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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치 인생 통째 설계"... 도피 유학생들 학력 세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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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에게 제기된 ‘편법 스펙 쌓기’ 의혹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일보 조소진·이정원 기자는 ‘아이비 캐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논란의 진원지인 미국 쿠퍼티노와 어바인을 찾아갔다.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송도, 미국 대입 컨설팅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도 집중 취재했다.
"혼자서는 원서 제출을 위한 기본적인 신상 정보도 기입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2년 치 인생을 '통으로' 설계받는 거죠. 비겁하고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이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컨설팅 학원 인근에서 만난 한인 의대생 대니얼 오(25·가명)씨는 도피 유학생들의 삶을 설명하다가 분노를 표출했다. 미국 영주권자인 오씨는 명문 공립대들이 포진된 LA 동부지역에서 5년째 컨설팅 학원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10여 년 전 한국인 대표가 설립한 이 학원엔 주로 한국에서 수학능력시험을 망쳤거나, 시험을 잘 볼 자신이 없는 학생들이 부모 손에 이끌려 온다. 학원의 목표는 이들을 미국 2년제 대학인 커뮤니티 칼리지(CC)에 입학시켜 성적과 '스펙'을 철저히 만들어준 뒤 상위권 대학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입학 후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는 전략은 대학 학비가 비싼 미국 사회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려워 편입 전에 2년만이라도 저렴한 학비로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CC를 자주 찾는다. 그러나 오씨가 목격한 한국인들의 행태는 딴판이었다. 한국의 부유층 자녀들에게 CC는 '학력 세탁'을 위한 도구로 여겨지고 있었다. 오씨는 "일반대학 입학보다 편입학이 수월하다는 점을 악용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제치고 '가짜 스펙'으로 명문대에 들어가는 유학생들을 보면서 더 이상 침묵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가 한국일보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행태를 폭로한 이유다.
오씨에 따르면 도피 유학생들은 서울 강남의 중개업체를 통해 LA 학원을 소개받는다. 한국에서 대입이 끝날 때쯤 테헤란로 오피스빌딩에선 학원 설명회가 열린다고 한다. 오씨와 같은 학원 직원들은 대표가 한국인이란 사실만 들었을 뿐 자세한 내부 정보는 알지 못한다. 오씨는 "학원에서 한국 유명 게임업체 임원과 병원장 등 고소득층 자녀들을 여럿 봤다"며 "한국에선 큰소리치고 사는데, 학원에선 무기력한 자녀들이 원장에게 제명당할까 봐 굽신거린다"고 말했다.
중개업체를 통해 학원과 연결되는 순간부터 학생 스스로 하는 일은 사실상 없다. 미국에서 어떤 CC에 입학할지,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학원에서 골라주기 때문이다. 학생 스스로 이를 느끼는지 오씨가 보여준 편입 합격생의 학원 이용 후기엔 "다른 학생들은 수백 시간을 써가며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저희에게는 '밀키트'나 '레디밀'처럼 제공됐다. 한국에선 성공하기 힘들었지만, (학원) 덕분에 기사회생했다"고 적혀 있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학원에선 수학이나 통계 분야 전공을 주로 추천한다. CC에서 성적을 잘 주는 교수가 누군지 꿰고 있어, 아예 학기 시간표도 짜준다. 학원은 이 같은 컨설팅 비용으로 한 달에 기본 관리비로 1,000달러를 받고, 편입할 대학에 지원하면 한 곳당 500달러를 받는다. CC에서 수강하는 과목별 과외비는 별도다. 이렇게 CC에서 2년을 지내고 나오면 학생들은 6,000만 원가량을 지불하게 된다는 게 오씨 설명이다.
올해 편입 합격생들을 포함해 현재 오씨가 일하는 학원에서 관리 중인 학생은 60여 명에 달한다. 이 중엔 생화학 전공으로 예일대에 합격한 학생도 있다. 오씨는 "국적을 가려 받진 않지만 찾아오는 이들은 전부 한국인"이라며 "온통 가짜뿐인 스펙으로 예일이나 코넬 같은 아이비리그에 합격하는 학생도 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CC에 보낸 뒤 부정한 방식으로 명문대에 편입시키는 전략은 유학원들 사이에선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오씨가 재직 중인 학원 인근에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관리해주는 업체가 서너 곳 더 있었다. 20년째 강남에서 유학 컨설팅 업체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수능이 끝난 후 실패자 그룹에 유학원들이 가장 강력하게 제시하는 선택지가 CC 입학"이라며 "일단 들어만 가면 명문대 편입은 알아서 시켜준다는 식이고, 일부 유학원에선 (오씨 학원과 같은) 미국 현지업체와 연결만 시켜주곤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CC 입학은 유학원 입장에선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입시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한인 교포 강모씨는 “일부 CC는 아예 유학원과 연계해 학생을 보내주면 성공 보수를 준다"고 했다. 그는 "학생이 CC에 입학하면 학점 관리부터 원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컨설팅을 받기 때문에, 일부 유학원에선 이를 돈벌이에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편입할 때 중요한 평가 요소인 자기소개서(Essay)와 비교과활동(EC) 영역에서 학원 컨설팅은 빛을 발한다. 오씨는 "에세이의 경우 첨삭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학원에서 설정한 주제에 학생 동의만 받고 통째로 써주는 것"이라며 "시간당 80달러로 대필해주는 외부 직원 3명이 별도로 있다"고 말했다. 오씨는 "번듯한 업체가 아니라 구인 플랫폼에서 찾은 사람들"이라며, 대필 작가 이력서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이들은 모두 스탠퍼드, UCLA, UC버클리 등 미국 서부 대학 출신에 석사학위 소지자였다.
비교과활동은 서류를 꾸며내면 그만이라 더욱 쉽다. 오씨는 "코로나19와 맞물려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감성팔이' 하기가 좋아져서, 동물보호소나 한국 양로원에서 봉사활동한 것처럼 증명서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학술이나 인턴십 활동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대학생들 과제를 짜깁기해놓고는 특정 대학 교수의 조교로 연구활동에 참여했다고 제출하기도 한다.
오씨가 보여준 한 학생의 비교과활동 서술엔 "미주 한국일보에서 학생 기자로 활동했다"는 허위내용도 있었다. 이 학생은 "인턴십 기간 막바지인 2019년 12월 한인타운과 인접 지역민 간의 사회문화적 충돌을 주제로 한 기사를 작성했다"고 적었지만, 미주 한국일보에선 당시 학생 인턴기자를 선발조차 하지 않았다.
이처럼 실존하는 단체나 실명까지 거론하며 대범하게 조작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국 대학이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 준칙(honor code)'에 기반한 미국 사회에서 학생이 입학 서류를 조작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 검증 작업이 소홀하다는 것이다. 오씨는 "수년째 수많은 학생들의 가짜 서류를 만들어냈지만, 입학처에서 진위 여부를 확인해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했다.
오씨는 이렇게 편입에 성공한 학생들이 빠지는 '착각'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합격만 하면 모든 게 자신의 성과인 양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이들은 '편입충'으로 불리며 괄시받거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장기 휴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오씨는 "한국에선 미국 명문대 중퇴 타이틀만 있어도 대접을 받으니 부적응이 큰 문제는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오씨는 처음엔 단순 사무직으로 알고 학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컨설팅 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실감했다. 그가 만난 학생들 중엔 학비가 얼마인지, 학교 성적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모르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오씨는 "본인 생년월일도 제대로 입력하지 못해 대학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때부턴 비자부터 지원서 제출까지 학원이 모두 도맡는다"며 "이런 아이들이 가짜 서류로 명문대에 들어가는 걸 보고 정말 실력 있는 유학생들이 자리를 빼앗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고 밝혔다.
◆비뚤어진 욕망, 아이비 캐슬
<1>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사교육
<2> 쿠퍼티노에서 벌어진 '입시 비리'
<3> 지금 압구정에선 무슨 일이
<4> '흙수저' 유학생들의 한탄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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