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가 생전 후임으로 찍은 이상벽 "36년 뒷그림자,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

방송인 이상벽, '국민 MC' 송해 추모
"늘 전국노래자랑 하루 전 동네 취재한 성실함"
"술 인심 후하고, 주변 잘 아우른 배려심 대단"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를 맡아 온 '국민MC' 송해가 지난 2012년 8월 2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나팔꽃인생 60년 앵콜 송해 빅쇼'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국민 MC' 송해와 함께 일했던 방송인 이상벽은 9일 고인에 대해 "말 그대로 최후의 일각까지 무대를 지키신 분이고, 여간 바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면서 "이 세상 정리하셨으니 저 세상 가서는 편안하게 앉으셔서 여유 있게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전국노래자랑'의 후임 진행자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워낙 큰 뒷그림자를 만들어 놓으셨기에 누가 들러붙어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36년 된 (진행자의) 후임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배려심이 대단하고 성실함이 밑천이었던 분"

8일 대구 달성군 옥포읍 송해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송해 선생을 애도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고 있다. 뉴스1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이상벽은 "친상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라면서 고인에 대해 "그이하고 같은 황해도 실향민이고, 또 우리 돌아가신 부친하고 연세가 같으셨기에 아버님처럼 섬기는 그런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상벽은 고인에 대해 사적으로는 "배려심이 대단했던 분"이라고 추억했다. 그는 "근검절약하는 분이지만, 하나 확실한 거는 술 인심은 아주 후하셨다"면서 "누구하고 술을 마시든 술값은 꼭 본인이 내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북에서 홀로 나오셔서 정말 외롭게 사시면서도 주변을 잘 아우르는 분이었다"면서 "상록회라고 원로 연예인들 노후의 휴식터를 운영하면서 식사 대접하고 거기 와서 장기, 바둑 둘 수 있도록 이렇게 마련해 주셨다"고 말했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지역을 성실하게 취재하며 방송을 준비했다. KBS 방송화면 캡처

진행자로서는 '성실함'을 강점으로 삼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공연을 모시고 다니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의자를 놓고 이렇게 앉아서 한 30분 전부터 묵상을 하더라"면서 "전날 약주를 하셔서 그러신가 해서 물었더니 '거기 앉아서 머릿속으로 리허설을 하는 거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상벽에 따르면, 그가 "매일 하는 공연을 무슨 리허설을 하냐"고 질문하자, 송해는 "전국노래자랑도 내가 그냥 늘 거기서 거기고 거기서 그렇게 하는 것 같지만 하루 전에 가서 반드시 그 동네에 관한 모든 걸 내가 취재해서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그런다"고 답했다.

이상벽은 송해를 "수십 년 넘게 방송을 해도 1시간짜리 프로그램은 1시간 전에, 2시간짜리 프로그램은 2시간 전에 나타나 구석에 홀로 돌아앉아서 대본을 꼼꼼하게 다 숙지한 분"이라면서 "이렇게 생명력을 유지한 건(비결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성실함이 밑천이었다"라고 말했다.

"후임은 방송국이 정할 일... 고인이 못 이룬 꿈 이룰 수 있다면"

'국민MC' 송해(가운데)가 지난 2016년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백세인생 송해와 함께 효 콘서트' 제작발표회에서 90세 생일을 맞아 참석자들과 함께 케이크를 자르는 모습. 이상벽(왼쪽 첫 번째)은 이 행사에 진행자로 동참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상벽은 '나팔꽃 인생 60년-송해 빅쇼'를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동안 송해와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 또 송해 본인에 의해 '전국노래자랑'의 후임 진행자로 언급되기도 했다. 송해는 지난해 9월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 출연했을 때 이상벽을 후임 진행자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상벽이 MC 자리 넘겨주신다고 약속하신 건 어떻게 되냐고 물었기에 아직 멀었으니 30년은 더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벽은 이에 대해 "전적으로 방송국에서 정하는 일"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고인 입장에서) 내가 고향 후배고 그러니까 어디 가면 '다음에는 우리 이상벽이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는데, 그 양반 뜻이 그랬던 것뿐이지, 이제 방송에서 후임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고향 황해도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싶었던 송해의 꿈을 자신이 이루면 좋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나도 황해도에서 태어난 사람이니까 거기 올라가서 우리 정말 고향분들 모아놓고 송해 선생님처럼 활기차게 '전국!' 한번 할 수 있으면 살아생전 소원 한꺼번에 푸는 것"이라고 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