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처형의 '압구정식 컨설팅'이 낳은 쿠퍼티노 입시비리 스캔들

입력
2022.06.24 04:30
<2> 쿠퍼티노에서 벌어진 '입시 비리'
진씨, 쿠퍼티노에서 '대입 컨설턴트'로 활동
표절·대필 의혹 논문 명문대 입학 스펙 설계
현지 컨설턴트도 "저런 스펙 공동체 처음 봐"
"미국 역사에 남을 비리" 학부모들 한목소리

편집자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에게 제기된 ‘편법 스펙 쌓기’ 의혹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일보 조소진·이정원 기자는 ‘아이비 캐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논란의 진원지인 미국 쿠퍼티노와 어바인을 찾아갔다.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송도, 미국 대입 컨설팅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도 집중 취재했다.

“쿠퍼티노는 아이들 고등학교 때문에 불과 800m 떨어진 길 건너편으로 이사를 가는 동네예요. 미국은 집 주소에 따라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정해져 있는데, 학군 좋기로 소문난 몬타비스타, 린브룩, 쿠퍼티노 고교를 보내려고 부모들이 빚을 져서라도 학교 주변 집을 렌트하죠.”

(쿠퍼티노에 22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인 A씨)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쿠퍼티노 고등학교 모습. 이 지역은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이 자리잡으면서 아시아계 학부모들이 몰려들었고, 자녀를 학군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쿠퍼티노=조소진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쪽에 위치한 쿠퍼티노는 최근 한인들 사이에서 ‘제2의 대치동’으로 떠오른 곳이다. 유에스뉴스(US News)가 집계한 '2022 고교 순위'에 따르면, 쿠퍼티노 몬타비스타 고교의 아시아계 학생 비율은 79.3%에 달해 미국 전체를 통틀어도 유달리 높다. 구글과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이 쿠퍼티노 인근에 자리 잡으면서 한국, 인도, 중국 등 아시아계 학부모들이 몰려들었고, 자녀를 학군 좋은 고교에 보내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학부모들이 자녀의 대학 입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곳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처형 진모(49)씨의 이름은 ‘입시 비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사실이라면, 미국 역사에 남을 '입시 비리'"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몬타비스타 고등학교 학부모들이 3일(현지시간)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운동장 입구로 모여들고 있다. 쿠퍼티노=이정원 기자

최근 쿠퍼티노가 주목받게 된 이유는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는 한인들도 보지 못한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명문대 진학을 위한 논문 대필과 표절, 각종 대회 출품을 위한 앱 대리개발과 봉사 시간 '셀프 수여' 의혹까지. 한인들은 "사실로 드러난다면, '미국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입시 비리'로 기록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일보가 이달 초 쿠퍼티노를 방문해 취재한 결과, 진씨는 최근까지 4년 정도 쿠퍼티노에서 ‘대입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대입 컨설팅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진씨는 이곳에서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스펙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섰고, 그 대가로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진씨는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비영리기관을 운영하다가 두 자녀의 대학 입시가 끝나자마자 폐쇄했다. 순수한 봉사단체가 아니라 자녀의 대입 준비를 위한 맞춤형 기관이었던 셈이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진씨는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미국 대학 입시에선 △내신(GPA) △자기소개서(Essay) △대외활동(EC) △운동 △예술 △추천서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SAT) 점수 △대학 학점 선이수(AP) 시험 준비 등이 필요한데, 진씨는 자녀 대입에 필요한 대외활동(Extracurricular Activity) 스펙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변에 “운동과 예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하기 쉽지 않다”며 “대신 대외활동 이력을 탄탄하게 준비해야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유명 사립대)에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SAT 점수가 ‘선택’ 제출 사항으로 바뀌면서, 미국 대입에선 대외활동 평가 비중이 높아졌다.

'약탈적 학술지'에 표절 논문 게재한 쿠퍼티노 고교생들

그래픽=송정근 기자

진씨 자녀와 한동훈 장관 자녀뿐 아니라, 이 지역 학생들은 고교생 신분으로 여러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들은 기존 논문의 단어와 문장 구조만 바꾼 ‘교활한 표절(Sneaky Plagiarism)’이란 지적을 받았고, 대필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진씨는 이 같은 ‘스펙 공동체’ 의혹의 중심에 있다. 한국의 한 입시컨설턴트는 “진씨가 직접 브로커에게 연락했는지, 압구정 학원을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압구정 학원 방식 그대로”라고 말했다.

논문에 이름을 같이 올린 학생과 부모들이 편법과 불법을 인식하고 '스펙 공동체' 활동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학부모들에 따르면, 진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자신의 자녀보다 한두 살 어린 학생들(9·10학년)을 대상으로 “리서치 그룹 활동을 같이하자”고 끈질기게 권유했다는 것이다.

리서치 그룹 참여를 제안받았다는 B씨는 “리서치 페이퍼 1건을 쓰는데 멘토 비용으로 1만 5,000달러(약 2,000만 원)가 든다고 했고, 3명이면 각각 5,000달러(약 650만 원)씩 내야 했다”며 “논문 수준과 참여 학생 수, 그리고 순서에 따라 가격도 달라졌다”고 밝혔다. 9명이 참여하는 논문에 2,500달러(약 300만 원)를 제안받은 경우도 있고, 논문 2건에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각각 3,000달러(약 400만 원)를 낸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이 비용을 진씨에게 현금으로 건네거나 페이팔을 이용해 송금했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진씨가 대필과 표절 의혹이 제기된 논문을 사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진씨가 학생들에게 참고 문헌과 영상을 배분한 뒤 요약해오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학부모 C씨는 “진씨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당시엔 참고 문헌을 요약하는 활동을 실제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요약본을 1저자인 진씨 자녀에게 보냈는데, 논란이 커진 뒤 확인해보니 표절 논란이 제기된 논문에 다른 학생들이 보낸 부분은 모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진씨에게 돈 주고 만든 '가짜 스펙', 다른 스펙 쌓기에 활용

진씨는 5월 중순 두 자녀와 함께 쿠퍼티노를 떠났지만, 그가 현지에 남긴 여파는 상당했다. 특히 진씨 자녀와 ‘스펙 공동체’ 활동을 함께한 학생들이 돈을 주고 만든 스펙을 다른 용도로 활용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한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이에 학생과 학부모가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쿠퍼티노에서 만난 한인 D씨는 “리서치 그룹에 있던 아이들은 대체로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며 “그러나 리서치와 논문, 봉사활동이 돈 주고 만들어진 것이고, 이를 유명 '섬머 캠프' 지원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펙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말했다. 미국 대학에서 진행하는 섬머 캠프는 입시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명 섬머 캠프의 경우 대학 입시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처형 진모(49)씨가 설립해 운영 중이었던 비영리 봉사기관 셰어 기프트(Share gift)는 자녀 입시가 모두 끝난 올해 1월 문을 닫았다. 미주맘 제공

진씨가 2018년 11월 설립한 뒤 최고 경영자와 재무 책임자 등을 맡았던 비영리 봉사기관 '셰어 기프트'(Share gift)는 자녀의 입시 지원이 끝난 올해 1월 문을 닫았다. 한인 E씨는 “이 기관은 재등록비 800달러만 내면 올해 11월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인증을 받았다”며 “봉사기관에서 활동해야 봉사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 진씨가 다른 아이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자녀만을 위한 스펙 쌓기에 몰두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컨설턴트들도 "단계적 '스펙 세탁' 용도" 비판

쿠퍼티노에서 오래 활동한 입시 컨설턴트들도 진씨의 컨설팅 방식은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고교생 신분으로 다수의 논문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대필과 표절은 교육적 측면에서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크리스김 SK에듀케이션 대표는 “논문을 표절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단체를 만들어 셀프 수상하는 건 전형적인 한국 방식인데, 압구정에선 몰라도 미국에서 진씨 같은 사례는 처음 본다”며 “입시를 염두에 둔 '스펙 세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쿠퍼티노에서 7년째 입시 컨설턴트를 하고 있는 F씨도 “이번 사건 말고는 부적절한 스펙 쌓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학생들도 고교 과정이나 정식 인가된 기관에서 리서치를 경험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논문을 쓴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도 쓰기 힘든 논문을 고교생이 쓴다면 쉽게 납득이 되겠느냐”며 “미국 교육시스템은 정직(Honor Code)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원서에 사실만을 기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절 원저자 "유펜, 진씨 자녀들 입학 취소해야"

논문 표절과 대필 의혹에 대한 검증과 후속 조치는 진씨의 두 자녀가 합격한 펜실베이니아대(유펜) 등으로 공이 넘어간 상태다. 진씨의 첫째 자녀는 유펜 통합치대 1학년에 재학 중이고, 둘째 자녀는 올해 9월 입학이 예정돼있다.

유펜 측은 본보 서면질의에 “개별 학생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진씨가 조직한 리서치 그룹에서 표절을 당한 논문 저자들은 유펜에 항의 메일을 보내며 후속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만난 다수의 입시 컨설턴트들은 “대학에서 조사해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바인의 한 유명 입시 컨설턴트는 “미국 대학의 합격 통보는 '조건부'로, 합격 통보를 받은 지원자가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입학 이후에도 합격을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문 표절 등이 확인될 경우 진씨의 두 자녀 모두 입학이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본보는 진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비뚤어진 욕망, 아이비 캐슬

<1>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사교육

<2> 쿠퍼티노에서 벌어진 '입시 비리'

<3> 지금 압구정에선 무슨 일이

<4> '흙수저' 유학생들의 한탄과 분노

쿠퍼티노·어바인= 조소진 기자
쿠퍼티노·어바인=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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