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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정치보복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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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잊히고 싶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낙향했지만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주변 시위가 한 달째다. 장송가를 틀어놓고 확성기로 저주와 혐오의 욕설을 쏟아내는 보수단체 회원들로 전직 대통령 가족은 물론 마을 주민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기보단 야만과 폭력의 분출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 퇴임한 대통령이 훌훌 털고 초야로 돌아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해외망명, 암살, 체포, 극단적 선택, 임기중단 탄핵, 구속수감 장기수. 새삼 따져볼수록 우리 대통령들이 걸어온 역사는 참으로 불행하다. 대통령제가 증오의 정치로 왜곡돼 작동하는 증거다. 민주화 지도자였던 양김(김영삼·김대중)의 경우만 퇴임 후 최악의 상황을 비껴갔다.
대통령들의 비극은 정치보복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군사정권에 가장 탄압받은 DJ(김대중)의 역설이 한 가닥 희망을 제시할 뿐이다.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미국으로 내쫓은 전두환을 DJ는 용서했다. 1997년 12월 대통령 당선인 신분의 DJ는 내란 및 군사반란 혐의로 사형선고가 내려진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전·노 두 사람은 12월 22일 풀려났다. 앞서 1980년 9월 계엄군법회의 최후진술에서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DJ의 전·노 ‘선처’는 집권 후 영남지역을 고려한 국민화합의 전략적 성격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5·18을 겪은 광주에선 “DJ가 정치보복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 살인마의 단죄를 무산시켰다”고 비분강개했다.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은 당대에 큰 트라우마를 남긴다. 박정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다. 두 사람은 시대를 달리하며 정반대 진영에 존재했다. 전자는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고, 후자는 퇴임 후 검찰의 뇌물수수 혐의 압박에 2009년 5월 23일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두 사례 모두 내용은 다르지만 국민적 추모와 울분으로 들끓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통령 1, 2위를 다투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밀짚모자가 잘 어울린 공통점도 있다. 개발독재 시절 농부들과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를 마시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소탈한 풍모의 상징으로 규정됐고, 봉하마을에서 밀짚모자를 쓴 노 전 대통령이 외손녀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국민들을 짠하게 했다. 특히 노무현 서거는 보수·진보 진영 간 사활을 건 충돌이 현재까지 이어지게 된 출발점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막으려면 미국 사례를 참조해볼 필요도 있다. 대학교와 연계한 ‘대통령도서관’(presidential library)과 ‘기념관’(museum)이 미래 리더를 육성하고 정책 경험을 전수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퇴임 후 국민과 친밀감을 높이는 역할이 크다. 한국에선 김대중도서관이 비교적 유일한 성공 사례다.
전직 대통령을 매개로 치르는 국민적 에너지 낭비는 심각한 지경이다. 양산 사저 앞 시위를 계기로 야권은 “쥐XX 잡아라”라고 외쳤던 2017년 서울 논현동 이명박 사저 앞 상황을 역지사지로 돌아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적폐청산’에 나선다면 지지층에 카타르시스를 줄 순 있겠지만 스스로도 5년 후가 꺼림직한 악순환을 벗어날 길이 없다. 사람을 겨냥하지 말고 정치문화를 고쳐야 하는 이유다. 물론 불법과 비리에 대해 국민통합적 관점에서 온정주의로 흐르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치적 지배계층의 정략적 야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쪽에 더 엄격한 읍참마속과 일벌백계에 관심을 두길 희망한다. 진영 간 악순환을 끊는 첫 대통령이 나오길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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