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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의 범죄억지력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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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잘 알려진 대표적인 형벌이지만, 그 집행이 실제로 빈번해진 것은 중세 국가권력이 확립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절대왕권의 확립에 사형만큼 위협적인 제도는 없었고, 최근까지도 수많은 오남용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형제도 폐지의 논의는 계몽사상과 동시에 나타났다. 이미 1766년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자신의 책 '범죄와 형벌'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계몽기 관용의 정신과 19세기 자유주의 정신이 만나 인도주의 형사사법의 이념을 낳았다. 인간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표방한 20세기 문명국가들은 이 권리들을 헌법에 명시하고 개인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생명은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이고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범죄자도 인간이며 시민이다. 오늘날의 국가와 법제도에서 계몽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사형제도를 정당화할 논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사형제도는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빼앗는 제도화된 살인이고, 국가가 시민의 생명을 박탈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생명의 고귀함을 말할 수는 없다. 국가에겐 시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을 뿐 침해할 권리는 없다.
1991년 대법원이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이후 1996년, 2010년에 헌법재판소는 각각 7대 2, 5대 4로 모두 합헌 결정하였다. 2019년에 다시 사형제도 위헌성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다음 달 14일 공개변론이 이뤄질 예정이다. 정부는 2020년 11월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안에 찬성표결을 했으나, 최근 헌법재판소에 보낸 법무부 의견서에는 사형존치론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전히 사형제도는 흉악한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악이고, 살인범의 생명보다 피해자의 인권과 공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사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일반인의 법감정에 잘 맞지 않는다. 범죄로 불안해진 시민들은 자신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한 채, 자신을 잠재적 피해자로 상정하고 살인자를 사회에서 영원히 제거하는 사형제에 찬성한다. 여론조사에서 사형폐지보다 사형존치 찬성이 대체로 1.5~2배 정도 높게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사형제도를 폐지한 여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충격적인 잔혹한 범죄가 발생하면 사형제도 존치 여론은 더 높아진다.
이러한 여론은 사형의 범죄억지력에 대한 오인에서 나온다. 사형의 선고와 집행으로 인한 범죄억지력은 최근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경험적 연구를 통해 허구에 불과하다고 밝혀진 지 오래다. 우리나라도 사형집행이 중단된 이후 흉악 범죄가 증가했다는 연구는 없다. 사형집행을 공개리에 잔인하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대량으로 집행한 그 어떤 나라도 흉악 범죄를 뿌리 뽑지 못했다. 살인자의 죽음은 유족의 복수심을 충족할 뿐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복수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피해자와 유족을 보듬고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잔혹한 형벌은 입법자, 법적용자, 법집행자가 입증되지 않은 범죄억지력이라는 환상에 기대어, 범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돈 안들이고 범죄에 대한 불안만 줄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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