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륙 최고봉과 차별 장벽을 함께 오른 여성 산악인

입력
2022.06.14 04:30
26면
구독

6.14 다베이 준코

1985년의 다베이 준코. 위키피디아

1985년의 다베이 준코. 위키피디아


다베이 준코(田部井 淳子, 1939~2016)는 1975년 5월 여성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을 비롯해 1992년까지 7대륙 최고봉을 오른 일본 산악인이다. 더욱이 그는 동아시아 특유의 가부장·성차별 장벽까지 돌파하며 기록을 달성했다.

1939년 전시·전후의 궁핍 속에 태어나 성장한 그는 10세 무렵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 도쿄 쇼와(昭和)여대에 진학해서도 남성 산악클럽에 가입해 활동했고, 졸업 후 취업까지 포기한 채 프리랜서 편집자로 돈을 벌며 등반을 지속했다. 그는 27세에 동료 산악인과 결혼해 1녀 1남을 낳았다.

여자가 산악클럽에 들어가는 건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편견이 팽배한 때였다. 여성은 고난도 등반 땐 배제되기 일쑤였고, 암벽 파트너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준코는 신장 145cm에 몸무게 40kg 남짓이었다.

그는 1969년 일본 최초 ‘여성산악인클럽’을 결성, 이듬해 안나푸르나3봉(해발 7,555m)을 등정했다. '집에서 애나 키우라'는 말을 들어가며 에베레스트 원정 경비 일부를 모금한 원정대 15명은 1년 연봉에 해당하는 150만 엔씩을 갹출해 등반 경비를 마련했고, 침낭 등 일부 장비는 차 덮개 등으로 직접 만들어 썼다. 그들은 대부분 직장인이었고, 준코 등 2명은 자녀를 둔 주부였다.

그렇게 감행한 등반 도중 산사태까지 만나 준코 등 4명이 매몰되기도 했지만, 준코는 남성 셰르파와 함께 여성으로선 처음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고, 호들갑 떠는 매스컴을 향해 “나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36번째 산악인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1988년 6월 14일 알래스카 디날리 봉을 비롯, 7대륙 최고봉을 잇달아 올랐다.

말년의 그는 산악 환경운동가로 활동했고, 위암 진단을 받은 2012년부터는 한 해 전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겪은 후쿠시마 지역 고교생들과 함께 후지산(해발 3,776m) 연례 등반행사를 벌였다. 숨지기 두 달 전인 2016년 7월, 학생들과 후지산 해발 3,000m까지 오른 게 그의 마지막 등반이었다.

최윤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