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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치동' 쿠퍼티노 교육자 부부 "논문 표절 학생, 입학 취소해야"

입력
2022.06.28 12: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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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흙수저' 유학생들의 한탄과 분노
독일어학교 교장 "스펙 공동체 활동 이해 불가"
"편법 컨설팅 이해 못해... 허위 이력 공동체 위협"
덴버대 전 입학처장 "표절은 심각한 학문적 범죄"

편집자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에게 제기된 ‘편법 스펙 쌓기’ 의혹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일보 조소진·이정원 기자는 ‘아이비 캐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논란의 진원지인 미국 쿠퍼티노와 어바인을 찾아갔다.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송도, 미국 대입 컨설팅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도 집중 취재했다.


"1,500달러로 자녀가 논문을 쓴 것처럼 만들어 준다면 지불하실 의향이 있나요?"

"아니요. 왜 그렇게 해야 하죠?"

"그 논문으로 아이비리그(미국 동북부에 있는 여덟 개의 유명 사립대)에 합격할 수 있다면요?"

"결과가 보장된다고 해도 절대 동참하지 않을 겁니다."

이달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자택에서 만난 독일어학교 교장 토마스 체어펠(54)과 부인 로렌(56)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쿠퍼티노는 '미국의 대치동'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식 사교육이 판치는 곳이지만, 두 사람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했다.

토마스는 쿠퍼티노에서 벌어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처조카들의 '스펙 공동체' 논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아이가 직접 하지 않은 일을 부모가 만들어 주는 것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며 논문 표절 의혹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지역 공동체' 독일어학교, '스펙 공동체' 불똥 한글학교

이달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자택에서 독일어학교 교장 토마스 체어펠(54)과 로렌(56)이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쿠퍼티노=이정원 기자

이달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자택에서 독일어학교 교장 토마스 체어펠(54)과 로렌(56)이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쿠퍼티노=이정원 기자

독일계 미국인인 토마스는 1954년 세워진 실리콘밸리 독일어학교에서 20년 이상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독일어학교에선 다양한 국가에 뿌리를 둔 아이들이 모여 사는 미국 사회에서 독일계 아이들이 독일어를 잊지 않고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가르친다. 토요일만 문을 여는 학교의 모든 운영은 학부모들 몫이다. 정규 교육과정을 따르는 곳은 아니기에 "학교라기보단 독일 정부 지원금을 받는 지역 공동체에 가깝다"는 게 토마스의 설명이다.

실리콘밸리에는 비슷한 취지로 세워진 한글학교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고 학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곳이지만, 최근 두 학교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동훈 장관의 처조카들과 어머니 진모(49)씨가 몰고 온 편법 스펙 논란의 여파가 한글학교에까지 옮겨붙었기 때문이다. 한인 사회 학부모들은 "한글학교 교사를 했던 학부모 일부가 진씨 제안을 받고 자녀들이 함께 스펙을 쌓았다"며 "한글학교가 입시 비리의 온상이 된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 이해 못 해... 허위 이력은 공동체에 위협"

한국에선 교육열이 높은 동네에 자리 잡은 학교가 '입시정보 공유처'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토마스는 "독일어학교의 기본적인 역할은 부모들의 애정을 기반으로 한 공동 육아"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 스스로도 자녀들을 위한 대입 컨설팅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며 "그런 (컨설팅)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자녀가 어떤 대학에 지원하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토마스 부부는 특히 논문 표절과 같은 허위 스펙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2005년까지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토마스는 "직접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속이는 건 공동체 신뢰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아무리 다른 조건이 완벽하다고 해도, 가짜 이력이 한 줄이라도 발견된다면 그 사람을 받아줄 조직은 없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로렌은 "논문이 입시에 얼마나 사용됐는지와 관계없이, 학생이 표절한 사실이 있다면 그 자체로 입학 취소감"이라고 강조했다.

토마스는 올해 4월 실리콘밸리 업체의 부탁을 받고 학생 인턴을 선발할 당시의 일화도 들려줬다. 7명의 학생이 회사에서 과제 발표를 했는데, 그중 단 한 명만이 주제에 맞고 완성도도 높은 결과물을 내놨다고 한다. 토마스는 그러나 "학생 스스로 한 과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알아보니 교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더라"며 "결국 그 학생은 아버지 때문에 선발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前 덴버대 입학처장 등 현지 교육자들도 "표절 용납 불가"

미국 교육컨설턴트협회(IECA) 이사진이자 현재 중국 베이징시의 국제학교에서 대입 카운슬러로 일하고 있는 미국 교육 전문가 해밀턴 그렉이 이달 2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교육컨설턴트협회(IECA) 이사진이자 현재 중국 베이징시의 국제학교에서 대입 카운슬러로 일하고 있는 미국 교육 전문가 해밀턴 그렉이 이달 2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토마스 부부를 비롯해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현지 교육 전문가들은 한동훈 장관 처조카들이 입학한 펜실베이니아 대학(유펜)의 향후 조치에 대해선 명확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제기된 논문 표절 의혹이 사실이라면 입학 취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콜로라도주의 유명 사립대인 덴버대에서 입학처장을 지낸 스티븐 안토노프(77) 박사는 본보 서면 인터뷰에서 "대입 지원서의 진실성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학생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마다 입시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 유펜의 결정을 놓고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표절을 범한 학생에 대해선 입학 취소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이는 표절이 심각한 학문적 범죄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육 전문가들은 '미국 명문대 입학만이 성공을 담보한다'는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믿음에도 우려를 표했다. 미국 교육컨설턴트협회(IECA) 이사로 한국과 일본 국제학교를 거쳐 중국 베이징의 영국식 국제학교(해로우)에서 대입 카운슬러로 일하는 해밀턴 그렉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대학 랭킹처럼 숫자를 중요시하는 아시아권에서 도를 넘은 대입 스펙 쌓기가 유행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SAT 성적 제출이 대입에서 선택사항이 되고, 비교과활동에 치중하는 지원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며 "입학처의 검증 기능도 한계가 있어 모두 걸러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비뚤어진 욕망, 아이비 캐슬

<1>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사교육

<2> 쿠퍼티노에서 벌어진 '입시 비리'

<3> 지금 압구정에선 무슨 일이

<4> '흙수저' 유학생들의 한탄과 분노


쿠퍼티노= 이정원 기자
쿠퍼티노=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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