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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후 컨디션 안 올라와" 1000만 시민 만나고 떠났다

입력
2022.06.08 10:50
수정
2022.06.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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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와 '전국 노래자랑' 34년 ]
1988년부터 진행...대체불가 MC
지난달 본보에 "코로나 후유증 있는 듯"
최근 제작진에게 하차 의사 내비치기도
"고향 황해도 재령군에서 '전국노래자랑'
진행하는 게 꿈이었는데"

8일 세상을 떠난 송해는 거리두기 해제로 이달 시작된 '전국노래자랑' 야외 촬영을 앞두고 하차를 준비했다. KBS 제공

8일 세상을 떠난 송해는 거리두기 해제로 이달 시작된 '전국노래자랑' 야외 촬영을 앞두고 하차를 준비했다. KBS 제공

8일 세상을 떠난 송해는 거리두기 해제로 이달 시작된 '전국노래자랑' 야외 촬영을 앞두고 하차를 준비했다. 송해는 최근 제작진에게 "건강에 자신이 없어 이제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차 의사를 내비쳤다. 야외 촬영이 재개되면 장거리 이동을 한 뒤 뙤약볕 아래 2~3시간 동안 진행해야 하는데, 이젠 워낙 고령이라 버텨줄 체력이 여의찮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은 6월 4일 전남 영광군을 시작으로 야외 녹화를 재개했지만 이 자리에 송해는 없었다. '전국노래자랑'은 코로나19로 2020년 3월부터 야외 녹화를 중단했고, 이후 실내인 스튜디오 촬영으로 일부를 제작한 뒤 옛 방송분을 편집해 내보내는 스페셜 방송을 이어오고 있다.

송해는 3월 코로나19 확진 뒤 체력이 예전만큼 돌아오지 않아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 신세를 졌다. 송해는 지난달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만이 느끼는 컨디션이 있는데 잘 안 잡히는 게 있다"며 "(코로나) 후유증이 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해를 20여 년 넘게 지켜본 지인은 "선생님(송해)이 5년여 전과 비교해도 살이 좀 많이 빠지셨잖나"라며 "건강에 심각한 문제는 없는데, 아무래도 연세가 있어 예전과 달리 기력이 좀 쇠하신 상황"이라고 말했다. 송해는 앞서 1월에도 잠시 입원했다. 송해가 병원 신세를 지기는 올해 두 번째였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의 살아 있는 역사다. "전국을 돌며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으로 1988년 5월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의 살아 있는 역사다. "전국을 돌며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으로 1988년 5월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의 살아 있는 역사다. "전국을 돌며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으로 1988년 5월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았다. 2년 전인 1986년 20대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였다. 당시 송해의 나이는 61세였다. 그 후 송해는 1994년 6개월 동안 중도 하차하고 2012년 두 차례 녹화에 불참했지만 시청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다. 장수 프로그램의 경우 새롭게 변화를 주기 위해 MC 교체를 주기적으로 하는 게 방송가의 관례였지만 송해는 늘 예외였다. 인지도로 보나 시청자의 호응으로 보나 그를 대체할 MC가 없었기 때문이다.

송해는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1977년엔 연예인 신고소득자 9위(483만 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100만 원으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 송해는 최불암 구봉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연예계 간판스타였다.

2010년 '전국노래자랑' 전남 함평군 편. 송해가 얼굴에 검은색 보호망을 쓰고, 온몸에 벌을 붙이고 온 출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KBS 방송 캡처

2010년 '전국노래자랑' 전남 함평군 편. 송해가 얼굴에 검은색 보호망을 쓰고, 온몸에 벌을 붙이고 온 출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KBS 방송 캡처

'전국노래자랑'은 송해가 전국 곳곳을 누비며 각 지역의 시민과 소박한 노래를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송해가 '전국노래자랑'으로 만난 시민은 1,0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이 서민적 프로그램에서 1927년생 송해는 탈권위의 상징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형님' '오빠'로 불렸다. 구수한 입담과 격의 없는 진행으로 '전국노래자랑'을 매번 지역 축제로 만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출연자의 돌발 행동도 능숙하게 대처했다. 2010년 전남 함평군 촬영 때 양봉하던 김갑수(당시 69세)씨가 온몸에 벌을 붙이고 무대에 오르자, 송해가 검은색 보호망을 얼굴에 쓴 뒤 그의 옆에서 진행을 이은 것은 이 프로그램의 명장면 중 하나다.

방방곡곡 야외무대를 오랫동안 누비다 보니 송해의 얼굴은 늘 검게 그을려 있었다. '전국노래자랑'의 연출을 맡은 뒤 KBS를 떠난 PD는 "송해 선생님은 녹화 전에 그 동네 목욕탕에 들른 뒤 시장에 있는 식당에서 늘 식사를 하셨다"고 말했다. 송해는 대접받기를 원하기보다 시청자의 삶에 늘 먼저 다가갔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으로 오랫동안 시민과 소통한 공을 인정받아 2014년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으로 남북 교류의 다리 역할도 했다. 2003년 북녘땅을 밟고 평양 모란봉공원 평화정 앞에서 '전국노래자랑' 특집 무대를 꾸렸다. 송해는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재령평야 주변이다. 1950년 12월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송해는 북에 두고 온 누이를 위해 파란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준비해갔지만, 결국 전달해주지는 못했다. 송해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송해는 제일 가고 싶은 촬영지로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을 꼽았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송해는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에 이어 '전국노래자랑' 다섯 번째 MC였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 트로트 가수의 요람이었다. 임영웅을 비롯해 송가인, 이찬원, 정동원, 박상철, 김혜연 등이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해 얼굴을 알렸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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