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일의 의미

입력
2022.06.09 04:30
34면
구독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열린 프랑스오픈 테니스 준결승에서 한 환경운동가가 난입해 그물에서 항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열린 프랑스오픈 테니스 준결승에서 한 환경운동가가 난입해 그물에서 항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남자 테니스 단식 준결승 경기 도중 한 환경운동가가 코트로 난입했다. 그는 "우리에겐 1,028일밖에 남지 않았다(WE HAVE 1,028 DAYS LEFT)"라는 문구가 적힌 하얀 티셔츠를 입고 네트 가장자리에 앉아 금속 와이어와 접착제로 자신을 네트에 묶었다.

경기는 잠시 중단됐고, 환경운동가는 건장한 세 명의 경호원들에게 팔다리가 붙들린 채 끌려 나갔다. 그는 이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기후비상 사태에 직면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기습시위 배경을 밝혔다.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간이 고작 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 현실적인 대응이 필요함을 대중 앞에서 강조한 것이다.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단체와 사람, 영화, 보고서 등은 무수히 많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를 두고 "아직 먼 미래인데 과장된 전망으로 불안을 조성한다"거나 "관종"이라며 비하하기도 하고,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건 한낱 추정이 아니라 입증 가능한 사실이다. 수백년 전 '먼 미래'였던 그 미래가 이제는 더 이상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2050탄소중립은 30년이 채 남지 않았다. 현재의 2030 세대는 물론, 4050 중년과 7080 노년들도 함께 맞이할 세상이다. 기후위기가 '미래 세대' 혹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기후위기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18년 낸 보고서에서 지구 온도가 2050년쯤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할 것이라 전망했지만, 지난해 낸 보고서에선 2040년 이전에 이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배출을 억제하려는 전지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년이나 앞당겨진 셈이다.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도시 인구 3억5,000만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50년마다 1번꼴로 나타났던 극한폭염이 5년 주기로 발생하는 등 지구 생태계가 급격히 파괴된다. 또 식이 다양성이 감소해 식량 접근성이 악화되고, 곡물 생산량이 줄면서 수많은 나라들이 기근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전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11도 높아졌다. 1.5도까지 불과 0.39도 남았다. 그렇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파국은, 파국을 맞기 전에는 막을 수 있지만 이미 도래한 후에는 되돌릴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의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더 많은 관심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뿐이다. 이번 정권 들어 미뤄진 각종 환경정책들도 하루빨리 시행되고 또 정착돼야 한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종보호 활동가이자 과학전문기자인 디르크 슈테펜스는 자신의 책 '인간의 종말'에서 "공룡이 멸종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손을 놓으면 30년 뒤에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 속 메마른 지구, 황폐화된 지구의 모습은 더 이상 저 먼 미래의 영화 같은 세상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파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건 우리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진주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