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시행령 충돌과 '의법(依法)독재'

입력
2022.06.15 18:00
26면
구독

미국 행정명령, 정권 색깔 따라 오락가락
행정입법 남용, 시행령 정치 바람직 않아
국민 없는 행정·입법권력 충돌 벗어나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시행령 수정 요구 관련 법안 추진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시행령 수정 요구 관련 법안 추진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1

시행령 정치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입법권, 사법권에 비견할 대통령의 강력한 집행권인 점에서 시행령과 다르지 않은 행정명령이 문제다. 우리의 대통령령처럼 정권 색깔에 따라 지웠다 만들기를 반복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의 조치를 무더기 취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행정명령 12800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한 대표 격이다. 연방계약 기업에 노조 가입을 의무화하지 않는 친기업 노동법을 공지토록 한 이 행정명령은 조지 H.W. 부시가 처음 서명했다. 이에 빌 클린턴은 취임 한 달 만에 전격 취소시켰는데, 아들 부시는 똑같이 취임 한 달 뒤 클린턴의 취소를 취소하는 행정명령으로 되돌려줬다. 그러자 버락 오바마는 부시보다 빠른 취임 열흘 만에 클린턴의 조치를 되살려 냈다.

무리한 행정명령의 유효기간은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하면 4년, 연임해도 8년에 불과한 셈인데 시행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위장탈당, 회기쪼개기 등 의회사에 남을 방법으로 통과시킨 소위 '검수완박'법은 시행령으로 상당 무력화가 가능하다. 검찰 수사권은 경제범죄와 부패로 한정되지만 그 범위와 대상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시행령에 수사범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면 정치권 방탄조끼는 뚫리고 검찰 위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경찰에선 비대해진 경찰권력을 다시 행정안전부 장관 휘하에 두는 방안이 시행령으로 추진되고 있다.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경찰은 내무부 산하 기관에서 경찰청으로 독립했었다. 권력의 편의성에 따라 경찰을 지휘통제한다면 그 피해는 다시 국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되는 시행령의 유효기간이 얼마일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참고한다면 정권교체 후 새 시행령의 무력화 조치가 나오면 원위치로 돌아간다.

시행령을 부정적이고 진영 논리의 정책화로만 볼 일은 아니다. 여소야대로 정치가 대치할 때 대통령이 정책수행을 위해 동원 가능한 주요 수단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2년 재임 중 3,721건의 행정명령을 발동, 대공황과 2차 대전을 헤쳐 나왔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이나 핵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도 행정명령에 의한 조치였다.

하지만 시행령 정치는 의회입법 실패로 인한 행정입법 남용이란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입법부의 위임범위와 취지를 벗어난 위임입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 필요성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현행법상 사법적 통제가 불완전하기 때문인데 꾸준한 논의에도 실효적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의원 14명이 입법부가 시행령을 통제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이 반발하는 시행령은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해 인사검증 권한을 부여한 대통령령이다. 법무부 인사검증은 정부조직법이 규정한 법무부 장관의 법무 관련 업무를 벗어난 권한이란 게 논란의 핵심이다. 이에 정부 입장을 대리한 국민의힘은 검수완박에 이은 '정부완박'의 입법독재이자 윤석열 정부 발목꺾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시행령을 놓고 책임정치 구현이란 정부 입장과 입법권 침해란 의회 입장은 대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 정부와 입법부, 여야 간 갈등은 새삼스럽지 않다. 5년마다 또는 여소야대일 때 반복되는 내로남불이자 국민과는 거리가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 충돌일 뿐이다. 20대 국회에서도 여야 극한 대립으로 법률로 정할 사안이 논란 속에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역시 여소야대 국면에서 시행령에 의존한 건 물론이다.

그러나 개혁의 이름을 달고 이뤄진 시행령이 국민에게 무슨 혜택을 주었는지 따져 보면 회의적이다. 국민을 진영에 가둬놓고 정치적 행위의 정당성을 법과 함께 시행령으로 제도화한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와 입법부의 갈등, 시행령 충돌은 권력 감수성만 뛰어난 권력기관들의 의법독재(依法獨裁)로 빠지지 않기 바란다.

이태규 논설위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