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범죄도시2’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진 않는다

입력
2022.06.18 12: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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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도시2'는 선명한 선악구도를 바탕으로 통쾌한 액션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범죄도시2'는 선명한 선악구도를 바탕으로 통쾌한 액션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달 11일 오후 ‘범죄도시2’ 언론시사회가 끝난 직후였다. ‘범죄도시2’ 공동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의 장원석 대표를 우연히 만났다. 장 대표의 얼굴엔 긴장이 어려 있었다. 흥행 걱정이 많아 보였다.

‘범죄도시2’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후 개봉(5월 18일)하는 첫 한국 상업영화였다. ‘범죄도시2’는 흥행 폭발력을 지녔으나 예상 관객수를 쉬 점칠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대중의 극장 관람 습관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있어서였다. 국내 영화계는 ‘범죄도시2’를 코로나19 이후 흥행 리트머스로 여겼다. 장 대표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였다. 지난 12일 ‘범죄도시2’는 코로나19 시대 첫 1,000만 관객 영화가 됐다. 이날 장 대표는 “그동안 저희끼리는 1,000만이라는 단어조차 금기어였다”고 전했다. 시장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컸다는 의미였다.

‘범죄도시2’의 성과는 상징적이다. 코로나19로 고사 위기에 처했던 극장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리는 선명한 신호탄이다. 15일 개봉한 한국 영화 ‘마녀2’는 16일까지 관객 44만여 명을 모으며 예사롭지 않은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극장의 부활 기미는 뚜렷하다.

극장과 대비되는 곳이 있다. 코로나19 덕을 봤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다. 최근 수세가 두드러진다. 미국 대형 OTT인 HBO맥스가 한국 시장 직접 진출을 포기한 게 대표적이다. HBO맥스는 한국 시장 상륙을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대적으로 인력 채용 작업을 하고 있었다. HBO맥스는 토종 OTT 웨이브를 통해 한국 이용자들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OTT 쌍두마차인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부진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분기 넷플릭스는 설립 이후 첫 가입자 감소를 기록했다.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가입자 수는 기대보다 못하다. 미국 통신 공룡 AT&T가 지난 4월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 브러더스에서 손을 완전히 뗀 점이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AT&T는 2018년 워너 브러더스를 인수한 후 HBO맥스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코로나19라는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며 고전을 면치 못한 극장이 OTT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걸까. OTT는 전염병 시대 단기 호황만 맛보고 2선으로 물러나는 걸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대체로 이렇다. “아직은 알 수 없다.”

극장가는 승리감에 취한 듯하다.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비관했던 1,000만 영화가 재빠르게 등장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올여름 ‘외계+인’과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 등 한국 기대작들이 흥행 바통을 주고받을 가능성이 크니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를 품을 만도 하다.

극장의 부활은 환영받을 만하다. 대중문화 최전선으로 꼽혀온 영화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영화계에 던진 숙제가 순식간에 잊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코로나19는 지나친 극장 매출 의존, 스크린 독과점에 따른 강자 독식, 신진 양성 부재 등 영화계의 고질을 뼈아프게 돌아보도록 했다. 거대 멀티플렉스 체인과 중소 제작사들의 공생, 작은 영화와 큰 영화의 상생 등을 큰 틀에서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1,000만 영화의 재등장으로 분위기는 돌변한 듯하다. 2년 넘게 고통을 견디며 영화계는 과연 무엇을 얻었나.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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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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