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구 방화범 변호사 "재판 지고도 흥분하지 않아"... 30분 뒤 끔찍한 범행

[대구 방화범 변호사 전화 인터뷰]
"용의자 천모씨, 내게도 평소 험한 말 자주 해"
방화 범행 30분 전 법정에서 만난 게 마지막
'생명 위협 받았나' 질문에 "답변 부적절" 함구

12일 오전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방화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동료 법조인들이 운구 행렬을 떠나보내고 있다. 뉴스1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법조빌딩 방화범의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용의자 천모(53)씨 담당 A변호사는 12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천씨가 자신에게도 험한 소리를 자주 내뱉었다"고 말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냐는 질문에는 한참 생각하더니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A변호사는 천씨의 재개발 사건 관련 소송을 도맡아왔다. 그는 "천씨의 재판태도가 불량해 재판부로부터 제지도 많이 당했고 상대방 변호사에게 하듯 나한테도 험한 소리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천씨와 관련된 질문에 속시원히 대답하기 힘든 듯 절반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A변호사는 천씨가 법조빌딩에서 범행을 저지르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다. 사건 당일인 지난 9일 오전 10시 대구고법 민사2부에서 진행된 추심금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천씨를 마지막으로 봤다.

보통 선고공판에선 재판부 선고만 내려지기 때문에 변호사는 출정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그날은 천씨가 따로 부탁해 참석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천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해당 회사가 천씨에게 지급할 채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해 천씨는 패소했다.

A변호사는 "이날 선고 후 오전 10시 10~20분쯤 헤어졌는데 천씨가 패소 후에도 평소보다 더 흥분한 것 같지는 않았다"며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천씨가 곧장 집으로 가서 미리 준비한 휘발유와 흉기 등 범행도구를 챙겨 10시 55분쯤 법조빌딩에 방화한 것으로 미뤄 판결 전에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이 계획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에는 대부분 외부에 티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씨는 8일에도 재개발사업 시행사 대표에 대해 허위정보를 인터넷 등에 게시한 혐의(명예훼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A변호사는 천씨가 소송에서 과도한 주장을 하는 바람에 제지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의뢰인들은 대부분 그런 측면이 있는데 천씨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발생 뒤 계속 천씨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이 나지만 그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대구= 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