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착시현상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교수가 ‘지각심리학’이란 독특한 앵글로 착시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얼마 전 북한산 구기터널 근처에서 택시를 세우고 볼일을 보던 기사가 멧돼지로 오인한 사냥꾼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의 1차적 원인은 사냥꾼의 시각 처리에 있다. 사람이 대상을 알아보는 데 두 가지 지각 처리가 관여한다. 첫째, 눈에 맺힌 이미지나 냄새, 소리, 촉감 등 감각에 의존하는 처리가 있다. 둘째, 경험이나 지식을 이용하는 처리가 있는데, 이 능력 덕택에 물체 일부가 가려져 있을 때, 멀리서 보일 때, 어두운 곳에서도 물체를 알아볼 수 있는데, 최첨단의 인공지능 시각도 따라잡기 어려운 기술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늘 이 두 처리에 의존해 세상을 본다. 당연하게도, 대상이 감각에 맺히는 선명도가 떨어질수록 지식에 의한 보기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위쪽 사진을 보라. 아마 무의미한 흑백의 얼룩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개구리'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다시 살펴보자. 어느 순간 약간 오른쪽 정면을 향하고 있는 개구리 얼굴이 보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식에 의한 보기이다.
지식에 의한 보기는 거의 언제나 옳지만 가끔 실제와 다른데, 교통상황이나 사냥상황처럼 순식간에 일이 벌어지면 치명적일 수 있다. 이번 사고에서 30년 경력의 사냥꾼은 어두운 밤 8시 무렵 멧돼지를 홀로 쫓고 있었다. 마침내 전방 20여m 거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멧돼지라 확신하고 총을 발사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지식에 의해 멧돼지로 추정했던 것이다! 멧돼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빠르게 내달리는 습성이 있어 코앞에서 명중시키기도 어렵다. 오죽했으면 '저돌적(豬突的)'이라는 표현이 나왔겠는가. 먼저 멧돼지를 쏘지 않으면 사냥꾼이 공격당할 수 있는 상황이 사냥꾼을 더욱 다급하게 했을 것이다. 멧돼지 오인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식에 의한 보기를 삼가고 멧돼지 이미지를 선명하게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열화상카메라, 야간투시경, 드론 같은 장비를 통해 가능하다. 오른쪽 사진은 공중에서 드론에 부착한 열화상카메라로 멧돼지 사냥 장면을 찍은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인데도 멧돼지와 사냥꾼 윤곽이 선명하다.
야생 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매개하여 축산 농가에 큰 피해를 주고, 어렵게 가꾼 농작물을 깡그리 짓이기고, 많은 인명 피해를 주고 있다. 지자체는 마리당 몇 십만 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멧돼지 포획을 장려하고 있는데, 사냥꾼들은 간접 고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냥꾼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안전사고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점 등을 따지면 멧돼지 포획의 대가는 너무 초라하다. 당장,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택시기사 유족은 어떤 보상을 받을까. 그래서 강력한 안전교육, 사고 방지책 마련이 필요하고, 사고에 따른 보험 확대, 부상자 진료 지원, 열화상카메라 같은 첨단 장비 지원 등이 시급하다.
멧돼지 문제가 일상화된 지 오래인데, 국가는 아직도 포획을 민간 사냥꾼들에게 맡기고 있다. 특수 경찰대나 군 부대를 창설하는 것은 어떤가. 이번 오인 총기 사고는 충격적 비극임에도 금세 잊히고 말았다. 힘겹게 사는 사람들의 부주의로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다른 양식의 커다란 오인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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