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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계산기만 두드릴 건가

입력
2022.06.17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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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포화시점 또 계산
계획만 짜다 흘려보낸 40년
역대 정부들 전철 밟지 말아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경북 울진군 한울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북 울진군 한울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국 원전 회사 웨스팅하우스가 다녀갔다. 정부는 웨스팅하우스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원자력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는 소식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업계에선 한미 원전 공동 수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거란 기대도 나왔다. ‘탈원전’ 시대가 저물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16일 나온 정부 경제정책방향에는 ‘친원전’ 방안이 명시됐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에너지 믹스에서 원전 비중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게 빠졌다. 원전의 아킬레스건, 사용후핵연료다. 지난 40년간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계산기 두드리기와 계획 짜기만 수차례,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와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남은 방사성폐기물이다. 방사능이 많이 나오기(고준위) 때문에 경북 경주에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넣지 못한다. 땅 속 깊이 묻어 둘 영구처분시설이 별도로 필요하다. 이걸 어디다 지을 거냐를 어느 정부도 결정하지 못했다. 지금까진 각 원전마다 물을 채워 넣은 대형 수조를 임시저장시설 삼아 사용후핵연료를 일단 넣어 뒀다.

처분시설을 지으려면 처분량을 알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지식경제부는 전기 사용량과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등을 고려해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원전별 수조들이 2016~2021년 사이 차례로 꽉 찬다는 답이 나왔다. 이대로라면 지금은 수조에 자리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후 숫자들이 슬금슬금 수시로 바뀌더니 희한하게도 수조들에 아직 자리가 남아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넣을 때 간격을 좁히거나 원전 가동률이 줄었거나 하는 영향이었단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별 수조 포화 시점을 2019~2038년으로 확 늦췄다. 당시 2024년이던 한빛 원전의 수조 포화 시점은 문재인 정부 들어 2031년으로 바뀌었다. 반면 한울 원전 수조는 박근혜 정부가 2037년 꽉 찰 거라 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2032년이라고 포화 시점을 되레 당겼다. 고무줄이 따로 없다. 그 사이 월성 원전엔 수조가 모자라 콘크리트 건물(건식 임시저장시설)을 또 지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이 계산을 다시 하겠다고 나섰다. 포화 시점은 또 달라질 것 같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각자의 계산을 근거로 영구처분시설 건설 계획을 짰지만, 두 계획은 대동소이했다. 부지 선정에 12~13년, 부지 확보 뒤 중간저장시설을 짓는 데 7년이 필요하다 했다. 중간저장시설은 영구처분시설 완공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넣어 두는 곳이다. 영구처분을 준비할 지하연구시설을 짓는 데 부지 확보 이후 14년이, 이를 영구처분시설로 확장하는 데 또 10년이 걸린다 했다. 원전별 수조 포화 시점이 달라도 영구처분시설 계획의 큰 틀엔 별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영구처분시설은 ‘어디에’ 지을 거냐가 핵심이다. 욕먹더라도 부지 얘기를 꺼내야 하는데, 포화 시점 계산하고 건설 일정 짜기만 반복하다 시간만 흘려보냈다. 역대 정부들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며 공론화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하나같이 갈등만 남기며 끝났다.

친원전을 하든 탈원전을 하든 영구처분시설은 있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손 놓은 채 친원전만 외치는 건 무책임하다. 과거와 같은 방식만으론 지난한 과정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에 이례적으로 에너지 전문가를 발탁했다. 새로운 시각에서 치열하게 고민해 한 발이라도 더 내디뎌야 한다.

임소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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