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속이고 학교 쑥대밭으로" 교포사회 '미운털' 유학생들

입력
2022.06.23 13:00
<1>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사교육
과거엔 유학생 반겼지만... "불공정 입시로 물 흐려"
보딩스쿨 입학 때부터 '압구정발 가짜 스펙' 동원
"명문대 타이틀에만 초점... 교포사회 불안감 가중"

편집자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에게 제기된 ‘편법 스펙 쌓기’ 의혹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일보 조소진·이정원 기자는 ‘아이비 캐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논란의 진원지인 미국 쿠퍼티노와 어바인을 찾아갔다.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송도, 미국 대입 컨설팅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도 집중 취재했다.


"가짜 경력으로 학교 들어와서 난동 피우다 퇴학당하고, 다시 문제 아이들만 모인 학교 가서 또 퇴학당하고... 이러니 우리가 유학생들을 반기겠어요?"

20년 넘게 미국 현지에서 상류층 자제들의 유학생활 관리를 맡아온 컨설턴트 강모씨는 2017년 9월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미국 동부의 명문 보딩스쿨(대입준비에 특화된 기숙학교) 11학년에 재학 중이던 국내 유명 병원장 딸 A양이 퇴학당할 상황에 놓였다는 소식이었다. 1년간 초밀착 관리를 조건으로 강씨와 A양 부모는 10만 달러짜리 '가디언십(유학생 후견 프로그램)' 계약을 맺은 뒤, 병원에 강제입원된 A양부터 꺼내왔다. 강씨는 이후 학교 측에 철저한 감시를 약속하며 A양을 재입학시켰다.

하지만 A양의 유학생활은 이미 망가져있었다. 중학생 때 부모 권유로 홀로 미국생활을 시작했지만, 각종 문제행동으로 여러 보딩스쿨을 전전했다. 그런데도 명문 보딩스쿨에 다시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울 압구정 유학원에서 그림과 골프, 스키 경력 등을 허위로 만들어주고 이를 학교에서 눈감아줬기 때문이다.

강씨를 만난 뒤에도 A양은 학교에서 분란을 일으켰고, 결국 재차 권고 퇴학을 당했다. A양이 나가기 전 교장은 강씨가 받아야 할 가디언십 대금 중 5만 달러를 학교에 기부 명목으로 내라며 강씨를 회유했다. 반복된 파행에 참다 못한 강씨는 2019년 A양 아버지와 교장 사이의 입시비리 문제를 미국 FBI와 한국 검찰에 고발했다.

"교포들, 처음엔 유학생 반겼지만 이젠 거리 둬"

A양이 거쳐간 미국 동부의 명문 보딩스쿨 건물. 위키미디어

A양 사례는 명문 보딩스쿨이 밀집된 미국 코네티컷주 일대에서 "교포들이 한국인 유학생을 기피하는 이유"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일화다. 강씨는 "골프채 한 번 잡아본 적 없던 A양이 골프로 학교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니, 다른 학부모들은 폭발 직전이었다"며 "가장 큰 문제는 보딩스쿨만 바꿔가며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아이들을 명문대에 보내려던 부모 욕심"이라고 강조했다. A양은 강씨가 재입학시킨 학교에서 나온 뒤에도 또다시 유학원을 통해 뉴햄프셔주에 있는 보딩스쿨에 들어갔다.

강씨는 "과거엔 한인 교포들이 유학생들을 반겼다"고 회상했다. 현지에 기반이 없어 미국에서 활용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교포들에게 집안 좋고 똑똑한 한인 유학생들은 귀중한 인적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압구정발 가짜 스펙'으로 세탁해 급히 유학을 오는 부유층 자제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교포 학생들의 자리를 뺏는 등 '물을 흐리기' 시작했다는 게 강씨 설명이다. 강씨는 "대학 중퇴라도 좋으니 미국 명문대 입학만 시켜달라고 사정하는 부모도 있다"며 "이런 부모가 보낸 아이들이 미국에서 정상적으로 공부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원의원 도전한 교육 전문가 "압구정식 컨설팅 현지 상륙"

유학생 부모들이 미주 한인사회에 '압구정식' 사교육을 들여오면서, 현지에선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1996년 미국으로 건너와 교육열이 높은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B씨는 "처음엔 아이가 사교육을 안 받는다고 하니까 (유학생 부모들이) 말도 섞어주지 않았다"며 "교육에 극성인 부모들에게 대필 정도는 안 걸리면 그만인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B씨는 "이민자 꼬리표를 달고 힘들게 정착했던 우리 때와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부자 유학생들이 부도덕한 입시 준비로 한인들을 욕 먹이고 대학 입학 자리까지 뺏고 있다”고 토로했다.

남편과 함께 미국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는 C씨는 한국에서 건너온 일부 주재원들이 입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C씨는 "지인의 자녀가 현지에서 알아주는 공립대에 들어갔지만, 한국에 돌아가니 모두 '아이비리그' 이야기만 해서 당황스러웠다고 한다"며 "한국인들에게 관심사는 부모의 해외생활 커리어보단 자식의 명문대 입학에 맞춰져 있다"고 씁쓸해했다.

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캠프 사무실에서 유수연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렌지카운티=이정원 기자

교육열이 높은 LA 세리토스에 거주하며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유수연씨는 한인 유학생 부모들의 최근 대입 준비 흐름을 △부모들의 막강한 재력 △압구정식 편법 컨설팅 상륙으로 요약했다. 유씨는 지역 내 명문학군으로 꼽히는 ABC통합교육구에서 한인 최초로 교육위원장을 지냈고, 30년 넘게 대입 컨설팅업체를 운영해 교육 전문가로 꼽힌다.

유씨는 "과거엔 미주 한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녀와 학원 강사들을 닦달했다면, 최근엔 화려한 인맥과 경제력으로 '압구정발 스펙'을 만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정성 없이 외부활동 이력만 쌓고 평범한 한인 부모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비뚤어진 욕망, 아이비 캐슬

<1>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사교육

<2> 쿠퍼티노에서 벌어진 '입시 비리'

<3> 지금 압구정에선 무슨 일이

<4> '흙수저' 유학생들의 한탄과 분노


쿠퍼티노·어바인= 이정원 기자
쿠퍼티노·어바인=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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