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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입력
2022.06.18 04:30
22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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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이 무슨 말이에요?", "비둘기는 평화를 뜻하나요?" 20여 년 전, 한국 기차를 타 본 외국인들이 했던 질문이다. 기차의 위계상 '무궁화'나 '통일'보다 더 위인 '새마을'에 담긴 가치를 궁금해했다. 수십 년간 부르던 기차 이름에는 한국의 주요 관심사가 녹아 있다는 것을 외국인의 질문을 듣고서야 비로소 되새겨 보곤 했다.

2004년 'KTX'가 등장했다. 'Korea Train eXpress'에서 따왔다지만, 이제는 기차 이름을 두고 더 이상 질문받을 일도, 스스로 되새길 일도 없겠다 싶었다. 고속철을 운행 중인 나라가 전 세계에서 얼마 없는데, 이런 자랑스러운 일을 드러낸 방향이 정작 한국인의 입과 귀에 낯선 'KTX'였다. '신칸센(新幹線)', '테제베(TGV)' 등은 이름 하나로 그 나라를 떠올리게 하지만, 알파벳으로 된 'KTX'는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글로벌한 소통 방식에 정체성 있는 이름을 주장하면 물정 모르는 국수주의자인가? 타인이 알 리 없는 '아우토반(autobahn)'이지만, 묻고 배우려는 노력 끝에 '독일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라고 알려지는 예가 있다.

얼마 전 미국 방송국 CNN에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튀김 30가지'를 선정했다. 기사에는 일본의 '덴푸라(Tempura)'를 비롯하여, 미국의 '허시퍼피(Hushpuppies)'와 베녜(Beignets), 스페인의 '츄러스(Churros)', 케냐와 탄자니아 등지의 '만다지(Mandazi)', 인도의 '잘레비(Jalebi)', 벨기에와 프랑스의 '프렌치프라이(French fries)' 등이 소개되었다. 그중에 '미국 및 한국의 프라이드치킨(Fried chicken)'이 있었다. 귤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특히 한국에서는 매운 양념을 바른다는 설명을 더했다.

'부러우면 진다'는 말도 있는데, 비록 차용어라 할지라도 이름만으로 출처가 보이는 음식명이 한없이 부럽다. 실제로 나라 이름이 들어간 '프렌치프라이'로 프랑스와 벨기에가 신경전을 벌인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깟 감자튀김'이 아니다. 꼭 한국말이 들어가야 우리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문화 교류에 인색하자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남의 것을 따라잡기 바빴던 그때, 수십 년 후 우리가 문화를 주도할 것을 조금이라도 예상했다면 어땠을까? CNN에서 '프라이드치킨'을 만난 날, 'KTX'라고 발표하던 우리 뉴스가 다시 떠오른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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