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특권이라고? 내 인생도 힘든데" [세상의 관점]

입력
2022.06.08 17:30
수정
2022.06.0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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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뷰티풀 젠더, 아이리스 고틀립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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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 언제부터 이런 성별 구분이 당연했던 걸까.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선천적 기질인 걸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관념인 걸까. 젠더(gender)란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성(sex)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을 의미한다. 젠더에 대한 다양한 사유가 가능한 사회에서는 치마를 입고 싶은 남성, 쇼트컷을 고수하는 여성들도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까지 함께. 게티이미지뱅크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 언제부터 이런 성별 구분이 당연했던 걸까.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선천적 기질인 걸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관념인 걸까. 젠더(gender)란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성(sex)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을 의미한다. 젠더에 대한 다양한 사유가 가능한 사회에서는 치마를 입고 싶은 남성, 쇼트컷을 고수하는 여성들도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까지 함께. 게티이미지뱅크

"남성이 특권이라고? 내 인생도 힘든데."

"내가 가진 건 특권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은 거란 말이야."

당신은 정말로 아무런 특권 없이 살고 있나요. 모두가 저마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세상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한 양극화, 소수가 독점한 부와 기회, 치열한 경쟁 사회, 디지털 세상에서 파편으로 존재하는 개인의 고독감 등 온갖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개인이 느끼는 압박이 커지기 때문일 겁니다.

'공정'이라는 키워드가 시대의 화두가 된 것도 팍팍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희소한 자원을 두고 더 많은 이들이 다투게 되면서 기회와 절차의 공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날 일부 여성의 뛰어난 성취 탓일까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31.5%에 이르고, 매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남성은 "이미 여성 상위 시대"라며 성평등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표하고 정치권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퇴행성 공약으로 화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주장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무급 가사노동 등에 여성의 역할을 한정하고 어머니나 누이, 부인을 가정에 희생하게 한 것은 중년 이상의 남성의 행위인데, 젊은 남성들이 과한 비판을 받는다는 거지요. 그러나 자신이 가진 것을 되돌아보고, 다른 소수자·약자의 삶에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내면은 성장하고 진정한 성찰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차별이나 피해는 즉각적으로 피부에 와닿지만, 선천적 혹은 후천적 요소로 누리는 자신의 특권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재벌 2세도 아닌데 무슨 특권!'이라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젠더 체계 안에서 부지불식간에 내가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질문 몇 가지를 보여드릴게요. 문항은 '뷰티풀 젠더(아이리스 고틀립, 까치글방 펴냄)'라는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뷰티풀 젠더'. 까치글방 펴냄

'뷰티풀 젠더'. 까치글방 펴냄


내가 가진 젠더 특권 바라보기

△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에 안전을 걱정하는가? 어떤 화장실이 가장 안전할지 고민해야 하는가?

△ 해변에서 유두를 노출할 수 있는가?

△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파트너에게 의지하고 있는가?

△ 대중매체에 나의 젠더가 자주 등장하는가? 나 같은 사람이 대중매체에서는 어떤 성격으로 묘사되는가?

△ 나의 임금이 (나와 같은 자격을 갖춘) 다른 젠더 동료와 동등한가? 내가 덜 받는다면 상사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더 많이 받는다면 어떠한가?

△ 밤에 혼자 거리를 걸을 때에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 내 주장을 펴는 일이 편안한가? 직장에서? 나의 파트너와의 대화에서?

△ 더 자주 웃으라는 말을 듣는가?

△ 생리 때문에 병가를 사용하는가?

△ 길에서 성희롱을 당할 걱정 없이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는가? 나의 옷이 희롱이나 폭력을 당하는 원인이라는 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 내가 편부모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에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 자신의 목소리가 클 때에 알아차리는가? 내가 물리적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가?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막는가?

△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를 투명인간처럼 느끼는가? 아니 더 힘을 가지게 되는가? 나이가 들면서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느끼는가?


책에서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생활상의 문제나 장애물로 여기지 않고 살아왔다면 당신에게는 어느 정도의 특권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합니다. 젠더가 '여성'이라고 해서 꼭 특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은 △젠더 △성적 지향 △연령 △인종 △지역 △능력 △사회경제적 계급 △장애 등 다양한 요소가 교차하며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책은 기꺼이 다른 사람이 받는 차별을 줄이는 데 동참하는 몇 가지 실천 방법도 제시합니다. 자신의 특권을 직시하고, 다른 사람의 공포나 불편함에 공감해 주면서 말이죠. 테스트 후 '내가 무슨 특권층?' 반발심을 갖기보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특권이 있을 수 있겠구나' 돌아보는 데에서 평등한 세상이 열릴 수 있을 겁니다.

이 내용이 담긴 '뷰티풀 젠더'는 무척 예쁜 그림책입니다. 동시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젠더'라는 개념을 방대한 영역에 걸쳐 친절하고 상세히 설명해 주는 페미니즘 입문서이기도 합니다. 책은 "세상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양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될 수 없는 수많은 다양한 성별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다소 복잡한 젠더 개념을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저자가 직접 그린 아기자기한 삽화와 함께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양성에 대해 마음이 활짝 열려 있을 거예요.

한국일보 젠더 뉴스레터 '허스토리'가 '허스펙티브'로 6월 9일 돌아옵니다.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서사를 복원하고, 불편한 시선을 바로잡으며,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멋진 여정에 함께해요.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한국일보 젠더 뉴스레터 '허스토리'가 '허스펙티브'로 6월 9일 돌아옵니다.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서사를 복원하고, 불편한 시선을 바로잡으며,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멋진 여정에 함께해요.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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