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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회식도 싫다는 김대리... 저 꼰대 팀장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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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중반 박모 팀장은 자신이 깨어 있는 상사라고 생각한다. '꼰대' 상사들을 겪으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해온 것들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어서다. 저녁 회식은 자제하겠다 선언했고, 연차 휴가도 눈치 보지 않고 쓰도록 하고 있다. "젊은 팀장답게 탈권위적"이라며 다른 부서 직원들이 자신의 팀을 부러워한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
그런데 최근 가치관에 혼란이 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코로나19 방역규제가 풀리면서 각종 사내 회식이 부활했고, 자신도 뭔가 해야 하나 싶었다. 팀원인 장 차장과 이 과장에게 "우리 팀도 회식 한번 할까"라고 떠보자 "당연히 그래야죠", "당장 예약할까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팀 단톡방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점심 시간에 전체 회식을 합시다"라는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이다.
"기대됩니다", "맛있는 거 먹어요" 같은 답이 달릴 때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밑에서 두 번째인 김 대리의 반응이었다. "저는 점심시간에 따로 하는 게 있어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 팀장은 눈을 의심했다. '저녁도 아니고 점심 회식인데? 한 달에 고작 한 번인데?' 그래도 참석하라 큰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그간 쌓아온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없던 일로 하자니 명색이 팀장인데 너무 궁색해 보일 것 같았다. 박 팀장은 고민 끝에 침묵을 깨고 글을 올렸다. "그럼 되는 사람끼리만 합시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첫 점심 회식이 끝난 후 벌어졌다. 회식 참석자는 4명. 아래 직원 3명이 빠졌다. 며칠 뒤 막내 사원이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팀장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회식에 불참한 팀원들에게는 대신 기프트콘 선물을 주는 게 어떨까요?" 부서 운영비로 회식을 했으니 참석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혜택을 주는 게 공평하지 않냐는 취지였다. '이 정도면 탈권위가 아니라 그냥 호구 팀장으로 보고 있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면 나도 꼰대 상사인 건가' 박 팀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초반 김모 대리는 자신이 '순응형' 직장인이라고 생각한다. 신입사원 때부터 회사 선배들이 부르는 술자리엔 빠짐 없이 참석했고 작년까지 막내로 팀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해왔다. 물론 좋아서 한 것은 아니었다. 야근에 술자리에 건강은 갈수록 나빠지고 주말엔 잠만 자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코로나19는 오히려 고마운 존재였다. 회식이 줄고 재택근무가 잦아지니 자연히 여가 시간도 늘었다. 그사이 내년 초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도 생겼다. 결혼식에 맞춰 20대 시절 몸매로 돌려놓기로 마음먹고 얼마 전부터 회당 12만 원 PT(퍼스널 트레이닝) 30회를 결제하기도 했다.
평온한 일상에 위기가 찾아온 건 코로나19 규제가 풀린 후부터였다. 여기저기서 모임이 잡히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이 와중에 팀장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회식을 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저연차 팀원 3명이 모인 단톡방에 불이 났다. "자유 시간에 이게 무슨 테러?", "점심 시간까지 팀장 놀이하겠다는 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겠다 싶었다. "점심 회식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힌 배경이다.
사실 한 달에 한 번 회식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PT야 날짜를 조정하면 되고, 어차피 먹을 점심 팀원들과 먹으면 점심값도 아끼고 나쁠 건 없다. 하지만 팀이나 부서원 전체가 모이는 회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백해무익하다. 당장 회식 장소 잡는 것부터 우리 몫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식사를 하다 "이 집 누가 잡았어"라는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한 심정을 누가 알까 싶다. 소통과 단합을 위한 자리라고 하지만 어차피 말하는 건 상사들뿐이다. 점심이라고 다를 건 없다.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2, 3명씩 따로 불러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더 화가 난 것은 거부 의사를 밝힌 후의 반응이었다. 한동안 팀장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장 차장은 "김 대리 요즘 너무 잘나가는 거 아냐"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로 눈치를 줬다. 단톡방에 올라온 점심 장소는 최고급 일식집이었다. 팀 막내는 "우리 참석 안 할 거 같으니까 일부러 비싼 곳으로 잡은 거 맞죠?"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급기야 미참석자에게 기프트콘 선물을 달라는 제안까지 했다. '가시방석에 앉은 게 이런 기분이구나', '이제라도 회식에 참석하겠다고 할까' 김 대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 이야기는 한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벌어진 일을 일부 각색한 것이다. 사례를 들려준 직원은 "저녁 회식은 젊은 사원들의 거부감이 워낙 크고 퇴근 후 시간을 뺐는 거라 자율적으로 바뀌는 분위기이지만 점심 시간에 대해서는 아직도 세대 간 시각차가 확연한 것 같다"고 전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직장인에겐 통상 낮 12시부터 1시까지 60분의 점심 시간이 주어진다. 회사는 근로자의 근무시간이 4시간 이상이면 30분, 8시간 이상이면 1시간의 '휴게시간'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심 시간을 온전한 휴게시간으로 보장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법적으로 휴게시간이 성립하려면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선 점심 시간도 업무의 연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사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마저도 옛날 얘기가 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직장인들에게 '점심의 재발견'을 하게 했다. 여럿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대신 '혼밥'을 하고 휴식을 취하는 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엠브레인이 작년 6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점심을 혼자 먹는다고 답한 응답이 35.3%에 달했다. 30대 직장인 A씨는 "젊은 사원들은 대부분 점심 시간에 도시락이나 샌드위치를 사서 혼자 식사를 하는 분위기"라며 "회사가 직원들의 혼밥을 위한 식사 공간을 늘리겠다고 발표할 정도"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문화가 직장 내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 팀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결국 '리더십'에 해법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은 "후배나 팀원들이 점심 회식을 하는 것조차 기피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평소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박 팀장의 경우 자신이 깨어 있는 상사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젊은 팀원들에게 회식을 하고 싶은지, 한다면 어떤 방식을 원하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언더스탠드'(Understand)라는 영단어처럼 상대를 이해하려면 아래에 서 있어야 한다"며 "직무상으로 위에 있더라도 소통을 하고 싶다면 낮은 자세로 다가서 최대한 의사를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성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도 "MZ세대는 모바일을 기반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대면 모임에 익숙하지 않고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차이부터 인정하고 조직 운영에 필요하다 생각해도 다수의 구성원이 싫어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예 업무 시간을 활용해 모임을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여수진 노무사는 "사실 직장인들이 회식이나 MT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퇴근 후나 주말 등 자유 시간을 침범하기 때문"이라며 "반드시 대면 회식을 해야 한다면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점심 회식을 하거나 평일에 MT나 워크숍을 갈 경우 젊은 직원들의 거부감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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