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조명받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입력
2022.06.1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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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한일정상회담 후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과거사 인식을 포함해 11개 항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한일정상회담 후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과거사 인식을 포함해 11개 항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김대중도서관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간 첫 만남이 이달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무대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되면 2년 반 만이다. 새 정권 간 대면이라 기대감이 크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시작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인식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양국 관계의 모범답안이 이 선언인 셈이다.

▦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식민지배로 한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현했다. 당시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다. 군사독재를 거친 한국에서 민주화 인사로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일본 지식인 사회가 열광했고, 특히 DJ(김대중)에 대한 일각의 ‘존경심’도 있었다. DJ는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세계 지도자 중 13명을 뽑아 구성한 ‘드림내각’ 수반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정상 간 국제회의장에선 DJ와 사진을 찍으려는 지도자들이 흔했다.

▦ 일본이 DJ를 높이 사는 것은 일본의 사과를 인정한 유일한 인물로 보는 측면도 있다. DJ는 공동선언에서 양국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했다. 당시 NHK방송에서 DJ는 역사문제가 일단락됐냐는 질문에 “한국민과 나는 이 문제가 더 이상 재론되지 않고 양국이 21세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달 뒤 중국 국가원수로 처음 방일한 장쩌민은 일왕 앞에서 ‘일본국군주의’를 언급해 반중 감정을 일으켰다.

▦ 일본인의 마음은 과거보다 좁아졌다. 침략행위를 두고 주변국에 대한 부채의식은 희미해지고 2010년 중국에 세계 경제대국 2위를 내준 뒤로는 더 조급해졌다. 일본 내 전문가는 기자에게 “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일본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한류가 득세하면서 혐한도 강해졌다. 한일관계 새 출발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다시 읽는 데서 비롯될 수 있을 것이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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