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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신스틸러 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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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핵실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 없이 끝난 북한 노동당 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신 스틸러는 최선희 외무상이었다. 2018년 김정은의 정상외교 현장을 누볐던 최선희의 재등장이 북한의 대외전략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말 4차 전원회의에 이어 이번에도 대외전략과 대남전략은 공개하지 않았다. '원칙과 (전략)전술적 방향을 제시했다'는 원론적 표현조차 4차 전원회의 결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김정은 총비서는 주변 정세 격화의 위험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국방력 강화 목표의 조기 달성만을 강조했다. 국방 우선의 전략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제시한 방법론은 '강대강, 정면승부'였다. 2022년 여름, 평양의 시계는 여전히 외교가 아닌 군비증강과 안보에 맞춰져 있음을 예고한다.
북한이 장거리건 단거리건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쏘아 올릴 때마다 전문가들은 각각 군사, 외교, 정치적 배경과 의도에 주목한다. 군사전문가들이 미사일의 궤적을 추적하고 고도와 사거리를 분석한 결과는 북한의 의도를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외교적, 정치적 배경은 다르다. 5, 6월 미사일 시리즈를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정치적 의도를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한일 양국 순방을 마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에어포스 원이 이륙하자 ICBM을 포함해 탄도미사일 3발을 잇달아 발사한 것을 두고 한미일 3국을 향한 외교적 메시지라고 논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북한이 외교무대로 돌아올지 예측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분명한 것은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할수록 평양의 외교 행태는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마크 벨 교수는 핵무기 확보에 성공한 국가들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분석해 몇 가지로 유형화한 바 있다. 연구의 결론은 핵보유국이 되고 나면 외교정책이 이전에 비해 공세적이고 팽창적일 뿐만 아니라 단호하고 자주적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30년간 북한의 핵국가화 과정을 되돌아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도 적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실시했었던 1, 2차 핵실험 직후 북한은 '자위적 핵 억제력'과 '방어적 대응조치', 그리고 '불가피한 선택'과 같은 주변 환경요인을 강조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자위적 방어 논리는 유지되었지만 3차 핵실험 이후에는 '실제적 군사행동'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선포하고 최고인민회의 법령에 핵보유국 지위를 못 박은 것도 3차 핵실험 이후였다. 4차 핵실험 이후에는 스스로 '동방의 핵대국'으로 지칭하며 미국을 향해 핵보유국 인정을 촉구했고 5차 핵실험을 하고 나서는 '전략적 지위'를 강조하면서 당당한 핵보유국을 대놓고 들먹였다.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을 앞두고 2017년 9월 실시한 6차 핵실험 이후에는 미국을 향해 '섬멸적 보복타격'을 공언했다. 한미일 정보당국이 7차 핵실험을 예상하는 가운데 대원수 계급장을 달고 열병식에 등장한 김정은은 "근본이익이 침탈된다면 핵무력 사명을 결행하겠다"며 위협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미사일 섞어쏘기와 나눠쏘기를 거듭하며 실전 운용능력을 과시할수록 외교적 언어도 레드라인에 가까워지고 있다. 최선희의 재등장이 대미외교의 재가동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기 전에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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