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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난민이 아닌 그들을 구조하지 않는 이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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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해외 축구 팬이다. 정확히는 스페인 1부 리그인 프리메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라는 팀과 아르헨티나 축구선수인 리오넬 메시의 팬이라고 해야겠지만, 꼭 응원하는 팀이 아니라도 해외 축구 경기를 즐겨보는 편이다. 특히 유럽축구는 자정을 넘긴 늦은 밤이나 새벽에 경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극심한 야행성인 나의 생활 패턴과 오히려 딱 맞다. 5월 마지막 주에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끝나면 축구 클럽의 팬으로서는 쉬는 구간에 접어들고 월드컵, 유로 대회, 코파 아메리카가 기다리는 국가대항전의 여름을 향해간다. 하지만 지난한 팬데믹을 뚫고 지나오며 11월로 개최가 밀려 이번 여름에는 월드컵이 없다. 대신 밀려있던 월드컵 예선과 친선 국가대항전이 한창이다. 며칠 전, 유럽 지역의 마지막 한 장의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차지하기 위한 웨일스와 우크라이나의 경기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축구 대표팀 공격수 올렉산드르 진첸코의 눈물의 인터뷰를 본 탓에,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봤다. '국가대항전'이라는 단어의 마지막 글자가 '전쟁'의 첫 글자인 것이 그렇게 의식이 되기는 처음이었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진 지 103일 째 되던 날이었다.
휴전국에 살고 있지만 전쟁을 모른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무는 지인에게 우크라이나에서 피난민이 몰려오는 중이라는 소식을 들어도,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어떤 고통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하려고 애써보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100일은 짧은 것 같지만, 관심이 사그라들기에는 또 충분한 시간이라 세계 어딘가에는 침략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잊는다. 이럴 때면 나는 개인의 이야기를 찾는다. 왓챠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우크라이나와 웨일스의 축구 경기를 보기에 앞서,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된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민의 이야기를 보기로 했다.
영화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사는 아민의 현재에서 시작한다. 아민의 친구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갖춰 놓고, 아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를 기다린다. 어떤 시간을 지나왔기에 아민은 이토록 머뭇거리는 것일까. 고국을 떠나기 전까지, 아민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집에 가족과 함께 살았다. 아민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전쟁과 도피에 관한 기억을 되살리기에 앞서, 아민은 내가 누구였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어린 아민은 누나들의 옷을 입고 그들과 노는 것을 즐거워하며, 배우인 장 클로드 반담에게 푹 빠져있던 아이였다. 전쟁 이전에도 아민은 아프가니스탄 문화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는 동성애자로서 이질적인 개인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으로 인한 내전이 벌어지고 아민의 형이 전쟁에 끌려갈 상황이 되자, 아민의 가족은 집을 떠나 국경이 봉쇄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로 향한다.
이 다음부터는 전쟁 이후 살던 나라와 고향집을 떠나 '난민'이라는 정체성을 부여 받으면서 만나게 되는 세상이 펼쳐진다.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살 수 없는 이 가족은 소속된 국가가 없기에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돌아갈 수 있는 모국이 존재하지 않는데 타국 체류가 가능한 비자도 없다. 난민 신청으로 비교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북유럽으로 떠나려면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밀입국 말고는 방법이 없다. 큰형이 밀입국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주기를 기다리며 지낸 1년을, 아민은 이렇게 표현한다. "우린 1년 동안 그렇게 살았어. 가만히 앉아 떠날 날만 기다렸어."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밀입국의 과정을 겪고 심지어 그마저도 실패해 난민 수용소에 머물다가 다시 러시아로 귀환하게 되면서, 아민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인간이기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째서 이들은 이런 상황에 처했는가? 이들 중 난민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택할 수 없었던 환경과 피해 갈 수 없는 역사가 이들 개인을 현재로 내몰았을 뿐이다. 물이 새기 시작한 작은 배에서 표류하던 난민들이 노르웨이의 거대 유람선을 보고 구호를 요청하는 순간에 아민이 느끼는 감정과 질문은 그래서 중요하다. 아민은 그때의 '우리', 난민들이 처해있는 상황에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느낀다.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 그들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음에도. 그 절박함마저 응답받지 못하고 "여러분을 돌려보낼 겁니다"라는 내용의 방송이 나온 뒤, 자료 화면이 이어진다. 저화질의 화면 속에는 작은 배에서 또 다른 배로 옮겨타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사람들.
인터뷰 형식의 애니메이션인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효과를 자료 화면으로 극대화한다. 과연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을까? 괴로운 마음으로 질문하게 되는 순간, 자료 화면으로 등장하는 뉴스, 실제 영상은 증언한다. 이 모든 일은 벌어졌으며, 아주 가까운 역사로 기록되어있다고. 멈춘 적 없는 전쟁과 수많은 국가 권력의 탄압, 학살, 폭력은 모두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모든 일을 겪은 소년은 비밀을 품고 살아가면서 세계 그 어느 곳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난다.
가족의 희생으로 아민은 덴마크로 밀입국한다. 실패의 경험을 통해 더 안전하고 비싼 경로를 택한 형 덕분에 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나라에서 무사히 난민의 지위를 얻게 됐지만, 아민은 여전히 나를 숨긴 채로 존재하고 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가족에게는 동성애자인 것을 숨겨야 하고 덴마크 사회에서는 가족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아민이 자기 속도로 상황을 직면하고 고백하기까지 기다려준다. 그게 바로 이 작품의 가장 윤리적이며 훌륭한 지점이다. 그 속도에 맞춰 따라가다 보면 형제들의 희생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아민이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깨닫게 되네"라고 덤덤히 말하기까지 겪어온 일들을 같이 직면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간, 그리고 국가 안의 전쟁, 권력의 폭력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휴전 중인 국가에 산다. 타인의 일이 아니다. 공기를 나누며 숨을 쉬는 지구 인류 모두에게 팬데믹이 찾아왔듯이, 전쟁이 만드는 구체적이고 고유한 지옥 역시 인류가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부끄러움은 난민의 몫이 아니라 그들을 구조하지 않는 이들의 몫이어야 한다.
4년 전 멀고 먼 제주까지 피난을 왔던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한국 사회의 논란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가 이 책임을 나누려는 준비가 되어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민이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기로 하고 새로 산 집으로 이사한 장면으로 끝난다. 이 장면에서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은 인터뷰의 첫 질문과 만난다. "너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 것 같아?" 아민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어디로 이동하지 않고 머물러도 된다는 느낌, 임시적이지 않은 곳 같아." 우리 사회가 난민, 이주민들에게 더는 이동하지 않고 떠돌아다니지 않으며 머물러도 된다는 신호를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를 본 뒤 '우크라이나 난민'을 검색해 봤다. 백만 단위의 숫자가 나온다. 이들 중 일부는 가족을 만나러 위험을 감수하며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24시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축구를 볼 때 정도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국가의 명예를 위한 싸움은 스포츠로 족하다는 것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축구이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고국을 생각하며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푸른 잔디 위에서 열심히 뛰었지만, 웨일스에게 패배해 결국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이것도 축구"라고 말했다. 온 마음으로 간절하게 바라더라도 질 수 있는 것이 축구라고는 하지만 전쟁이 끝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어본다. 침략자가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멈추기를. 우크라이나 피난민들과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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