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한쪽 눈 안 보이는 데도 무대 사수한 진정한 희극인"...대중문화계 추모 열기

입력
2022.06.08 18:10
수정
2022.06.08 18:59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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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송해가 별세한 8일 서울 종로구 송해길 그의 동상 옆 벤치에 조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방송인 송해가 별세한 8일 서울 종로구 송해길 그의 동상 옆 벤치에 조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한쪽 눈이 거의 실명이다시피 앞을 잘 못 보시는 상황에서도 무대를 끝까지 사수하신 분이었어요."

방송인 이상벽은 8일 세상을 떠난 송해를 '열정의 방송인'으로 기억했다. 황해도 이북 출신으로 송해와 동향인 이상벽은 본보와 전화 통화에서 "송해 선생이야말로 무대에서 살다 돌아가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상벽은 2011년 '나팔꽃 인생 60년-송해 빅쇼'를 2013년까지 3년 동안 송해와 함께 공연했다. 이상벽은 "같이 다니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무대 입구에 의자를 놓고 30분 정도 눈을 감고 계셨다"며 "전날 약주를 많이 하셔서 피곤해서 그러시겠지 했는데 나중에 여쭤보니 '공연 들어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리허설을 한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반평생을 무대에서 살았는데도 송해가 지역 특색에 맞게 진행하느라 늘 고민을 했다는 얘기다.

대구 달성군 옥포읍 송해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송해 선생의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으며 애도하고 있다.대구=뉴스1

대구 달성군 옥포읍 송해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송해 선생의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으며 애도하고 있다.대구=뉴스1

'국민 MC' 송해 별세 소식에 대중문화계는 추모 열기가 이어졌다. 오상진, 장성규 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추모글을 잇달아 올렸다. 서울 종로3가역 5번 출입구 '송해길'에 세워진 그의 동상 옆엔 조화가 놓여 있었다. 송해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인다.

후배들은 송해를 "늘 주변을 챙기고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진정한 희극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방송인 전유성은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청도에 '전국노래자랑' 공연 하러 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 식당에서 메뉴에 없는 음식을 내놨다"며 "송해 선생님이 녹화 끝나고 일정이 빠듯해 바로 서울로 올라갔는데, 며칠 뒤에 전화해 '그 식당 가서 네가 꼭 고맙다고 인사 좀 드려라, 전화로 말고 직접 가서 꼭'이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강호동은 "10여 년 전에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송해 선생님이 보자마자 허리를 잡고 '씨름하자'고 했다"며 "그때 선생님의 기운과 순발력, 뚝심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송해에 대한 후배들의 애틋한 추모 분위기는 이렇듯 무대에 대한 그의 열정과 격의 없는 따뜻한 인간미가 결합됐기 때문이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서 그는 대중 문화계에 마지막 남은 어른이었던 셈이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실제 송해는 희극인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방송인 김대희는 "송해 선생님이 2016년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했다"며 "연세도 많으신데 코미디 부흥을 위해 직접 달려주신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방송인 이용식은 "47년 전 MBC에서 국내 최초로 코미디언을 뽑는 날 심사위원으로 맨 끝자리에 앉아계셨다"며 "짧은 머리에 카랑카랑했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고, 송해 선생님은 동해, 서해, 남해, 송해 그러니까 우리들의 바다였다"고 추억했다.

송해와 함께 광고 촬영을 한 래퍼 딘딘은 "선생님은 신인이었던 절 신경 써주시며 관계자분들에게 '나보다는 딘딘이를 더 챙겨줘'라고 매번 말씀하셨다"며 "촬영이 끝나고 선생님이 따라주신 소주는 제 평생의 자랑거리"라며 추모했다.

트로트 가수들에게도 송해는 '아버지'였다. 태진아는 "1980~90년대 가수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송해 선생님과 '전국노래자랑' 덕"이라고 말했다. 2010년 '전국노래자랑' 진도군 편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받은 송가인은 "제일 먼저 내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이끌어 주신 선생님"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정치권에서도 애도 글이 이어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이날 SNS에 글을 올려 "국민에게 아프게 또 하나의 시대가 갔다"며 "국무총리로 일하던 때 선생님과 서울 낙원동에서 2,000원짜리 배춧국에 점심을 함께했다. 한참 어리고 부족한 저를 마치 친구처럼 대해 주셨을 만큼, 선생님은 국민 모두의 어른이자 벗이셨다"고 추모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무의 나이테처럼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힘의 원동력임을 일깨워준 분"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방송가는 송해 추모 특집 프로그램을 줄줄이 편성했다. KBS는 송해의 일대기를 트로트 뮤지컬 형식으로 담아낸 '국민 MC 송해 특집-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이날 오후 10시 10분에 방영하고, 밤 12시 10분엔 '국민 MC 송해 추모특선- 송해, 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아리랑'을 내보낸다. 12일 '전국노래자랑'은 송해 추모 특집으로 전파를 탄다.


양승준 기자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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