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발 나무'가 된 가로수, 왜 이렇게 많나 했더니

입력
2022.06.09 12:00
구독

美 '가지·나뭇잎 25% 내'와 달리
관련 기준 없어 민원 해결에 급급
가지의 80% 이상 잘린 '닭발' 가로수 흔해
경제논리로 과도한 가지치기 결과

정부 차원의 기준 연내 마련될 듯

지난해 5월 경기 안양시의 한 번화가에 가로수들이 기둥만 남은 채 가지치기되어 있다. 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이 계속되면서 가지의 80% 이상을 잘라내는 '강전정'이 된 것이다. 서재훈 기자

지난해 5월 경기 안양시의 한 번화가에 가로수들이 기둥만 남은 채 가지치기되어 있다. 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이 계속되면서 가지의 80% 이상을 잘라내는 '강전정'이 된 것이다. 서재훈 기자

도심을 걷다 보면 가지가 잘려나가고 기둥만 남은 일명 ‘닭발’ 가로수를 흔히 볼 수 있다. 가지의 80% 이상을 잘라내는 과도한 가지치기 즉 ‘강전정’을 당한 나무다. 서울 도심은 물론 경기·인천 등 번화가일수록 더 자주 보이는 이런 가로수들은 정기적인 민원의 산물이기도 하다. 간판이나 현수막을 가린다는 민원이 때론 나무의 생명에 앞서기 때문이다.

실제 가로수 관련 민원의 절반 이상은 ‘가지치기’를 해달라는 요구다. 서울기술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서울시에 접수된 가로수 민원 1,260건 중 658건(52%)이 가지치기 민원이었다.

두 번째로 많았던 민원은 뿌리융기(279건)로 인한 수목보호대나 보도 파손 정비 요청이었다. 병충해 방제(131건)나 은행열매(47건)로 인한 악취 해결, 토양이 유실된 가로수에 흙을 채워 달라는 민원(14건)도 이어졌다.

가지치기 민원은 주로 건물이나 간판에 닿거나 가리는 가지를 잘라 달라는 내용이었다. 신호등이나 표지판을 가리는 가지 등 교통불편을 초래하는 가지를 해결해 달라거나 배전선로를 막는 나무를 가지치기해 달라는 민원도 있었다. 키가 크고 폭도 넓은 가로수가 주변 건물을 간섭하는 경우다.

문제는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민원에 대한 판단 없이 가지치기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나뭇가지가 실제 얼마나 간판을 가리는지, 이 경우 영업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대신 민원 해결에만 급급한 것이다. 인천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저층 건물에 있는 사업자들의 가로수 민원이 끊이지 않는 편이라 가능한 내에서 수시로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 번 자를 때 많이 잘라야 한다’는 경제논리로 과도한 가지치기가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외관을 다듬는 수준의 약한 가지치기(약전정)를 여러 번 하는 대신 굵은 가지까지 제거하는 강전정을 하는 이유다.

현행 규정에 가지치기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도 문제를 키웠다. 가로수 관련 지침인 산림청 ‘가로수 조성 및 관리규정(고시)’은 물론 지자체별 가로수 관련 고시에도 관련 기준이 없다. 또는 ‘가로수는 자연형으로 육성한다’(서울시) 수준의 모호한 문구뿐이다.

미국 국가표준협회나 국제수목관리학회 등이 ‘가지와 나뭇잎의 25% 내에서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고 정한 것과 상반된다. 전문가들은 이 '25%' 규칙을 넘어선 가지치가 계속될 겨우 나무의 골격이 훼손되고 해충 감염의 위험이 오히려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그나마 최근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은 ‘생물다양성을 고려한 가로수 등 관리지침’을 내놓겠다고 하면서 중앙정부 차원의 가로수 수종 선택 및 가지치기 기준이 연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최대한 줄여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경 서울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민 불편을 일으키는 경우 가지치기를 해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가로수 식재단계부터 각 위치에 맞는 적정한 높이와 폭을 갖는 수목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신혜정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