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에 소극적 중재 아쉬움
능력주의 비판하던 그 모습 어디 갔나
자리 욕심 넘어 큰 정치인의 길 걷기를
14일 화물연대 파업 종결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역할이 없지 않았다. 그는 이날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를 방문해 “중대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협상을 압박했다. 국토부는 자찬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그의 최선인지 의문이 맴돈다. 파업은 예고돼 있었고 결국 피해가 1조6,000억 원에 이르렀는데, 국토부가 “(안전운임 일몰제에 대한) 입장을 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발뺌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할 수는 없었을까. 입법 쟁점을 놓고 “정당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 여당이 가장 무책임하지만 인수위 기획위원장까지 지낸 원 장관이 당을 설득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2013년 철도노조 파업을 중재해 22일 최장기 파업을 끝낸 김무성 전 의원처럼 적극 나설 수 없었는지 아쉽다.
원 장관이 더 잘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이유가 있다. 잊혀진 정치인이었던 그는 지난 대선 경선 때 ‘대장동 1타 강사’로 존재감을 떨치며 중앙정치에 복귀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계기는 따로 있다. “이준석 대표류의 능력주의는 지적 게으름, 지적 몰양심의 결과”라며 자기 철학을 밝힌 지난해 8월 CBS ‘한판승부’야말로 의미심장한 ‘원희룡의 재발견’이었다. 그는 자신의 공부머리를 “특정 기능만 뛰어난 것”이라면서 “능력이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능력,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십, 또는 아이 키우는 것처럼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믿어주는 애착능력이다. 이런 게 세상을 만들고 바꿔나가는 힘”이라고 말했다. 능력 개념 정의부터 틀렸다는 지적에 이어 몰양심을 설명한 다음 발언 또한 중요하다. “사람은 능력이 있어야만 사람이 아니다. 사람인 것 자체로 존엄하게 대접받을 천부적 인권이 있는 것이다. 나도 언제든 능력 상실에 노출될 수 있다. 능력이 없거나 격차 있는 사람을 존중할 수 있어야, 나와 내 아이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입장이 됐을 때도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대우받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쇄신파 의원 원희룡’이 다시 보였다. 검찰과 감사원의 독립성이 흔들리고, 여성가족부 폐지가 공약으로 대두되고, 무속 논란이 휩쓸던 보수 정당 경선에서 그는 제대로 된 정책을 곧잘 제시했다. 소중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감동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경선 후 윤석열 후보 캠프에 합류한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이재명 후보 페이스북에 “중국 업체만 좋은 태양광 그늘막 공약” 댓글을 달며 중국인 혐오에 바탕한 조롱놀이에 가담했다. 장관이 되니 가덕도 신공항을 조속히 개항하자며 입장을 뒤집었고, 대통령실 이전 성과에 조급한 듯 “용산공원 오염 우려는 과장”이라고 단언했다. 대선 중 거침없던 대장동 공격이 무색하게도 제주도지사 시절 오등봉 개발 의혹, 거주지 용도변경 의혹, 법인카드 부당 사용 의혹 등이 청문회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약자도 존중해야 한다는 포용적인 모습,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모습 모두 원 장관의 것이리라. 하지만 그에겐 정치인으로서 미래를 선택할 능력과 기회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학력고사·사법고시 수석의 수재 원 장관은 시험 쳐서 뽑았다면 진작 대통령이 되었을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능력주의의 문제를 정확히 짚을 줄 아는 지적인 사람이다. 그 명석함을 권력을 좇는 데에 소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말한 공동체 철학을 몸으로 실천하는, 큰 정치인의 길을 택한다면 좋겠다. 자리 욕심에 눈멀지 말고 자리는 따라오는 것임을 믿기 바란다. 원 장관은 더 나은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그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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