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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가 지배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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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法治)는 법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최고 자리에 오른 국가 지도자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통치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때는 더욱 법에 따라야 한다. 이는 법치주의에 대한 만국 공통의 정의다.
그런데 법치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부장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임명 다음날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법치’를 언급하며 응수했다. 미국에서도 법조인들이 정ㆍ관계에 폭넓게 진출하고 있으니, 검찰 출신 중용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그걸 ‘법치국가’라고 표현했다.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률가에 의한 지배를 법치로 본 것이다.
윤 대통령이 뼛속부터 검찰주의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말한 법치가 검사들에 의한 통치로 해석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외양도 그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대통령비서실은 대검찰청이 그대로 옮겨 왔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장악했다. 인사ㆍ총무ㆍ공직기강은 물론 부속실까지 서초동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의 몫이 됐다. 대부분 검찰 재직 시절 윤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성 비위나 증거조작 같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에도 이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부 조직도 마찬가지다. 검사 출신이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국가보훈처장과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국무총리 비서실장까지 검사들이 차지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 김건희 여사 변호인, 재벌그룹 사위라는 점이 인사 요인으로 거론된다. 여기에 ‘카풀’ 인연이 있는 검사는 법무부 차관 자리를 꿰찼다.
윤 대통령 인사 스타일을 지켜본 여당에서도 불만이 적지 않다. 우회적으로 때로는 공개적으로 편중 인사에 대한 개선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필요하면 또 기용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자 앞으로 입시비리 수사한 검사가 교육부 장관 되고, 영어 잘하는 검사는 외교부 장관 되고, 야구 잘하는 검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검사들이 그렇게 좋으면 검사들로 구성된 신당을 만들면 될 텐데…”라는 감정 섞인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이 언급한 법치국가란 법에 의한 통치보다는 일사불란한 검찰 조직을 염두에 둔 국가로 보인다. 검찰은 법을 다루는 조직이지만 법은 외피일 뿐, 실제로는 상사의 말 한마디가 법으로 통할 때가 많다. 기수 문화가 뿌리 깊은 상명하복 조직으로 성과주의가 몸에 밴 조직이기 때문이다. 무리해서라도 어떻게든 성과를 내기에 매우 효율적인 조직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은 그런 조직에서 장기간 보스 역할을 해왔다. 검찰에서 발탁된 인사들은 단순히 검찰 출신이라 비판 대상이 된 게 아니다. 대부분 윤 대통령과 사적 인연으로 얽혀 있고 맹목적 충성심이 강한 인사들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인사는 차기 검찰총장이다. 가뜩이나 대통령과 검찰이 한 몸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친분이 깊거나 말 잘 듣는 사람이 올 것이라며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법치는 마땅히 존중돼야 하지만, 법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은 의심해볼 필요도 있다. 법대로 하겠다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일방통행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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