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이면 아이비리그 스펙 완벽 설계 'VVIP 컨설팅'

입력
2022.06.23 04:30
<1>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사교육
유명 해외 대학입시 전문 컨설팅 회사 견적서 입수
VVIP 컨설팅 항목만 50여개..."몸만 오면 되는 수준"
美 명문대 입학사정관 출신 멘토링에 '셀프 대회'도
"돈 넣은 만큼 돈 낳는다"..상류층 '특권 대물림' 악용

편집자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에게 제기된 ‘편법 스펙 쌓기’ 의혹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일보 조소진·이정원 기자는 ‘아이비 캐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논란의 진원지인 미국 쿠퍼티노와 어바인을 찾아갔다.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송도, 미국 대입 컨설팅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도 집중 취재했다.


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일대에 유학·해외 대학 컨설팅 관련 학원들이 밀집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홍인기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랑 처조카요?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걸릴 게 걸렸다 싶었어요. 다 그렇게 만들어서 해요. 솔직히 돈 없는 집 학생들한테 미안하죠. 그 친구들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미국 명문대 입시 준비는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니까요. VVIP(극소수의 상류층 고객) 고객 학생들은 에세이부터 대외활동(EC), 봉사활동, 상장 모두 돈 주고 설계해요.”

해외 대학 입학을 도와주는 컨설팅업계에서 10년간 일했다는 A(42)씨는 논문 표절과 대필, 각종 대회 출품을 위한 앱 대리개발 등 ‘편법 스펙 쌓기’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한동훈 장관 자녀와 처조카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잘못된 행동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미 널리 퍼져 있는 '빙산의 일각'이란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컨설팅업계에선 이번 사건을 통해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대한민국 상류층의 미국 대학 입시용 ‘편법 스펙 쌓기’ 실태가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A씨는 이 같은 한국인들의 행태를 ‘스카이 캐슬’을 넘어선 ‘아이비 캐슬’에 빗대기도 했다.

13일 인천 연수구 송도에 위치한 채드윅국제학교 전경. 이 학교의 학비는 등록금(300만 원) 등을 제외하고 고등 과정이 연간 4,517만 원, 중등 4,100만 원, 초등이 3,794만 원에 달한다. 스쿨버스비 등을 포함하면 고등 과정의 경우 순수 학비만 연간 5,000만 원 선이다. 인천=홍인기 기자

한국일보는 ‘아이비 캐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입시 비리 논란이 불거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와 ‘미국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어바인,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인천 송도, 유학원과 미국 대입 컨설팅 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을 한 달 동안 집중 취재했다.

그곳에는 ‘아이비리그(미국 동북부에 있는 8개의 유명 사립대학)’로 대표되는 미국 명문대 진학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어두운 단면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들은 해외 명문대 타이틀을 부와 특권을 대물림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이용하고 있었다.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아이비 캐슬’의 민낯과 비뚤어진 욕망이 투영된 한국인들의 해외 대학입시 준비 실태를 들여다봤다.

1억4000만원에 ‘전부 다 설계해주는’ VVIP 컨설팅

유명 해외 대학입시 전문 컨설팅 회사의 견적서를 재구성한 모습. 고교 4년간 대회 준비 5개, 리서치 페이퍼 2개, 유료 인턴십 1개를 추가로 지원해주는 VVIP 프로그램의 금액은 1억4,000만 원이었다. 독자 제공·그래픽=송정근 기자

‘미국 명문대 입시는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23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해외 대학입시 전문 컨설팅 회사의 견적서에 따르면, VVIP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은 돈만 주면 사실상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수준이었다. 이 회사의 VVIP 컨설팅은 미국 고교 4년간 아이비리그 입학사정관 출신 멘토가 특별 컨설팅을 해준다는 점을 내세웠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컨설팅 회사의 구체적인 항목과 비용이 자세히 공개되는 것은 처음으로, 이 회사가 관리하고 컨설팅해주는 항목은 50여 개에 달했다. 크게는 내신(GPA)과 비교과 관리, 공인성적과 대학 원서 관리로 나뉘었다. 세부적으로는 △고교 학년별 수업 설계 △학교 과제 첨삭 피드백 △비교과 리더십 프로젝트 컨설팅 △국내외 인턴십 연결 △학원 및 강사 선택 △F1 비자(미국 학생 비자) 신청 △기숙사 신청 등 생활 곳곳에 컨설턴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었다.

유명 해외 대학입시 전문 컨설팅 회사의 견적서를 재구성한 모습. VVIP 컨설팅을 받을 경우, 학년별 수업 설계부터 국내외 인턴십 연결, 학원 및 강사 선택, 비자 신청까지 약 50여 개 항목을 제공해준다고 했다. 독자 제공·그래픽=송정근 기자

이곳에서 상담받았던 한 학부모는 “‘학생은 몸만 있으면 된다. 알아서 모두 해드리니 걱정 마시라’고 강조하니까 돈만 있으면 당장 등록하고 싶었다”며 “컨설팅을 받으면 합격률이 4배 이상 높아진다고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퀄리티의 로드맵이었다”고 전했다.

미국 대입에서 중요한 대외활동(Extracurricular Activity)도 모두 돈으로 해결됐다. VVIP 컨설팅 프로그램에는 고교 4년간 대회준비 5개, 리서치 페이퍼 2개, 유료 인턴십 1개가 포함돼 있었다. 대회는 ‘상을 받을 때까지’, 리서치 페이퍼는 ‘학술지에 게재될 때까지’가 조건이었다. 사실상 돈만 주면 될 때까지 만들어준다는 의미였다. VVIP 컨설팅 비용은 4년(9~12학년) 동안 최소 비용 1억4,000만 원(세금 미포함)에서 시작했다.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SAT)이나 토플(TOEFL), 대학 학점 선이수(AP) 시험 준비, 페이퍼 리뷰 비용은 별도였다. 어림잡아 2억 원이 있으면 미국 대입 준비를 알아서 해준다는 뜻이었다.

상담 받아 보니 “한동훈 조카 같은 사고 안 나요”

2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한 대학 입시 컨설팅 학원 모습. 코로나19 영향으로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 제출이 선택사항으로 바뀌며, 입시 과정에서 대학 학점 선이수(AP), 대외활동(EC) 등이 더 중요해졌다고 광고하고 있다. 쿠퍼티노=이정원 기자

해외에 본사를 둔 대학 입시 컨설팅업체들은 교육열이 높은 한국 부모들을 고려해 ‘한국 특화’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달 중순 한 입시 컨설팅업체에서 상담을 받아 보니 특화 서비스 홍보에 열을 올렸다. 업체 관계자는 “미국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한인들이 한국 지점을 찾을 정도로 밀착 관리해주고 있다”며 “한국 지점에서만 해주는 특별 서비스가 많다. 논문 작성을 위한 국내 교수진 라인업도 마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논문 작성을 전제로 한 리서치 프로그램을 홍보할 때는 한동훈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의 ‘편법 스펙 공동체 의혹’을 의식한 듯 “그런 사고는 절대 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 프로그램은 논문을 사오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대필이나 표절 논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소속 교수 또는 박사과정생과 진행하는 6주 단기 리서치 프로그램 참가 비용은 600만 원부터 시작했다.

유명 해외 대학입시 전문 컨설팅 회사의 견적서를 재구성한 모습. 유명 컨설팅 업체에서 제안한 대회 준비 비용으로, 이 회사의 컨설팅을 받지 않는 외부 고객은 대회 준비를 신청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독자 제공·그래픽=송정근 기자

상을 받기 위한 대회 준비 프로그램은 VIP 컨설팅 고객만을 대상으로 진행돼 ‘그들만의 리그’나 마찬가지였다. 이 관계자는 “없는 상장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면서도 “수상할 수 있을 때까지 학생을 관리해주는 게 컨설팅의 역할이고, 한국 압구정에선 이미 이렇게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컨설팅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문제는 '컨설팅' 이름으로 진행되는 '스펙 쌓기'가 불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이다. 수상 경력을 만들기 위해 컨설팅 학원에서 각종 '가짜' 대회를 만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서울 소재 외국인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김모(23)씨는 “컨설팅업체에서 이른바 '셀프 대회'를 여는 경우도 많다”며 “참가자가 3명인데 수상자가 3명인 경우부터,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서울 강남구 인터내셔널 승마대회'까지 온갖 대회가 다 있다”고 말했다.

어바인에도 상륙한 ‘압구정식’ 컨설팅

미국의 한 대학 입시 컨설팅 학원의 가격표. 과목별 튜터링 비용은 카운슬러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독자 제공

이처럼 돈만 내면 점수를 보장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리수를 두는 ‘압구정식’ 컨설팅은 미국 현지에도 상륙했다. 유학생 이모(27)씨는 “일본, 중국, 한국, 유럽에서 온 유학생들을 모두 봤지만 한국처럼 체계적으로 입시 컨설팅을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미국 컨설팅 학원은 에세이 첨삭 때 간단히 코멘트만 해주는 반면, 한국식 컨설팅 학원에선 대학 지원도 해주고, 점수도 만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1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있는 학원가 모습. 2층짜리 건물 29개가 한곳에 모여 대치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원가를 만들었다. 학원 대부분은 한국인이 운영 중이다. 어바인=조소진 기자

지난 1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쪽 어바인 학원가에서도 ‘압구정식’ 컨설팅 학원을 목격할 수 있었다. 2층짜리 건물 29개가 한곳에 모여 있는 루스벨트가에는 학원만 40여 개가 넘었다. 수학부터 영어 글쓰기, 북클럽, 미술, 펜싱 등 학원 종류는 다양했지만, 90% 이상이 한국 학원이었다. 한 미국 대학입시 준비(Prep) 학원을 찾아가 보니 대뜸 누구 소개로 왔는지부터 물었다. 학원 관계자는 “주변 학교의 시험 문제 족보를 꿰고 있어 내신(GPA) 점수는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대외활동(EC)도 함께 하고 있어 확실한 사람이 아니면 수강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학원을 매개로 부정하게 스펙을 쌓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어바인 학원가 근처의 중국계 컨설팅 학원에 찾아가 “리서치 페이퍼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학원 상담 직원은 “한국 학원이 잘해줄 텐데 왜 우리 학원에 왔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컴퓨터 사이언스 관련 리서치 페이퍼를 박사과정생과 쓸 수 있게 해줄 테니 현금 2,000달러(260만 원)를 디파짓(착수금)으로 먼저 달라”고 말했다. 논문 하나를 통째로 대필해주는 금액은 1만5,000~2만 달러(2,000만~2,500만원) 정도라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학원가에 있는 한 중국계 컨설팅 학원 모습. 이 학원에서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에서 고득점(1,600점 만점에 1,540점)을 받은 학생이 나왔고, 유명 대학에 합격했다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어바인=조소진 기자


‘스카이 캐슬’에서 ‘아이비 캐슬’로... 왜?

제주 영어교육도시 내에 있는 세인트존스베리 아카데미(SJA) 제주의 모습. 하교시간이 다가오자 학부모들이 교문 앞에 차를 대고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조소진 기자

국내 상류층 학부모들이 미국 명문대학 입시에 목을 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입시 전문가들은 대학 입시제도 차이를 이유로 꼽았다. 한국에선 대학 교수들이 자녀를 논문 저자로 끼워 넣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부모의 경제력과 인적 네트워크가 스펙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2014년부터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외활동을 기입하지 못하게 됐다.

반면 미국 대학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포괄적 입학사정관제(Holistic review)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기에 학생이 제출한 '스펙'을 자세히 검증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스펙이 효과를 발휘하기 쉽기 때문에 국내 상류층의 시선이 미국으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어바인에서 만난 '어드미션 매스터즈'(컨설팅학원) 지나 김 대표는 “미국 대학에선 내신(GPA), SAT 점수, 과외활동, 에세이, 추천서, 인터뷰 결과 등을 취합해 실력과 인성,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며 “우등생이라고 해서 합격 가능성이 커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명문대 졸업장은 한국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돈을 넣은 만큼 돈을 낳는 것’이 미국 대학 입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제학교를 다니던 두 자녀를 모두 미국 대학에 보낸 학부모 한모(51)씨는 “아이비리그 입시는 부모 경제력과 정보력 싸움”이라며 “(스펙을 쌓는 데) 돈만 뒷받침되면 국내 명문 대학보다 들어가기 쉽고 효용가치도 큰 알짜배기 졸업장을 얻을 수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컨설팅업계에서도 “편법 스펙 만드는 한국 학부모들 씁쓸”

제주 국제학교 인근 학원가의 홍보 모습. 이 학원 출신들이 해외 유명대학에 진학한 성과를 홍보하고 있었다. 제주=조소진 기자

한국 학생과 학부모를 고객으로 삼고 있는 컨설팅업계에서조차 비뚤어진 욕망을 지닌 한국 학부모들에 대한 쓴소리가 나왔다. 일부 상류층이 부와 학력,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한 '지름길'로 미국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는 과정에서 편법과 반칙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바인의 한 입시 컨설턴트는 “미국 대학은 집안과 재력도 유산(legacy)이자 능력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국내 상류층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비밀유지 조항에 서명했기 때문에 고객 실명을 밝힐 순 없지만, 상류층 다수가 ‘미국 입시는 돈이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족집게 SAT 과외, 에세이 첨삭, 인턴십, 논문, 추천서 등을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고, 학생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는 운동과 악기만 하다가 명문대에 입학한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학 입시 컨설팅학원을 운영 중인 양민 원장은 “한국에서 상담 전화를 거는 학부모 중에는 ‘에세이 써 주시는 분 학벌이 어떻게 되죠?’라고 묻는 분들이 꽤 있다”며 “애초에 컨설팅 자체를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그릇된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편법 스펙을 토대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나는 떳떳하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된다”며 “한국 사회가 괴물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비뚤어진 욕망, 아이비 캐슬

<1>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사교육

<2> 쿠퍼티노에서 벌어진 '입시 비리'

<3> 지금 압구정에선 무슨 일이

<4> '흙수저' 유학생들의 한탄과 분노


쿠퍼티노·어바인= 조소진 기자
쿠퍼티노·어바인=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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