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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감호소 의사 "하루 환자 200명까지... 약도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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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봐야 할 환자 수가 160명, 많으면 200명 가까이 된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창피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할 수준이죠.”
국립법무병원(충남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5년간의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저서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을 펴낸 차승민 정신과 전문의는 가감 없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치료감호소를 떠났다.
“환자들 보면서도 환자 약? 당연히 기억 안 나고요. 병동(간호사)에서 알려주거나, 의료 차트를 보고야 기억나는 수준이죠. 하루하루 큰 사고 안 나길 바랄 뿐입니다.”
치료감호소는 범법 정신질환자 등의 재범을 막기 위해 구금 상태에서 정신과 치료를 실시하는 법무부 산하 국가기관이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강력 범죄 위험성은 치료 이후 94% 감소한다. 문제는 현재 국내 유일의 치료감호 집행 기관인 이곳이 열악한 여건 탓에 제대로 된 ‘치료’는 어렵고 사실상 ‘감호’만 남은 상태란 점이다.
'부실한 치료'의 여파는 크다. 피치료감호자가 출소 후 지역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재범 가능성이 높아져 위험 부담은 사회 전체가 떠안기 때문이다.
차 전문의는 “이들(정신질환 범법자)이 제대로 된 치료 없이 몇 년을 채우고 나간다고 한들, 출소하면 다시 재발·재범이 일어날 텐데 구금만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되물으며 "치료감호 제도는 환자 개인의 복지 차원이 아니라, 사회 안전을 위해서 정말 국가가 책임질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주일에 한 번 회진하는데, 의사는 ‘어떠세요’ 한마디가 끝이고 면담도 하지 않습니다.” 치료감호소에 8년간 수감됐던 50대 후반 장수철(가명)씨는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한민국 '치료감호 제도'의 현주소를 이렇게 전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정신과 전문의 1명당 입원환자는 최대 60명까지만 받게 돼 있다. 그러나 치료감호소엔 먼 얘기다. 이곳의 최근 5년 평균 수용인원은 1,018명. 정신과 의사 정원이 15명이니 얼추 ‘의사 1명당 환자 60명’에 근접하는 듯 보인다. 반전은 1987년 치료감호소가 개소한 이래 정신과 전문의가 100% 충원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근 10년 내 충원 최대치는 71.4%였다.
차 전문의 사직 직전인 지난해 12월 기준, 의사 1명당 환자 수는 158명이었다(파트타임 포함해 전문의 5.5명, 수용인원 871명). 일부 인력 충원과 수용자 퇴소로 올해 5월에는 '의사 1명당 환자 수 118명'으로 내려왔지만, '기준 미달'인 건 여전하다.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심각하다. 치료감호소에 따르면 외국의 치료감호 담당 병원들의 경우 의사 1인당 환자 수는 일본 8명, 미국 10명, 영국 20명 등이다.
차 전문의가 현재 일하는 민간 정신병원은 의사당 환자 수가 55명. 이 정도만 돼도 “매일 얼굴 보는 게 가능한 수준”이지만, 치료감호소에선 “길게 면담까진 못 하고 매주 한 번 병동을 휙 도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문제 일으키는 환자’나 겨우 짬을 내서 면담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만 치료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매달 있는 치료감호 기간 종료·가종료 심사를 위한 서류 작업, 매년 평균 455건(2014~2020년)에 달하는 범법 정신질환자 정신감정 업무까지 더해지면 '일을 제대로 하려면 끝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일했던 의사들의 말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강서 PC방 살인사건' 김성수,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 안인득 등이 이곳에서 정신감정을 받았다.
비상식적인 환자 수를 감당하던 의사들의 불만이 결국 터졌다. 지난해 연말부터 연초까지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치료감호소장)을 제외한 나머지 풀타임 정신과 전문의 4명과 신경과 전문의 1명이 잇달아 사직한 것이다. 장수철씨는 올해 1월 상황을 두고 “원장님과 계약직 의사만 남아 치료가 제대로 안 되고, 원장님이 500명 넘는 환자를 본다”고 전했다.
외부엔 법무부 과장과 의료진 간 마찰이 ‘집단 사직’의 원인으로 알려졌지만, 그건 발단이 됐을 뿐 고질적인 과밀 수용과 의료 인력 부족, 임금 등 처우 문제, 전공의(레지던트) 확보 문제, 법무부에 대한 불만 등이 겹친 결과라는 게 치료감호소 안팎 전언이다.
법무부가 급히 나서서 의료부장 자리를 비롯, 정원(15명) 절반 수준인 7명까지는 정신과 전문의를 충원했다. 공공병원의 인력난이 치료감호소만의 문제는 아니나, 근본적인 근무환경 개선과 예산 지원 없이는 언제든 '치료 공백'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병동에서 실제로 수용자를 돌보는 간호 인력도 충분하지 않다. 이들은 위생·식사·투약관리 등 기본적인 돌봄부터 수용관리, 가족 상담, 정신재활 프로그램 운영 등 광범위한 업무를 맡는다. 그러나 5월 기준 간호사 충원율은 79.3%(현원 117.5명, 정원 148명), 간호조무사 충원율은 90.7%(현원 148명, 정원 163명) 수준이다.
지난해 법무부 연구용역으로 부경대 연구팀이 실시한 '치료감호 제도 기간의 적정성에 관한 연구'에서 한 치료감호소 직원은 "한 병동에 60명, 많게는 120명이 되는 환자를 간호사 1, 2명이 담당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치료감호소는 2021년 8월 기준 검사 병동까지 14개 병동을 운영 중이고, 한 병동에 40명 안팎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게 수용된다. 병동마다 적으면 6개, 많으면 16개 병실이 딸려 있다. 현재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6인실' 법 규정에 맞춰 새로 400병상을 증설 중이다.
의사 충원이 어려운 이유로는 범법자인 환자를 치료한다는 점, 격오지 근무 등의 특성도 언급되지만 주로 '낮은 보수'가 꼽힌다. 민간병원에서 일하는 봉직의 임금의 절반, 개업의와 비교하면 3분의 1까지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게 차 전문의 설명이다.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 활용은 자유로워도 "돈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9 한국 직업정보’에 따르면 정신과 전문의 평균 소득은 1억3,626만 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치료감호소 채용 공고를 보면 6년 경력 정신과 의사의 연봉 하한액은 6,241만 원, 10년 경력 정신과 의사 연봉 하한액은 7,385만 원에서 시작된다. 물론 하한액이 그렇다는 것이지만, 민간에 비해 보수가 낮다고 추정 가능한 대목이다. 한 치료감호 제도 관계자는 "치료감호소 의사 연봉이 1억2,000만 원쯤인데, 민간에선 2억 원은 받는다고 하니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법무부는 "수당 신설·증액, 의무직 관사 확보 및 리모델링, 국외 연수 기회 제공 등 의무직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지난해 인사혁신처와 협상을 통해 의무직에 대한 기준급 인상도 완료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처우 문제만은 아니라는 매서운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신과 전문의 B씨는 ‘법무부의 관료 문화’를 가장 큰 기피 요인으로 꼽았다. 4년 근무 후 수년 전 치료감호소를 떠난 그는 “봉급을 두세 배로 올린다고 한들 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B씨는 상급기관인 법무부의 권위적 상명하복 문화, 일에 대한 동기부여 부재, 제도적인 지원 미비와 무관심을 언급했다. 요컨대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 바보 되는 분위기'였다는 게 그의 과거 경험이다. “법무부는 그저 시끄러운 일 없이 치료감호소가 굴러가게 하는 게 목표였지, 정신감정이나 치료가 충실히 이뤄지는지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의료진에 대한 구속과 간섭이 컸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의료진이 최신 치료기기와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노력할 때는 지원에 소극적이다가, 정작 '사고'가 터지면 책임소재를 따지는 데만 급급해 근무 의욕이 떨어졌다고 했다. 휴일이나 주말에도 법무부 소속 검사가 현장조사를 갑자기 나오는 등 위계적인 문화도 강했다고 회상했다.
B씨는 “치료감호소가 법정신의학을 연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곳이기도 하고, 훌륭한 일을 할 잠재력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무원 문화 속에서는 그게 어렵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런 환경에서 치료가 제대로 잘될 수 있을까.
조현병이나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등 정신질환의 경우 치료감호소에 있는 동안에는 최소한 꾸준한 약물 복용이 이뤄지기 때문에, 망상과 환청 같은 '양성 증상'은 대부분 호전된다는 게 의료진들의 설명이다.
다만 많은 환자들에게서 언어나 감정 표현이 둔화되고, 무기력해지는 '음성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망상장애의 영향으로 대통령 비방글을 올렸다가 치료감호소에 2년간 갇혔던 구윤수(가명)씨의 누나 구명혜(가명)씨는 “첫 면회를 갔을 당시 동생이 약 기운에 몸을 못 가누고, 마비된 듯 ‘웅얼웅얼’ 말도 못 하는 모습을 보고 통곡을 했었다”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절대적인 시간 투입이 필요한 ‘비약물적 치료’엔 한계가 뚜렷하다. 전문의 B씨는 "(치료감호소에서) 치료가 안 되는 건 아니다"라고 단언하면서도 “약물치료 외적인 부분, 그러니까 상담치료나 직업훈련, 재활치료는 최소한만 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없는 것보다 당연히 낫겠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치료감호소 근무 의사가 참여한 '국립법무병원의 조현병·조현정동장애 입원환자에 대한 정신약물 치료 경향’(2017) 연구는 "의사 1인당 환자가 100명이면 매주 환자 1명에게 투입 가능한 시간은 24분인데, (치료감호소) 전문의는 치료 외 정신감정, 전공의 교육수련, 임상연구를 병행해 시간은 더 적다"고 지적했다. 이런 탓에 환자당 한 번에 50~60분, 매주 1회가 소요되는 개인정신치료나 인지행동치료보다는 약물치료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직접, 또는 가족을 통해 접촉한 치료감호소 출소자들도 "치료가 도움이 됐다"거나 가족 보살핌하에 직업을 갖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전히 병식(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자각)이 약하거나 재범을 저질러 다시 갇힌 경우도 있었다.
아울러 치료 효과가 비교적 뚜렷한 정신질환과 달리, 애초 '치료'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자폐성·지적장애인)을 적절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못한 치료감호소에 가두는 게 맞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관련 기사☞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치료감호소엔 없다)도 시민사회에서 계속되고 있다.
필요한 건 사회적 지원과 관심, 인력과 예산이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2020년 9월 “치료감호소가 치료적 사법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치료 프로그램 효과 분석, 프로그램 개발, 유관 기관과 협업 등 기능을 담당해야 하나 인적·물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우선적인 개선 사항으로는 △우수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한 급여체계와 근무환경 개선 △사회복지·직업재활 인력의 확충 △장애·질환의 유형 및 증상에 따른 세분화된 프로그램 개발 등이 꼽힌다. 2021년 8월 기준 치료감호소에서 일하는 정신보건 임상심리사는 9명,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는 6명, 직업훈련교사는 6명에 불과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치료감호소는 범법 정신질환자의 치료·관리 거점 역할을 하면서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를 전담하도록 하고, 발달장애인처럼 정신과적인 치료보다 돌봄이나 별도 프로그램이 필요한 수용자는 지역사회 내 센터나 전문 시설, 여타 공공병원에서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앞서 언급한 부경대 연구팀은 “치료감호소는 사회적 위험성이 높거나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치료하고, 경미한 정신장애 범죄자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병원으로 분산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지난달 20일 치료감호 제도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사실 범법 정신장애인 이슈는 일반 교도소(내 정신질환자),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 그리고 지역사회 중심 통합 관리라는 세 가지가 연결된 문제라, 법무병원을 중심으로 세 축을 연결하고 조정할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센터장은 치료감호소 출소자의 지역사회 내 관리 문제를 보건복지부 산하 정신건강복지센터에만 기대기보다, 법무부가 직접 관할하는 지역사회 정착센터를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치료감호소가 계속 수용 중심으로만 운영되고 포화 상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성남 원장(치료감호소장)도 학술대회에서 “국립법무병원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집중 치료해 안정화되면 교도소나 사회로 갈 수 있게 하고, 반대로 교도소에서도 급성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있으면 법무병원으로 데려와 안정화시키는 거점 역할이 돼야 한다"며 "정신과적 치료에 한계가 있는 발달장애 등은 법무병원보다 외부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더 좋을 수 있다"고 밝혔다.
◆치료감호의 눈물
<1>프롤로그: 기자가 마주한 비극
<2>발달장애도 ‘치료’가 되나요
<3>치료받지 못하는 치료감호소
<4>최장 15년, 언제까지 가두나
<5>치료감호 수장이 전하는 현실
<6>출소 후 공백, 누가 채우나
<7>처음부터 방치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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