받았던 정모(46)씨는 “1년에 5,600만 원짜리 VVIP 컨설팅 상담의 경우 50%만 계약금으로 걸어놓고 1년 뒤에 30%, 그 뒤에 잔금 20%를 현금으로 내야 했다”며 “일시불이면 5% 할인해준다고 했지만, 이 역시 현금 결제가 기본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 단속은 한계가 뚜렷하다. 2019년 교육부·경찰청·국세청은 전국 입시 컨설팅 학원 258곳을 전수조사하며 입시 관련 중대 위법행위가 적발되면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을 선언했지만, 학원들은 이를 비웃듯 버젓이 불법·편법 컨설팅을 이어가고 있다.

기자에게 취재 내용을 모두 전해 들은 민아씨는 떨리는 목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말했다. “적어도, 주어진 자리에서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의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돈과 권력으로 모든 걸 빼앗아도 되는 건가요.”


◆비뚤어진 욕망, 아이비 캐슬

<1>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사교육

<2> 쿠퍼티노에서 벌어진 '입시 비리'

<3> 지금 압구정에선 무슨 일이

<4> '흙수저' 유학생들의 한탄과 분노

쿠퍼티노·어바인= 조소진 기자
쿠퍼티노·어바인=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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