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국방부 "공무원 월북 혼선 유감"...책임은 해경에 떠넘겨

입력
2022.06.16 17:30
수정
2022.06.16 20:4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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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추정' 처음 제기한 軍, 유감 표명 그쳐
SI 첩보 분석이 화근...해경 "월북으로 판단"
北 부인에도 불구, '시신 소각' 주장 안 굽혀
국방부는 쏙 빠지고 해경·북한만 난타당해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이 16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최종 수사 결과와 관련해 추가 설명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이 16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최종 수사 결과와 관련해 추가 설명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국방부는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실종 공무원의 '월북' 가능성을 처음 거론했다. 2년이 지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혔는데도 "우리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16일 해경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국민들께 혼선을 드려 유감"이라고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는 데 그쳤다.

국방부의 섣부른 의욕이 화를 키웠다. 실종 사건 사흘 뒤인 9월 24일 국방부는 기자단 대상 질의응답에서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근거는 대북 특수정보(SI·Special Intelligence) 첩보였다. 'SI 첩보'는 통상 감청을 통해 확보하는 신호정보를 말한다. 북한군 동향을 감시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의 월북을 추정할 만한 단서를 포착했다는 것이다.

이때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경이 공무원 이씨 대상 수사에 나섰다. 국방부는 공무원 실종 전후 북한군의 움직임, 해경은 이씨 본인과 주변을 파악하는 양 갈래로 조사가 이뤄졌다.

국방부 발표 닷새 후인 29일 해경은 "실종자는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를 종합해 최종 판단을 내린 해경의 책임이 크지만, 애초 국방부가 월북을 들먹이며 분위기를 몰아간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해경 수사의 시발점이 국방부의 SI 첩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남북 대화 기조에 맞추려 국방부가 입맛에 맞는 자료만 골라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국방부는 2년이 지난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보안 관계상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함으로 인해 보다 많은 사실을 알려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몸을 낮췄다. 또 '시신을 소각했다'는 최초 입장을 3일 만에 '시신 소각이 추정된다'고 바꾼 이유는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사건 관련 주요 쟁점 답변 지침을 하달받았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월북 추정'에서 '월북으로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입장을 번복한 근거를 끝내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국방부의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고 강변했다. 국방부는 월북 가능성을 제기한 것일 뿐 월북으로 결론 내린 건 어디까지나 해경이라는 주장이다.

대신 북한을 걸고 넘어지며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 건 분명하다"고 되레 역공을 폈다. 국방부가 '월북 추정'을 언급한 바로 그날 공개적으로 규탄한 내용이다.

당시 국방부의 '시신 소각' 발표에 대해 북한은 바로 다음날 대남 통지문을 보내 "불법 침입자를 사살했고, 타고 있던 부유물은 소각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의 발표처럼 시신을 불태운 건 아니라고 일부 부인한 것이다.

입장 번복 논란에 처한 국방부는 이 부분을 다시 물고 늘어졌다. 이날 배포자료를 통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국방부의 분석 결과와 북한의 주장에 차이가 있어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남북 공동 재조사 등을 요구했으나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어떠한 답변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응하지 않아 진실을 규명하지 못했지만 시신을 소각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북측에 있다는 논리다. 실종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졸속 수사를 2년 만에 바로잡았지만, 국방부는 끝까지 해경과 북한 뒤에 숨어 있는 셈이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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