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버릴 때

입력
2022.06.14 04:30

러시아 군인들이 12일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에서 러시아 국기 색상으로 새로 칠한 도시명 앞을 지나고 있다. 마리우폴=AP 뉴시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들어가려 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는 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한 행사장에서 했던 발언이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이 우려될 때 미국이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이를 무시했다는 힐난으로 들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 질문에 “어느 시점에는 합의, 타결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했다. 지난달 31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국의 목적을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영토 완전 수복 지원’이 아닌 ‘민주적, 독립적 주권 수호’로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는 반발했지만 이미 바이든 행정부는 서서히 전쟁에서 발을 빼는 분위기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전선에서 고전 중이고, 결국 정치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전쟁 초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축출, 러시아 약화 등의 강경 발언을 이어가던 미국은 어디로 갔을까. ‘규범과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 회복’을 외치며 민주주의와 독재ㆍ권위주의 국가로 편을 가르더니 미국은 이제 그런 가치외교도 포기한 걸까.

미국의 변심은 결국 국익과 정치 계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화한 미국 내 인플레이션과 공급난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2024년 대선 도전까지 힘들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전쟁 조기 종료가 급선무다.

전쟁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강화, 독일 등 유럽의 중무장을 통한 러시아 견제, 미국산 무기 판매 급증으로 챙길 건 챙겼으니 굳이 전쟁의 늪에 더 길게 발을 담글 이유가 없어지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이라 다르다지만 안타까운 우크라이나 현실이 한국에서 재연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거세지는 미중 경쟁, 북중러 대 한미일 대립 구도 형성 과정에서 한국 외교에 가장 위험한 ‘선택의 시간’이 닥치고 있어서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으로 한쪽에 줄을 선 윤석열 정부는 냉혹한 국제정치 속에서 안보와 경제를 모두 챙길 준비가 된 건가.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