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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한 세력다툼만 남은 한국 정치

입력
2022.06.13 19:00
25면

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 당시의 모습. 맨 왼쪽이 노무현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 당시의 모습. 맨 왼쪽이 노무현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대중에 처음 알린 건 '5공 청문회'였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건 숱한 낙선이었다.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90년대, 그는 민주당 배지를 달고 세 차례나 부산에 출마했다. 결과는 세 번 모두 낙선. 특히 마지막으로 선거에 떨어졌던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그는 종로라는 안정적인 지역구를 버리고 재차 부산으로 향하기도 했다. 그 모습은 뭇사람의 마음을 두드렸다. 지역주의 타파와 기회주의 청산에 정치 인생을 건 그에게 사람들은 소액 모금 운동(희망 돼지 저금통)과 투표로 화답했다. 그의 잔상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3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짙게 남아있다.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엇갈리겠지만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라면 저마다의 뚜렷한 가치와 지향점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박정희는 산업화의 기틀을 닦아 이 나라를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수십 년 동안 서슬 퍼런 군사독재와 맞선 끝에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룩해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든 하나회 척결이든 햇볕정책이든, 이들이 추진했던 정책은 여전히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다못해 '5공'의 일원이었던 노태우도 냉전 체제가 무너지는 시기에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공산권 국가들과의 교류 협력에 물꼬를 텄다.

어떤 가치가 투영된 정치인을 좇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 가치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따르기 시작하면 그건 곧 시대정신이 되었다. 시대정신이 비단 대통령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도시 빈민들을 위해 평생을 싸운 제정구 전 의원이나 민주화의 산증인이었던 김근태 전 의원, 우리 사회 '투명 인간'인 노동자들 곁에 섰던 노회찬 전 의원 등이 그랬다. 이들에게는 저마다 무엇을 위해 정치하겠노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 신념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들은 분명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인들이었다.

큰 정치인들은 계절을 바꾸었다. 불모의 땅에서 새싹을 틔웠고, 혹한의 땅에 봄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런 정치인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건 낭만적인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계절을 바꾸려 하기는커녕 바뀐 계절에 맞추어 무슨 꽃을 심을지 눈치나 보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과 가까운지 아닌지, 우리 편을 비판했는지 아닌지로 논쟁을 벌인다. 이런 논쟁은 민생과는 관계가 없다. 상대가 말실수라도 하면 그걸로 한철 장사판을 벌인다. 그렇게 본류는 사라지고 아류들만 남아 지질한 세력다툼을 벌이는 게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어떻게 보면 야권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팬덤 정치도 이런 가치의 실종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인들이 알맹이가 없다 보니 외형적 이미지로만 소비된다. 그래서 50~60대 아저씨들한테 낯부끄러운 애칭을 붙이고 보통 사람들은 쓰지 않는 억지 유행어들을 생산해낸다. 정치인이 무슨 일을 벌이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주문하는 건, 역설적으로 그가 어떠한 가치와 지향점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시대정신이라고 할 만한 의제가 보이지 않았던 것도, 화젯거리나 쫓아다니는 정치인들의 그저 그런 수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이 처한 신뢰의 위기와 분열의 위기, 그리고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파 갈등에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 당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지부터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여전히 특정인을 수호하고 검찰 수사로부터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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