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나는 유대인들

입력
2022.06.07 19:00
25면

편집자주

20여년 미 연방의회 풀뿌리 활동가의 눈으로 워싱턴 정치 현장을 전합니다.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 AP 연합뉴스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 AP 연합뉴스

지난 2일 저녁, 뉴저지주 어느 소도시 한 호텔 연회장에 평범해 보이는 남녀노소 150여 명이 모였다. 동네 수준의 단순 만찬같이 보이지만 미국 내 유대계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급 인사들의 리더십 콘퍼런스였다.

이날 만찬장 연사로 미 의회 외교분야 실세인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이 나타났다. 그는 '계획도 없고, 전략도 없고, 동맹도 없는(without a plan, without a strategy, without allies)'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그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과 이란 간 핵 합의의 허술함도 강하게 지적했다. 이어 2018년 미국이 탈퇴한 이란과 오바마 정부의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으로 복귀하려는 바이든 행정부를 비난하면서 "희망은 안보 전략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유대계 재력가들 앞에서 메넨데스 위원장은 바이든 정부가 수정·보완하고 있는 국가 안보전략의 우선 순위에 유럽과 중동 문제가 중국과 러시아의 문제와 강하게 연동될 것임을 확인시켰다. 미국의 유대계 사회가 지난 3년여 팬데믹 기간에 무슨 일을 했는지가 보이는 장면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당초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 위주로 세계 전략을 구상했으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과 중동지역'이 같은 수준으로 강조되면서 완성된 최종 전략의 발표를 미루고 있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최종 전략이 바뀌고 미뤄지는 과정에서 유대계의 영향력이 발휘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대혼란으로 바이든 정부의 국정 어젠다 순위에서 공급망 구축(경제안보)을 제외하곤 모든 외교 사안은 뒷전이다. 군사안보에서는 남중국해(대만 보호) 연안의 안전을 언급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이 틈새를 기회로 포착,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불안해지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미국 우선순위에 이스라엘이 안 보이면 밤잠을 못 잔다. 지난해 단행된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불안을 가중시켰다. 유대계들을 더욱 긴장시키는 일은 미국 내 아랍계의 정치력 급상승이다. 미네소타에서 연방 하원에 진출한 일한 오마르 의원은 소말리아 출신의 무슬림 여성이다. 머리에 히잡을 쓴 오마르 의원이 연방의회에 등장하자마자 첫 일성으로 "이스라엘이나 미국도 탈레반이나 하마스와 같은 수준의 반인륜적 테러를 일삼았다"고 발언했을 때 유대인들은 경악했다.

이후에도 오마르 의원을 비롯한 4명의 무슬림 여성 의원들은 연방 의회에서 한 세기 이상 금기시되어 오던 반이스라엘 발언을 쏟아냈다. 더구나 이들은 급진 진보성향으로 이름을 날리며 연방하원에서 지도자급 영향력을 행사하는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와 보조를 맞춘다. AOC그룹이 바이든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버니 샌더스 계열의 주축이니, 유대계들이 얼마나 좌불안석일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유대인들은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국산 첨단무기 구입을 막아내지 못한 이후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다고 비상이다.

물론 유대계가 그냥 있을 리 만무다. 외로운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하는 일에 집중했다. 바이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교 전문가들, 상·하원 의원들과 수시로 접촉·지원하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는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계들이 터득한 전형적 로비 방법인 '전문가와 의회를 결합하기'다.

바이든 행정부가 곧 발표할 '국가안보전략'의 우선 순위에서 결코 이스라엘이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보이지 않는 미국 내 유대계들의 밤낮없는 노력의 결과다.

김동석 미국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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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미국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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