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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수오지심

입력
2022.06.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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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한동훈 장관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500만 원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한동훈 장관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500만 원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20년 7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계좌 추적’ 주장으로 9일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영향력 큰 공인의 허위 주장이었고, 검찰과 한 장관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죄질이 나쁘다. 그래도 2021년 1월 “제기한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 상대방을 악마화했다”며 검찰에 사과한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9일 유죄 판결 후 맹자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언급하며 “제가 부끄러워해야 할 잘못이 있다”고 인정한 것도 마땅하다.

□ “한 장관도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인 것은 불편하지만, 흘려들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검언유착’ 녹취록에 따르면 채널A 기자가 유 전 이사장을 언급했을 때 한 장관은 “관심 없어”라는 말만 한 게 아니었다. “해볼 만하지. 유시민도 자기(이철)가 불었잖아” “한 건 걸리면 되지”라고도 했다. 기자의 몰아가기 취재를 “방조”한 것이 “검사로서 한동훈씨의 잘못”이라고 유 전 이사장은 지적했다. 한 장관이 협박·유착을 저지르지 않았으나 ‘그런 취재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 한 장관은 무거운 처벌로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판사가 세 차례 합의 의사를 물었지만 다 거부했다. 유 전 이사장과 KBS 기자들에게 5억 원씩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장관이 돼도 취하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지난해 유 전 이사장의 사과에는 “이미 큰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법에 엄격한 그는 규범의 영역에선 아노미였다. 딸의 논문 표절·대필 의혹은 학생이 해선 안 되는 비윤리적 행동인데도 “입시에 사용하지 않았다”며 정당화한 게 그렇다.

□ 법치, 법대로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같은 문제를 노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에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을 밝혔다. 엄벌주의로 화물차주 민생이 해결될 리 없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는 “법에 따라” 방치할 뜻을 비쳤다. 시위가 합법이라도 대통령의 메시지로 자제시키는 방법이 있다. 모든 걸 법으로 재단하면 규범과 정치가 실종된다. 수오지심 발언을 계기로 규범과 정치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어떤가.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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